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진인(塵人)’, 곧 티끌처럼 특별한 존재가 아닌 이로 자처한 삼십대 후반 평범한 가장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옛날 왕조 시대의 상소문 형식으로 올린 ‘시무 7조’가 반박 상소문까지 불러오며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정치적인 입장의 호불호를 떠나 이 글이 많은 이의 주목을 받은 것은 코로나19와 경제적 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대다수 시민의 마음을 진심으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진심을 올곧게 운반하는 것은 맑은 기상의 선비를 연상케 하는 고풍스러운 문체다. ‘인간의 본성은 본디 나약하나/ 이 땅의 백성들은 특히 고난 앞에서 결연하였고/ 인간의 본성은 본디 추악하나/ 이 땅의 백성들은 특히 역경 앞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였나니…’ 이런 표현들은 고난 앞에 굴하지 않는 민초들의 비장한 공감을 자아낸다.
조은산은 그저 필명일 뿐이고 화제가 된 ‘진인’이라는 호는 총각 시절 일용직 공사장을 전전하며 매일같이 호흡했던 현장의 먼지와 매연이 자신의 처지와 닮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먼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인간이 욕망하는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의 무상함을 은유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어왔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까지 한국의 다운타운 음악다방이나 심야 FM의 단골 리퀘스트 곡이었던 미국의 심포닉 록 밴드 캔자스의 ‘Dust in the Wind’도 다르지 않다. 인간의 모든 꿈도, 오래된 노래도, 우리가 이룩한 모든 것도 먼지에 불과하다고 이 노래는 조용히 읊조린다.
‘집착하지 마세요/ 대지와 하늘 그 밖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두 사라져갈 뿐이죠/ 우리 모두는 먼지에 불과합니다/ 모든 건 바람에 날리는 먼지일 뿐이죠…’
이 곡의 작곡자인 기타리스트 케리 립그렌의 어쿠스틱 기타와 로비 스타인하르트의 집시 바이올린이 단정하고 금욕적으로 울리는 가운데 스티브 월시의 목소리가 그윽하게 다가온다. 이런 노래가 요즘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