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에 지급되는 실손보험금 중 건강보험이 지원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 비율이 4년 만에 80%대에서 20%대로 뚝 떨어졌다. 반면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의 실손보험금 중 비급여 비율은 70%대를 유지해 대조를 이뤘다. 실손보험금 누수의 대표 원인으로 지목됐던 진료 가운데 안과의 백내장 수술은 ‘입원이 불필요하다’는 대법원 판결로 과잉 진료가 어려워진 반면,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의 도수 치료와 비급여 주사 치료 등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5일 본지가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5개 손해보험사에서 취합한 ‘실손보험 주요 진료과별 지급보험금 추이’에 따르면, 안과의 비급여 지급 보험금 비율은 2020년 80.3%에서 올해 상반기(1~6월) 28.9%로 급감했다. 안과의 비급여 진료비로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2022년 4836억원에 달했지만, 올 상반기 314억원으로 줄었다.
이는 대법원 판결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22년 6월 대법원은 “백내장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 일괄적으로 입원 치료를 인정해서 실손보험금을 지급하면 안 된다”는 판결을 내놨다. 통원 치료로 가능한 백내장 수술을 입원 치료로 처리해 보험금을 과다 지급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
의료계 인사들은 “일부 안과가 실손보험에 가입한 백내장 수술 환자를 자동으로 입원시켜 수익을 극대화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비급여인 백내장 수술 비용은 병원별로 200만~1000만원 정도로 편차가 크다”면서도 “여기에 환자가 입원을 하게 되면 병실 입원료에 각종 검사비까지 합쳐 비용이 배 이상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한 보험사 실손보험의 경우 입원 치료에 5000만원 한도의 실손보험금을 지급하지만, 통원 치료에는 하루 25만원 한도로 보험금을 지급한다. 백내장 관련 수술이 매년 늘었지만, 대법원 판결 후 수술과 입원을 합친 실손보험을 타기 어려워지면서 백내장 보험 지급액이 감소한 것이다.
하지만 보험업계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이런 구멍들을 잡아내도, 또 다시 보험금을 빼먹을 수 있는 새로운 비급여 항목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급여란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진료 항목을 말하는데, 필수 의료 위주의 급여 항목과는 달리 보건 당국의 관리를 거의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 때문에 비급여를 이용한 실손보험 타먹기가 성행하고 있다. 도수 치료나 비타민·영양 주사 등이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병원은 환자에게 ‘진료·수술비는 실손보험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며 비급여 치료를 권해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환자도 실손보험으로 환급을 받으면 별 손해가 없기 때문에 과도한 의료 이용으로 인한 의료비 낭비가 초래된다”고 했다.
안과를 제외한 주요 진료과별 현황을 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정형외과(71%)와 가정의학과(70.4%)는 모두 비급여 비율이 70%를 넘었다. 의료계 인사들은 “두 진료과에서 비급여인 도수치료, 증식치료(통증 완화), 체외충격파(조직 재생) 치료 등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결과”라고 했다.
또 한방병원(65.4%)과 소아청소년과(65%), 이비인후과(56.5%), 비뇨의학과(53.5%), 산부인과(51.5%)의 비급여 비율도 50%를 넘었다. 이 진료과들도 최근 ‘성장판 주사’ 등 비급여 항목 진료를 늘려가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소형 병원에서 실손보험을 많이 청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중환자를 치료하지만 경제적 보상은 높지 않은 대학병원 교수들의 이탈을 촉진하고 있어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