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칠순 잔치하는 故 최복향 할머니 - 2016년 4월 대구시 한 식당에서 열린 고(故) 최복향(왼쪽) 할머니 칠순 잔치에서 최 할머니가 아들 장성철씨와 함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최 할머니는 대구에서 30년 넘게 칼국수집을 운영하며 인근 학교의 저소득 학생들 장학금 등으로 1억8000여 만원을 기부했다. /장정원씨 제공

지난 17일 오후 2시쯤 대구시 수성구 ‘본전식당’.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매월 140만원 기부는 계속됩니다’ ‘저희 가게를 찾아주신 분이 바로 기부자입니다’ 라고 쓰인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안내문 옆에 테이프로 덧댄 A4 3분의 1 크기 종이 위에는 흔들리는 손 글씨로 ‘1억7천920만원’ ‘1억8천40만원’ ‘1억8천180만원’이란 숫자가 차례로 쓰여있었다. 고(故) 최복향(77) 할머니가 지난 6~8월 걸쳐 직접 쓴 숫자들이다.

‘본전식당’은 36년 된 대구 수성구의 유명 국수 맛집이다. 사장이었던 최 할머니가 장사만큼이나 오래 열중한 것이 기부였다. 지난 8월 몸 상태가 급속히 나빠져 중환자실에 입원하기 전까지도 직접 기부금을 챙기고, 식당 안내문에 누적 기부 액수도 고쳐 썼다. 최 할머니의 딸이자 본전식당 2대 사장인 장정원(48)씨는 “통장 정리를 하고 오신 날에 엄마가 웃으시길래 ‘매출이 잘 나왔나’ 하고 통장을 보면 ‘140만원 출금’ 내역을 보고 계시더라”며 “칼국수를 먹으면 기부가 된다고 하니,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다고 찾는 손님도 많았다”고 했다.

최 할머니는 1947년 대구에서 3남 3녀 중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났다.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며 10대 후반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스무 살 터울의 막내까지 네 동생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다가 20대엔 상경해 신세계백화점 매대에서 일했다. 결혼한 뒤 일을 놓았다가 1988년 회사 다니던 남편의 몸 상태가 안 좋아져 다시 ‘가장’이 됐다. 그나마 자신 있던 것은 홍두깨로 반죽을 밀어 자식들에게 만들어주던 국수 요리. 최 할머니는 인근 달방을 얻어 이사하고, 살던 집은 식당으로 개조해 이듬해부터 칼국수를 팔았다. 본전식당의 시작이었다.

본전식당 맞은편에는 대구시교육청과 대구동중학교가 있다. 4km쯤 떨어진 곳엔 대구일마이스터고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교육청 직원, 교사, 학생들이 식당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특히 단골이었던 대구일마이스터고 이윤재 전(前) 교장은 식당을 찾을 때마다 최 할머니에게 “공부를 잘하는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많다”며 걱정했다. 최 할머니는 “처음 장사할 때 다 서툴렀는데도 ‘맛있다’ 격려해 준게 인근 교육청, 학교 사람들”이라며 본격 후원을 시작했다. 대구 일마이스터고에 저소득 학생 장학금으로 매달 50만원씩 보냈고, 이 외에도 대구인재육성장학재단에 매달 50만원을, 주민센터에는 저소득 이웃을 위해 백미와 돼지고기 등 현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최 할머니는 2017년 8월 사랑의열매 아너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매달 170만원씩 5년간 납입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본전식당 칼국수는 6500원이었다. 매달 칼국수 261인분 치 기부를 한 셈이다. 배경엔 할머니의 후원을 받은 학생들의 편지가 있었다. “1학년 때 방황을 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버텨 3학년이 됐습니다. 그런 저에게 장학금은 ‘자퇴 안 하길 잘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할머니의 기부로 나눔을 배웠습니다. 저도 이 장학금으로 자격증을 따 나눔을 실천하고 싶으니, 지켜봐 주세요”. 최 할머니는 매년 학생들의 편지 수십 통을 식당에 쌓아두고 수시로 꺼내 봤다고 한다. 직접 명절이나 방학 때 식당에 와 “제가 그 장학금 받는 학생”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하거나, 성인이 돼 어린 자녀와 함께 식당을 찾은 이도 여럿이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본전식당에도 큰 시련이었다. 유행 초기 대구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나오며 본전식당도 그해 3~4월 문을 닫았다. 기부도 중단됐다. 최 할머니는 속상해하며 틈날 때마다 “얼른 기부를 재개하고 싶다”고 했다. 딸 장씨는 “없는 살림에 기부 얘기를 하니 너무 답답해 ‘엄마가 부자라도 되느냐’며 말리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매출이 예년의 80% 수준을 회복한 2021년 5월, 중단 1년 1개월 만에 기부를 재개했다. 매달 약정 금액은 170만원에서 140만원으로 줄였다.

치매 증상이 올 초 심해지며 최 할머니의 몸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딸 장씨에게 거의 장사를 맡긴 뒤 투병하다 지난달 15일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심정지로 사망했다. 유품 정리를 위해 가족들이 최 할머니가 자주 입는 옷을 걸어놓는 옷장을 열어보니 계절별 식당 유니폼 10여 벌만 걸려있었다고 한다.

최 할머니는 사랑의열매를 통해 총 1억2100만5600원을 후원했다. 따로 후원한 것을 합치면 총 1억8000여 만원에 달한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문의 080-89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