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민 경제부 차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2012년 트위터에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 ‘가붕개’라는 화두를 던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140자 제한에 막혀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붕개가 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은 가르쳐줄 수 없었다.

긴 와신상담 끝에 비로소 정권을 잡은 조 전 장관과 동지들은 지난 3년여간 국정을 펼치며 바람직한 가붕개 상(像)을 국민에게 전파하는 데 힘써왔다. 우선 어린 시절엔 친구들과 성적으로 경쟁하거나 남들보다 좋은 학교를 다니려는 욕망을 품어선 안 된다. “교육 격차가 사회 계층 격차로 이어지고, 학교와 학생 간에 위화감을 조성”(유은혜 교육부 장관)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객관식 시험을 없애고 특목고를 폐지하는 건 행여 가붕개들이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는 헛된 욕망을 갖지 못하게 하려는 배려다.

그렇게 학교를 나와 취업을 고민하는 가붕개들을 위해선 정부가 잔뜩 늘린 공무원과 공공기관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혹시 운이 좋으면 공기업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되는 성은을 입을 수도 있다. 그 인건비가 결국 세금에서 나가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재정을 곳간에 쌓아두기만 하면 썩어버린다”(고민정 의원)고 받아치면 된다. 그래도 일자리를 못 구했다면 정부가 새로 만든 수십만개 ‘디지털 뉴딜’ 일자리에 눈을 돌려보자. 정부 설명에 따르면, 6개월간 월 180만원을 받으며 엑셀 입력 같은 단순 작업만 해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정보화 전사로 거듭날 수 있다.

반면 의사 같은 고소득자는 한순간 적폐로 몰리거나 ‘공공재’ 취급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내 돈을 들여 어린이집·요양원 같은 시설을 운영하거나 임대 사업자로 등록했다면 하루아침에 정부 정책이 바뀌어 사유 재산이 침범당해도 순순히 받아들이는 미덕을 갖춰야 한다.

가붕개 등급을 결정하는 여러 항목 중 가장 중요한 건 집이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말대로, 자가 보유자가 늘어나면 그 지역이 보수화되므로 가붕개는 섣불리 ‘내 집 마련의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 말처럼 중산층이 되어서도 공공 임대주택에 살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마땅하다. 정부가 대출을 틀어막고 주식과 부동산에 세금을 중과하는 건 가붕개들이 주제넘게 ‘자산 증식을 통한 계층 상승’을 시도하는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젊은 층이 ‘영끌’로 집 사는 게 안타깝다”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말에 이런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이런 주의 사항을 지키면 평생 가붕개로 사는 데 부족함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저절로 ‘행복한’ 가붕개까지 되지는 못한다. 이 나라를 용이 나올 수 없는 세상으로 만든 장본인들은 여전히 서울에 몇 채씩 집을 가지고 말년까지 권세를 누리며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고 때 되면 집 한 채씩 물려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가붕개들 마음에 열불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들은 국민을 남자와 여자, 서울과 지방, 노인과 청년, 집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갈라쳐 끊임없이 싸움을 부추긴다. 괜히 못 오를 곳 쳐다보며 좌절하지 말고 가붕개들끼리 서로 투닥대며 스트레스나 해소하라는 배려다. 선심 쓰듯 가끔 용돈 쥐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가붕개들에게 아예 용들의 일에는 관심 끄라며 헌법에도 없는 “조금 있다가 알아도 될 권리”까지 하사했다. 그 세심함에 미천한 가붕개들은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