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실손·비급여 개편안’이 윤곽을 드러낸 이후 의료계와 실손 보험 가입자를 중심으로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보험사 배불려주는 정책” “개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왜곡된 의료 시장을 정상화하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5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실손·비급여 개편안’을 오는 9일 관련 공청회에서 공개한다. 비중증 보장은 대폭 줄이고, 중증 보장은 늘리는 ‘5세대 실손보험’의 골자를 발표하는 것이다. 개편안 초안에는 도수 치료 등 과잉 우려가 있는 비급여 항목을 ‘관리 급여’로 지정해 통일된 가격을 정하고, 실손보험 청구가 빈번한 비중증·비급여 치료에 대해 실손보험 본인 부담률을 현행 20% 수준에서 90% 이상으로 대폭 인상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급여인 물리치료와 비급여인 도수 치료를 섞어 진료하는 ‘병행 진료’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한편, 병의원에서 환자에게 실손보험 보유 여부를 물을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의료계에서는 “비급여 의료행위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이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실손보험은 민간 보험사와 보험 소비자 개인이 맺은 사적 계약의 영역인데, 국가가 개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조치를 시행하려 한다는 것이다. 최안나 전 의협 기획이사 겸 대변인은 “환자의 건강권, 의료 소비자의 권리, 의료기관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규제 추진을 중단하라”고 했다.
실효성 있는 비급여 의료행위 자체가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적극적 진료’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고가 약제 등 비급여 치료가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환자의 실손보험 보유 여부를 확인조차 못한다면 이런 치료법은 말을 꺼내기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개원가에서는 비급여 진료가 상대적으로 많은 정형외과나 마취통증의학과 등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부 물리치료사 커뮤니티에서는 “물리치료사들 밥 벌어먹기 끝났다” “마사지샵 차려야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물리치료사들은 정형외과 등지에서 통증 치료를 담당한다.
정부는 1·2세대 실손보험 재매입 방안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보험 재매입은 보험사가 일정 금액을 가입자에게 지급하고 계약을 해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1·2세대 실손보험은 2017년 3월까지만 가입이 가능했는데, 이후 출시된 3·4세대 실손보험에 비해 혜택이 크고 갱신이 필요하지 않아 의료비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이를 놓고 “정부가 앞장서 보험사들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만 일부 환자가 지나치게 실손 보험금을 빼먹어서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보험금을 ‘눈먼돈’이라고 생각하는 풍토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조장될 수밖에 없고, 정부가 이를 규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지방 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의사는 “효과가 드라마틱하지도, 입증되지도 않은 도수치료가 회당 10만원인데, 매주 3회씩 한 달간 치료를 받으면 매달 치료비가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며 “줄줄 새는 실손보험을 막을 필요가 있긴 했다”고 말했다.
정부안대로 실손보험 개선안이 확정되더라도, 일부 의사와 ‘극렬 의료 쇼퍼’만 타격을 받을 뿐 대부분 소비자에게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3496만명) 가운데 62%는 보험금을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금을 청구한 1313만명 중 상위 10%(131만명)가 전체 보험금의 56.4%인 6조7000억원을 수령했다. 1인당 평균 514만원이다. 연간 보험금을 1000만원 이상 받은 사람도 76만명(2.2%)이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