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이 환자의 골반에서 골수혈액을 채취하는 모습. /조선일보 DB

간호사가 골수 검사를 위해 혈액, 조직 등 검체를 채취하는 건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골수 검사를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 행위가 아니라, 숙련도를 갖춘 간호사도 할 수 있는 의료 행위로 본 것이다.

대법원 2부는 12일 서울아산병원을 운영하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의료법 위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해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2018년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의 고발로 시작됐다. 협의회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전문간호사가 골반을 바늘로 찔러 골수 혈액과 조직을 채취하는 ‘골막 천자’를 시행하는 것을 두고 무면허 의료 행위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재판에 넘겼다.

재판의 쟁점은 골막 천자가 ‘진료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의료법상 진료 행위는 의사만 할 수 있고, 간호사는 ‘보조’만 가능하다. 진료 행위라면 간호사의 골막 천자는 위법이 된다.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골막 천자를 의사가 직접 해야 한다고 명시한 규정이 없는 데다 의사의 지시·위임을 받은 간호사들의 행위는 무면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2심은 간호사의 골막 천자 수행은 진료 보조가 아닌 진료 행위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골수 검사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 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2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골수 검사는 자질과 숙련도가 있는 간호사라면 시행할 수 있는 의료 행위”라며 “비교적 위험성이 낮고 사람마다 해부학적 차이가 크지 않은 데다, 검사자의 재량이 적용될 여지도 적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의료계에선 진료지원(PA) 간호사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날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진료 보조’ 행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전공의들의 이탈 이후 의료 현장에서는 전공의가 하던 단순 ‘의사 업무’를 PA 간호사가 맡고 있다.

의료계는 판결에 강하게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학적 판단이 아닌 정책적 판단”이라고 했고,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의료인 면허 체계의 근간을 흔든 오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