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 뒤통수에 칼 꽂고 대단’ ‘이기적인 XX들’.
지난달 초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계약직 일반의로 취업한 사직 전공의 A씨는 의사 전용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서 자신을 향해 심하게 욕하는 글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메디스태프는 의사 면허 확인 등 인증을 거쳐야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다. A씨 부모에 대한 욕설까지 난무한 여러 글에는 A씨의 이름을 유추할 수 있는 초성과 근무 중인 병원명, 진료과 등도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가 공격 대상이 된 건 올 초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사표를 낸 전공의가 수련 병원에 취업했다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A씨가 병원 근무를 시작한 지난달 7일 오전부터 메디스태프에 ‘(그 병원에) 두 명이 지원했다는데 누군지 아는 사람?’ 등의 글과 그의 인적 사항이 올라왔다. 이틀 뒤인 9일부터는 집중적인 공격이 쏟아졌다. ‘열심히 수술방에서 일하고 있다며?’ ‘너네 같은 애들이 제일 문제’ 같은 A씨 비난 글에 동조 댓글들이 40개 넘게 달렸다. A씨는 본지에 “같은 병원에서 일하던 동기가 커뮤니티에 이 같은 글이 올라왔다고 알려줬고, 동기 본인도 공격의 대상이 될 걸 우려해 결국 병원을 그만뒀다”고 했다. A씨가 면접을 볼 당시 “이전 근무자들이 협박 전화를 받고 그만뒀는데 괜찮느냐”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A씨의 전화번호 등 개인 정보까지 커뮤니티에 퍼졌다. 복귀한 전공의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블랙리스트’도 계속 작성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를 향한 조리돌림은 2주가량 계속됐다. 그는 서울 영등포경찰서를 찾아 피해 사실을 담은 고발장을 냈다. 경찰 조사도 받았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조리돌림은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심해졌다. A씨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익명’ 특성을 악용해 본인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의 신상을 공개하고 모욕하고 있다”며 “강경한 이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전혀 자정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16일 커뮤니티 운영진에 이런 글이 지속해서 올라오고 있어 보호가 필요하다는 메일을 보냈지만 회신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한 달간 A씨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그는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직장 동료 중 누군가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주변을 살피게 됐고, 사생활 보호에 대한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A씨는 지난 1일 의사가 아닌 사람들도 볼 수 있는 인지도 높은 인터넷 게시판에 ‘의사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집단 린치를 폭로합니다’ 제목의 글을 올렸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직접 호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메디스태프에서 당한 조리돌림 글도 캡처해 올렸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 A씨는 커뮤니티 글을 다른 게시판에 유출했다는 이유로 메디스태프에서 탈퇴당했다. 그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향해 벌어지는 명예훼손을 직접 확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A씨는 “커뮤니티에선 전혀 협조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며 “적어도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좌표 찍기 행태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하고 싶어 용기 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게 됐다”고 했다. “누군가가 나를 해코지할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A씨는 익명 커뮤니티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도 냈다. 그는 청원 글에서 “가해자들은 플랫폼의 익명성을 악용해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피해자로서는 이들을 특정할 방법이 없다”며 “익명 커뮤니티에 대한 전수 조사를 통해 가해자를 특정하고, 유사한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응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자 보건복지부는 2일 커뮤니티 게시글을 확인해 서울경찰청에 별도로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의료 사태 초기엔 병원에 남은 전공의들이 ‘부역자’라는 비난의 집중 타깃이 됐다. 이제는 수련 병원에 일반의로 취업한 사직 전공의들도 공격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A씨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의견은 의정 사태가 길어질수록 더 강경해졌다”며 “정부를 향한 분노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변질되면서 분노의 대상이 확대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