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불법 침범 가만 안 둬.”
대한의사협회(의협)는 7일 “대형 로펌을 선임해 불법 피부·미용 시술을 하는 한의원을 고발하겠다”며 “국민 건강 위협하는 한방계의 불법 의료기기 사용,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울시한의사회가 지난 4월 자체적으로 ‘피부·미용 교육센터’를 만들어 전국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피부·미용 시술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형사 고발’ 카드까지 꺼낸 것이다.
의료계에선 의사와 한의사의 ‘레이저 전쟁이 본격화됐다’고 보고 있다. 작년 기준, 국내 ‘피부·미용 의료’ 시장 규모는 3조2000억원 정도다. 한동안 매년 규모가 17%씩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전문의 자격 없이 의대만 졸업하고 바로 피부·미용을 하는 의사(일반의)도 한 달에 1000만~1500만원(세후)을 번다. 수도권 미용 피부과 원장들 중엔 매년 5억원(세후) 이상을 버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수요가 많고, 거의 모든 시술이 비급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의원의 평균 매출은 2019년 이후 감소세다. 한의사의 평균 연봉(1억800만원)은 의사(2억3000만원)의 절반 밑이다. 쪼들리는 한의사들에게 날로 커지는 피부·미용 시장은 무조건 뛰어들어야 할 ‘블루 오션’일 수밖에 없다. 서울시한의사회는 최근 회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한의사의 미용 의료 기기 사용에 따른 사법적 절차는 저희가 겪어내겠다’고 했다. 소송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피부·미용 시장에 본격 진입하겠다는 뜻이다. 반대로 의사들은 이를 무조건 막아야 하는 입장이다.
현행 의료법령엔 의사와 한의사 각각의 고유 업무에 대한 내용이 없다. 그래서 법원이 고발당한 한의사의 피부·미용 시술이 불법인지 여부를 건건이 판단해왔다.
대법원은 지난 2014년 100여 명의 환자 피부에 강한 파장의 빛을 쏴 여드름, 잡티 제거 시술(IPL)을 한 한의사에게 유죄 취지 선고를 했다. 당시 대법원은 “기미 등 특정 부위를 제거하는 IPL 시술은, 경락(기의 통로)에 자극을 줘 병을 치료하는 한의학의 ‘레이저 침’ 시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판단했다. 레이저 치료는 한의학 원리와 무관하다는 취지였다. 의협 등 의사 단체들이 한의사의 피부·미용 시술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주요 근거가 바로 이 판결이다.
하지만 불법 여부 판단 기준이 모호해 이 판결 이후에도 사법 기관별로 다른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대구지검은 2019년 피부 레이저 시술을 한 한의사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대구지검은 “빛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요법은 고대 인도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 최초로 사용된 것으로 보여, 피부 레이저가 전적으로 서양 의학의 영역으로만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대법원은 지난 2022년 “한의사가 (최신) 의료 기기를 진단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용했다면 형사 처벌을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기존 판례를 뒤집어, 한의사의 현대식 의료 기기 사용을 대폭 허용한 것이다. 이런 법리에 따라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와 뇌파계 사용도 허용했다. 의료계에선 “한의사가 미용 기기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한 판결”이란 말이 나온다.
외국에선 의사 외 직역도 피부·미용 시술을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미국·일본·영국·캐나다 등에선 간호사가 보톡스나 필러 등의 시술을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신체에 기기·장비를 대는 행위 대부분을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문신도 한국에선 의료 행위다. 문신사의 시술은 불법이다. 정치권에서도 최근 “깊은 의학적 지식이 필요 없는 미용·문신 시술까지 의사만 하게 하는 건 과도한 규제”라는 반응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