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다. 그는 본에서 태어났지만, 성년이 된 뒤 35년간은 대부분 빈에서 살았다. 그는 빈에서만 무려 60번 이상 집을 옮겨 다녔는데, 1827년 3월 26일, 생의 마지막 날을 보낸 곳은 17세기 수녀원 건물을 개조한 아파트, ‘슈바르츠슈파니에르하우스’였다. 베토벤이 한 번이라도 스쳐간 집은 지금 모두 유명 유적지가 됐지만, 이 마지막 집은 철거됐고 오직 그림으로만 남아있다. 베토벤이 세상을 뜨고 사흘 뒤, 황제 프란츠 2세의 궁정 화가였던 요한 회클러(Johann Nepomuk Hoechle·1790~1835)가 그 모습을 고스란히 그림에 담아둔 덕이다. 프란츠 2세는 베토벤의 열렬한 후원자이자 제자였던 루돌프 대공의 형이다.
마치 사진을 찍듯 재빠르고 유연하게 붓을 놀려 완성한 이 흑백의 그림 한가운데에 주인을 잃은 피아노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다. 두 개의 초는 오래도록 타다가 꺼진 뒤 아무도 보살피지 않은 탓에 심지가 길게 늘어졌고, 피아노 위에는 열린 창으로 바람이라도 불면 한꺼번에 쏟아질 듯 악보와 종이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다. 오른쪽 창틀에는 조각가 안톤 디트리히가 제작했던 베토벤의 석고 흉상이 놓여있는데 커튼이 가리고 있어 이 또한 그의 부재(不在)를 암시하는 것 같다.
회클러는 원래 전쟁 기록화를 주로 그리던 화가였다. 전쟁터를 누비다 스파이로 오인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베토벤에게 이 방은 소리를 잃은 귀와 질병의 고통을 짊어진 채 위대한 교향곡을 만들어낸 전쟁터였을지 모른다. 그의 고투 덕에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그의 음악을 들으며 안식을 얻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