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 의료계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여·의·정 협의체에서 머리를 맞댔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로 지난 2월 의정 갈등이 촉발된 후 9개월 만이다. 이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협의체 합의가 곧 정책”이라며 힘을 실었고, 국민의힘 당 차원에서도 “국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드릴 것”이라고 했다.
이날 협의체에는 정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고위급 인사들이 참여해 의사 결정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여당 및 정부와의 대화에 참여키로 한 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과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이 참석했다. 당에서는 지난 9월부터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한 한동훈 대표와 이만희·김성원·한지아 의원이 참석했다.
이날 여·의·정은 협의체 운영 시한을 12월 말로 못 박고, 의제 제한 없이 매주 두 차례 회의를 열어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김성원 의원은 “성탄절 이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낼 것”이라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여당은 올해 입시인 2025학년도를 비롯해 2026학년도까지 의대 정원 문제를 놓고 “의제 제한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의료계에서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도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의대 교육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수준으로 정원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의대 증원으로 내년 의대 1학년생이 최대 7500명 수업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학습 기자재 부족 등으로 늘어난 의대생 수업이 불가능한 의대들이 정원을 재신청하는 식으로 2025학년도 정원을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부 측은 “이미 수능 시험이 오는 14일로 다가온 상황에서 올해 입시 정원 조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는 “집단 사직한 전공의가 내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 지원해 합격하더라도 군에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병역 의무를 해결하지 못한 전공의들은 수련 시작 전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등록해 수련을 마친 뒤 입대하는 조건으로 병역을 연기한다. 하지만 사직 등으로 수련을 멈추면 군 입대를 해야 한다. 다른 병원으로 복귀해도 입영은 연기되지 않는다. 국방부가 매년 2월 의무사관 후보생 입영 대상을 확정해 통보한 뒤, 매년 3월 의무장교와 공보의 입영이 이뤄지는 절차가 진행된다. 현재 사직 중인 전공의들의 경우 내년 3월 입대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정부 측은 “사직 전공의의 복귀를 돕기 위해 진지하고 다양하게 논의하자”며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의료계는 또 한국의학교육과정평가원(의평원)의 자율성 보장도 요구했다. 의평원은 내년부터 정원이 10% 이상 늘어나는 의대 30곳의 재인증 평가를 담당한다. 의정 사태 후 의평원이 엄격한 교육 잣대를 요구하자, 교육부는 ‘의평원 심사에서 탈락해도 처분을 1년 유예할 수 있다’고 해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 측은 “내부 논의 후 협의체에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정치권과 의료계에선 협의체의 성패가 야당과 의료 단체의 추가 참여 여부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덕수 총리는 “정부를 믿고 대화에 참여해주실 것을 전공의와 의대생, 의료계에 호소한다”고 했고, 한 대표는 “민주당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고 언제든 환영한다”고 했다.
야당과 전공의 단체는 이날 협의체 첫 회의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무의미”라며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당에서도 “전공의들과 의대 교수들이 빠진 협의체에 대해 국민과 의사들 사이에서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편 교육계에선 “2025학년도 정원은 이미 수능을 사흘 앞둔 시점이라 되돌리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2026학년도 정원에 대한 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협의체를 통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조정하더라도 ‘데드라인’은 내년 2월로 교육계는 보고 있다. 의대 증원분이 달라지면 교육부는 정원 배정 위원회를 거쳐 각 대학에 증원분을 다시 배정해야 하고, 대학들은 변경된 의대 정원을 반영해 학칙을 개정한 뒤 4월 30일 전까지 대교협에 최종 대입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밟으려면 늦어도 내년 2월까지는 의대 정원이 확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