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 진료실에서 생후 19개월 여아 해솔이가 주치의 은호선 교수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가운데 곰 인형은 병원 측에서 해솔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것이다. /고운호 기자

지난 19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 2층 진료실에서 콧줄(코위관)을 한 19개월 아기 해솔이가 자기 몸만 한 곰 인형을 향해 조그만 손을 뻗었다. 신기한 듯 인형과 한참 눈을 맞추던 해솔이에게 주치의인 신생아과 은호선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해솔이 눈싸움하는 거야? 태어나 처음 곰돌이 보고 깜짝 놀랐나 보네.”

곰 인형은 세브란스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 1년간 투병 후 최근 퇴원한 해솔이를 위해 병원 측이 준비한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해솔이는 작년 5월 충청 지역 한 대학병원에서 910g으로 태어났다. 임신중독증(전자간증)을 앓은 엄마 김소망(33)씨가 임신 28주에 조산했다.

해솔이는 바로 입원했지만, 간부전·간경화가 심각했다. 신부전으로 복수가 차 온몸이 퉁퉁 붓고 폐부종으로 호흡도 힘들어했다. 간 이식 수술을 받기엔 너무 어렸다. 반년 가까이 치료받다 ‘여기선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에 김씨 부부는 서울의 큰 대학병원들을 수소문했다. 그중 딱 한 곳,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해보겠다”고 했다.

김씨는 “너무나 감사했다”고 했다. 전북 완주에 살던 그는 작년 11월 해솔이를 입원시킨 뒤 인천의 동생 집으로 옮겨왔다. 하루 30분 해솔이 얼굴을 보기 위해 매일 지하철로 2시간 거리인 병원을 오갔다. 늘 “해솔이 보고 싶다”고 떼쓰던 언니 해나(6)도 함께였다.

김씨는 “오늘은 어떤 표정으로 엄마와 언니를 맞아줄까 상상하면 긴 면회 길도 설레기만 했다”고 했다. 경기 오산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아빠 김승철(39)씨도 지난 7월 서울 발령을 받아 가족이 함께 인천으로 이주했다.

생후 19개월 여아 해솔이가 주치의 은호선 교수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28주 이른둥이(910g)로 태어나 간경화 등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해솔이는 1년간 이 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치료받으며 극적으로 회복, 지난달 퇴원했다. /고운호 기자

치료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혈압이 갑자기 떨어져 심폐소생술(CPR)도 여러 번 받았다. 위장관 출혈도 심했다. 올 5~7월엔 다시 복수가 차고 간 상태도 더 나빠졌다. 은 교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의료진은 해솔이 치료에 필요한 특수약물의 건강보험 적용이 끊기는 상황에서도 병원 손해를 감수하며 약물, 복막 투석 등 치료를 이어갔다.

은 교수는 “의정 갈등 사태에 모든 의료진이 함께 당직을 서며 해솔이와 신생아집중치료실의 다른 아이들을 돌봤다”면서 “살겠다는 해솔이 의지가 컸는지 7월부터 치료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병원 측은 형편이 넉넉지 않은 해솔이 치료를 위해 1000만원을 지원했다.

해솔이는 입원 1년 만인 지난달 4일 퇴원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차창 밖 풍경에서 눈을 못 뗐다고 한다. 엄마 김씨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는데…”라며 “덕분에 올해 크리스마스는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간 이식을 해야 할 상황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그래 온 것처럼 가족이 기도하고 훌륭한 의료진이 힘써주고 계시니 해솔이도 다른 건강한 아이들처럼 걷고 말하는 날이 곧 오리라 믿는다”고 했다.

언니 해나는 작년 세브란스병원 로비에 있던 ‘크리스마스 소원 트리’에 “해솔아~ 같이 집에 가자. 얼른 나아”라는 소원 카드를 썼다. 올해는 소원 트리에 이런 카드를 남겼다. “해솔아, 우리한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언니 해나(왼쪽)와 해솔이, 주치의인 은호선 교수. /고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