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강남구 헬렌켈러 시청각 장애인 학습 지원 센터에서 밀알복지재단 직원인 손창환씨가 수어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청각과 시각장애를 동시에 가진 그는 다른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수어 뮤지컬을 만들고, 점자와 수어 등 소통 수단을 가르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지난 4일 서울 강남구의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오전부터 시청각장애인 3명이 모여 점자 교육 등을 받고 있었다. 강사는 모두 시청각장애인이거나 청각장애인이었다. 이들은 소통이 필요할 때마다 바짝 붙어 손을 맞댔다. 상대와 손을 맞대고 하는 수어인 ‘촉수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촉수화는 보거나 들을 수 없는 시청각장애인에게 필수적인 소통 방식이다. 촉수화로 대화를 나누다가 이해가 안 될 때는 손바닥에 글씨를 쓰는 ‘필담’을 이용했다.

강사 중 한 명인 센터 직원 손창환(54)씨도 시청각장애인이다. 전롱(全聾)·전맹(全盲)으로 조용한 어둠 속에 살고 있지만, 이날 그의 얼굴은 밝았다. 손씨는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점자 읽는 법, 수어 쓰는 법, 점자 정보 단말기 사용법 등을 가르친다. 점자 정보 단말기는 컴퓨터·스마트폰 등에 연결해 쓰는 점자 키보드다. 전자 기기 속 글자를 점자로 바꿔주기도 한다. 시청각장애인들이 책을 읽거나 문서 작업할 때, 인터넷이나 모바일 메신저를 쓸 때 꼭 필요하다.

손씨는 서울 곳곳에 사는 시청각장애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손씨는 “전국에 시청각장애인은 1만명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시청각장애가 별도 장애 유형으로 등록돼 있지 않아 관련 정보가 부족하다”며 “집에서만 지내는 시청각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다른 시청각장애인들의 공감”이라고 했다. 이날 인터뷰는 손씨가 촉수화 통역사에게 수어로 전하면 통역사가 이를 말로 풀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헬렌켈러 센터에서 촉수화를 통해 소통하고 있는 시청각 장애인들. / 장련성 기자

손씨는 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았고 시력도 매우 안 좋았다. 어릴 적엔 안경을 쓰고 글자를 읽을 수 있었지만 30대 때 시력이 급속도로 악화해 시청각장애인이 됐다. 그는 “시력을 잃은 직후엔 시청각장애인이 전국에 나뿐인 줄 알았다”며 “눈도 보이고 귀도 들리는데 일자리나 결혼을 걱정하는 다른 젊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과 비교돼 낙담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다른 시청각장애인들을 알게 되면서 동질감을 느꼈고 삶의 희망도 보기 시작했다. 2016년 여름, 시청각장애인 6명, 수어 통역사 3명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시청각장애인들은 박물관에 가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데, 제주도 항공우주박물관에서 그들이 전시물 차단봉을 넘어가 우주선을 직접 만져보거나 우주선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배려해 줬다. 그는 “집에만 있어 침울해했던 시청각장애인들이 제주도 바닷바람을 맞은 뒤론 기분이 풀려서 서로 장난치기 시작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제주도 여행이 끝난 뒤 그는 서울 한 교회의 작은 방을 빌려 시청각장애인 모임인 ‘손끝세(손끝으로 보는 세상)’를 만들었다. 시청각장애인들은 직접 만나야만 소통할 수 있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 5명으로 시작한 손끝세는 현재 각지에서 30여 명이 찾는 전국구 모임이 됐다. 손씨는 “손끝세 사람들과 짧은 수어 뮤지컬을 만들어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공연도 한다”며 ”시청각장애인은 예술을 못 할 거란 편견이 있는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규모가 큰 수어 뮤지컬을 만드는 게 나의 꿈”이라고 했다.

손씨는 그 밖에도 다양한 취미를 가진 ‘취미 부자’다. 어릴 적엔 축구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역동적인 운동보단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하는 걸 즐긴다. 최근 센터에서 열린 가을 운동회도 그가 이끌었다. “소리 나는 큰 공을 굴리는 게임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면서 “보거나 듣진 못하지만 다들 얼굴이 밝아지고 크게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요리 수업도 하고 있다. 센터엔 시청각장애인들이 쓸 수 있는 세탁기와 조리 도구 등이 구비돼 있다. 손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빵 일을 10년이나 해서 요리가 손에 익었다”며 뿌듯해했다.

현행법상 시청각장애인들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따로따로 등록해야 한다. 시청각장애가 별도의 장애 유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손씨는 말했다. 그는 “시청각장애인이 됐을 때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모두 가봤는데 두 군데 다 저를 거절했다”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경험을 시청각장애 아동들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라며 “시청각장애가 별도의 장애 유형으로 인정받으면 시청각장애인들도 국가의 지원으로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시청각장애인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를 모두 갖고 있는 장애인. 보고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수어에 손을 대는 ‘촉수화’로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