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대전 서구의 한 이비인후과가 환자와 보호자로 붐비고 있다. 접수 창구 화면에 ‘예약한 경우라도 대기 시간이 생길 수 있다’는 안내 문구가 표시돼 있다. /신현종 기자

13일 오전 기준 경기 화성시에서 사망자가 발생해 화장을 하려면 최소 5일장을 치러야 한다. 관내 화장장인 화성 함백산추모공원이 오는 16일까지 모든 화장장 예약이 꽉 찼기 때문이다. 이 화장장에선 오전 7시부터 하루 50여 구의 시신을 화장하는데, 최근 호흡기 질환 증가와 함께 사망자가 갑자기 몰렸다. 화성시뿐 아니라 부천시, 안산시, 안양시 등 함백산추모공원 담당 관내에서 이날 사망할 경우 유족들이 화장을 신청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은 17일 오후 1시로 나타났다. 5일장을 치르거나, 관외 다른 화장장으로 ‘원정 화장’을 가야 한다는 뜻이다.

부산영락공원·대구명복공원·대전시정수원·용인평온의숲·수원시연화장 등 전국 곳곳의 화장장에서 오는 15일까지 모든 예약이 꽉 찼다. 발열·기침을 일으키는 급성 호흡기 바이러스 질환들이 동시에 유행하고, 폐렴 등으로 고령자들의 사망이 늘면서 벌어진 일이다.

8년 만에 최대 유행 중인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과 함께 코로나가 재유행 중이고, 영유아에게 특히 위험한 RSV(호흡기 세포 융합 바이러스) 환자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사람 메타뉴모 바이러스(HMPV)의 확산세까지 겹쳤다. 불과 2~3년 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을 겪은 후 또다시 호흡기 질환이 동시 유행하면서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유족들이 곤란을 겪는 건 화장장뿐 아니라 장례식장도 마찬가지다. 장례식장마다 빈소가 꽉 차 유족들이 고인을 안치실에 모셨다가 다음 날 빈소를 차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장례협회 관계자는 “혹서·혹한기같이 사망자가 늘어나는 기간에 4일장을 치르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번엔 계절적 요인과 함께 감염병마저 유행하면서 5일장까지도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장례 업계에선 지난달부터 폐렴이 사인으로 진단된 고인들이 급증했다며 이 무렵 유행하기 시작한 독감을 그 배경으로 지목한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겨울에 원래도 고령 사망자가 늘긴 하지만, 최근 폐렴이 사인인 고인들이 다른 해에 비해 늘었다”며 “아직 독감 유행이 정점에 도달하지 않아 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걱정”이라고 했다.

직장에서도 독감 등으로 인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와 달리, 의무 격리 기간이 있거나 재택근무가 일반화된 상황은 아니다. 독감 등에 걸려도 사무실에 출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환자들은 눈치 보이고, 주변 직원들은 옮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한다. 지난달 26일 독감에 걸린 서울 강남구의 직장인 한모(31)씨는 “병원에 가기 전 사무실에서 기침을 하니 ‘너 코로나 아냐?’라며 동료들이 눈치를 줬다”며 “독감 확진이 된 후엔 개인 연차를 쓰고 회사를 쉬었다”고 했다. 연초 모임이나 회식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코로나 팬데믹 때처럼 마스크를 나눠주거나 손 소독제를 사내에 비치하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선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해달라” “병가를 쓸 수 있게 해달라” 등의 요구도 나온다.

호흡기 감염병에 취약한 영유아가 있는 가정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아과와 이비인후과에 환자들이 몰리며 ‘오픈 런’이 일상화됐고, 접수 시작 1~2시간 만에 그날 진료 예약이 마감되기 일쑤다.

이런 가운데 지자체는 주민들에게 마스크 착용과 백신 접종을 적극 권고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 12일부터 전 시민 대상 ‘마스크 자율 착용 캠페인’을 시작했다. 경기도도 지난 10일 도내 31개 시·군 보건소장 회의를 열고, 독감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 착용과 설 연휴 기간 전 백신 접종을 권고했다.

현재 글로벌 제약사는 독감과 코로나를 동시 예방하는 ‘콤보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으로 잘 알려진 모더나는 콤보 백신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내년 3월 가교 임상(국내 승인을 위한 추가 임상)을 시작할 예정으로, 2~3년 내 허가 절차가 완료될 것으로 전망된다. 화이자·노바백스·SK바이오사이언스 등도 ‘콤보 백신’을 개발 중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첫째 주 인플루엔자 환자 수는 1000명당 99.8명으로 지난주 73.9명보다 약 1.4배로 증가했다. 이는 현재와 같은 수준의 호흡기 표본 감시 체계가 구축된 2016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질병청은 지난해 12월 20일 인플루엔자 유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코로나 입원 환자도 올해 첫 주 131명으로, 4주 동안 오름세다. RSV 감염증 입원 환자도 같은 기간 578명, HMPV 환자 수도 233명으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