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 의대 등 부산·울산·경남 지역 4~5곳 의대 출신 신규 의사 400여 명이 지난해 의사 실기시험 문제를 유출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수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2일 알려졌다. 올해 신입 의사(3045명) 중 13% 이상인 대규모 인원이 ‘시험 문제 유출’로 수사 대상이 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난달 29일, 작년 의사 실기시험 문제를 조직적으로 복원·취합한 뒤 이를 유출한 혐의로 경상대 의대 학생회 간부 6명을 기소 의견으로 서울동부지검에 송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당시 실기시험을 먼저 본 경상대 의대생들이 복원한 문제들을 취합해 카톡 단체 대화방 등에 올려 아직 시험을 보지 않은 학생들에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유출했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의사 실기시험은 통상 9~10월 두 달에 걸쳐 하루 60~70명씩 순차적으로 본다.

경찰은 이들 6명을 포함, 지난해 실기시험 문제를 유포하거나 사전에 받아본 의대생이 400여 명에 달한다는 진술과 정황을 확보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400여 명은 경상대를 포함, 부산·울산·경남권 의대 4~5곳의 의대생이었다. 대부분 올 1월 필기시험까지 합격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고 한다. 경찰은 앞으로 이들 400여 명을 대상으로 시험 문제를 사전에 받아 공부했고 다른 사람에게도 공유를 했는지, 미리 받은 문제가 실제 시험 문제와 얼마나 일치했는지 등을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김하경

의사 실기시험은 특정 질환의 대표적 징후를 보이는 모의 환자들을 진찰해 병명을 진단하는 ‘환자 진료 평가’ 위주의 시험이다. 기침, 구토, 발열 같은 대략적인 증세(임상 표현) 40여 개는 사전에 수험생에게 공지가 되지만, 이런 증세를 동반하는 병은 훨씬 많기 때문에 의대생들은 큰 부담을 느낀다. 매년 의사 시험 합격률은 94%대 수준인데, 탈락자는 대부분 실기시험에서 생긴다.

실기시험은 ‘문제 은행식’이어서 같은 해 먼저 나온 문제가 뒤에도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한 의대 교수는 “실기시험은 병명을 맞히는 것보다 진단 과정을 평가한다”며 “환자의 말을 잘 듣고 체계적으로 병명을 찾아가는지, 쉬운 말로 환자에게 향후 치료 계획 등을 설명하는지를 본다”고 했다. 병명을 미리 안다 해도 진단까지의 과정이 허술하다면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먼저 본 학생들의 ‘복원 문제’가 쌓일수록 뒤에 같은 문제가 나올 확률은 높아진다. 시간이 갈수록 시험 현장에서 ‘복원 문제’를 접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한 수도권 전공의는 “같은 문제가 나오지 않더라도 문제를 미리 봐두면 긴장감이 줄어 실기시험에서 실수를 덜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전공의는 “실기시험 문제들을 복원한 종합판을 만들어 공유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며 “의대생 사이의 관행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했다. 또 이런 문제 복원·공유 행위 자체가 의사 시험의 신뢰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한국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은 사전에 수험생들에게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실기시험 문제의 복원과 공유를 절대 금지하며, 위반시 민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수차례 공지한다.

만일 이번 사건에 연루된 신규 의사 400여 명 전부가 재판에 넘겨져 금고형 이상을 받으면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그보다 낮은 형량이 나와도 정부는 의료법에 따라 부정 행위를 한 사람의 합격을 무효화하고, 향후 3회 의사 시험을 치지 못하게 하는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

경상대 의대 관계자는 “작년 실기시험에서 일부 문제가 있었다고는 들었지만 학교가 개입한 것이 아니어서 내용을 모른다”고 했다. 서울 광진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