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세브란스병원·메이오 클리닉

연세의료원이 19일 축적된 의료 기술과 노하우를 사업화해 ‘최(最)상급 종합병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의·정 사태로 대형 병원들의 수익이 줄줄이 추락한 가운데 미국의 대표적 연구·기술 중심 병원 ‘메이오 클리닉’처럼 의료 기술 사업화를 통한 수익 다변화에 나선 것이다.

지난 3월 취임한 금기창 연세의료원장은 이날 첫 기자 간담회에서 “앞으로 혁신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필수 의료 체계를 구축해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을 넘어 초고난도 질환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며 이 같은 계획을 공개했다. 의료원 측은 “병원의 모든 기능을 초(超)고난도 질환 치료 기반으로 전환한다”며 “기술 상용화 등을 통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해 경영 안정화를 이루고, 수익은 다시 의학 연구와 미래 의료에 재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다각도의 의료 기술 상용화 지원, 신촌 부지 내 의대 신축과 융합연구센터 건립 등을 위해 앞으로 7년간 총 5000억원의 ‘거액 기부금 모금 캠페인’도 전개키로 했다.

그래픽=박상훈, 사진=세브란스병원·메이오 클리닉

세브란스(신촌)·강남세브란스·원주세브란스의 상급종합병원 세 곳과 용인·송도의 종합병원을 운영하며 ‘로봇 수술’ 등 첨단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해온 연세의료원이 ‘최상급종합병원’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원에 따르면, 이는 더이상 박리다매식 진료만으론 생존이 불가능해진 의료 생태계 변화에 대응하는 조치다. 연세의료원은 의·정 사태 전인 지난해에도 진료 이익률이 마이너스 0.5%를 나타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공공 의료 체계하에서는 진료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가 고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터진 전공의 이탈로 대형 병원들이 막대한 손실을 기록 중인 가운데 이날 연세의료원은 “지난 상반기 예상 손실 규모는 1200억원 이상”이라며 “앞으로 혁신 기술을 통해 필수 의료의 공적 기능을 향상하고, 소외 계층에 대한 ‘세브란스 정신’을 실천할 것”이라고 했다.

연세의료원이 모델로 삼은 의료 시스템 중 하나가 대표적 연구 중심 병원인 미국 메이오 클리닉이다. 미국 미네소타·애리조나·플로리다주(州) 3개 캠퍼스에 4500여 의사·과학자와 5만8000여 직원을 두고 진료·연구 양대 축을 운영 중이다.

메이오 클리닉의 의료 히트작 가운데 비만 치료용 위 풍선 ‘오르베라(orbera)’가 대표적이다. 위에 안전한 풍선 기구를 넣어 음식이 들어갈 공간을 줄여 10㎏ 이상 살을 빼준다. 최근까지 전 세계 80여 국가에서 40만명 넘는 환자에게 시술된 이 제품을 통해 거두는 연매출은 약 311억원에 달한다. 이 밖에 뇌 깊은 곳에 전기 자극을 줘 파킨슨병 등을 치료하는 ‘뇌심부 자극기’, 간 이식 전까지 간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바이오 인공 간’ 등도 메이오 클리닉 기술로 개발한 대표적 의료 기기다. 메이오 클리닉 의료진은 ‘메이오 클리닉 벤처스’라는 지주회사를 통해 체계적으로 창업에 뛰어들고 투자받는다. 매해 600개 이상의 사업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이를 통해 탄생한 기업이 351곳에 달한다.

다만, 우리나라는 의료 규제 완화 없이 의료 사업화가 쉽지 않은 여건이다. 국내 의료법상 병원 측이 기술 사업화를 촉진하는 지주회사(투자회사)를 설립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가 2013년 서울대·서울아산·삼성서울병원 등 대형 병원 10곳을 의료 산업화를 주도하는 ‘연구 중심 병원’으로 지정해놓고도, 지난 10년간 10개 병원의 기술 이전 수입은 총 973억원에 그쳤다. 미국 메이오 클리닉의 한 해 기술 이전 수입(1조1000억원·2022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전문가들은 “의료 시장에서 해외 기관은 ‘헤비급’으로 덤비는데, 우리는 ‘플라이급’으로 맞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가 대학병원 내 기술 사업화를 돕는 전담 조직인 ‘의료 기술 협력단’을 설치할 수 있게끔 법을 개정했지만, 의료 사업으로 글로벌 매출을 올리기엔 역부족이란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