서울 시내 한 병원의 신생아실. /뉴스1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분만 의료 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금 한도가 3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인상된 가운데, 산과 의사 등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반길 일”이라면서도 “민사 소송의 부담이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분쟁 조정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 중이다. 내년 7월부터 불가항력 분만 의료 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금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불가항력 분만 의료 사고에는 산모·태아·신생아 사망과 신생아 뇌성마비 등이 있다.

불가항력 분만 의료 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금 한도가 최대 3억원으로 대폭 늘면, 의료진을 대상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보상금을 청구하는 의료 사고 피해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신생아 뇌성마비 등 의료 사고의 민사 소송에서는 3억원을 웃도는 손해 배상금이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5월 수원지방법원은 평택지원은 뇌성마비 신생아의 분만을 담당한 산과 의사에게 1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 같은 거액의 배상 판결은 많은 분만의를 위축시키고 재정난에 빠지게 해 분만 인프라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라며 “낮은 수가와 낮은 출산율만으로도 분만 병원 운영비와 직원 인건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빅5(주요 5대) 병원의 한 산과 교수는 “(국가 보상금이) 터무니 없는 수준인 3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대폭 오른 건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분만 의료 사고 관련 민사 소송에서는 손해 배상금이 10억원을 훌쩍 넘는 판결들이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의 뇌 기능을 평가하는 것이 현대 의학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분만 과정에서 산과 의사의 잘못으로 뇌성마비가 생겼다고 흔히 오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분만, 응급 행위 등 과정에서 의료인의 과실로 환자가 상해·중상해를 입더라도 형사 처벌을 면제해주는 ‘의료 사고 처리 특례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경기도에서 분만 병원을 운영 중인 한 의사는 “의료 사고 처리 특례법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사 소송의 부담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라며 “신생아 뇌성마비 소송에 걸리면 15억원 정도 배상해야 하는데, 병원 문 닫고 신용 불량자 신고해야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산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는 ‘분만 불모지’가 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산부인과 의원 10곳 중 9곳(88.4%)이 분만 업무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국 분만 의료기관은 2018년 555곳에서 올해 425곳으로 점점 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