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마티스는 평생 경쟁자였지만 폴 세잔(Paul Cézanne·1839~1906)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입을 모았다. 화가 모리스 드니는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가 인류 역사를 바꿨다고 했다. 물론 스티브 잡스의 사과가 나오기 전이다.

폴 세잔, 사과 바구니, 1895년, 캔버스에 유채, 65×80cm,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소장.


정작 세잔의 사과 그림을 보면 적잖이 당황스럽다. 바구니에서 쏟아져 나온 사과들이 예쁘거나 탐스럽지 않고, 유리병은 비뚤어졌으며, 접시에 쌓은 과자는 허공에 떠 있는 것 같고, 어색하게 구겨 놓은 냅킨 아래의 테이블은 두 동강이 났는지 좌우 높낮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정물이 이토록 불안정하게 놓였는데도 전체를 보면 어디 한 군데 허투루 그린 부분이 없어서 대단히 견고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세잔은 그때까지 회화를 구속했던 많은 규율을 깨버렸다. 자연에 존재하는 대상을 화폭에 아름답게 옮기고, 수학적 원근법을 적용하여 고정된 시점을 창출하고, 명암법으로 일관된 부피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 르네상스 이래 서양화를 지배한 법칙이었다. 그러나 사실 자연은 불완전하고, 누구도 원근법처럼 한 지점에 눈을 고정한 채 흔들림 없이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세잔은 사과들을 보고 또 봤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눈을 깜빡이기만 해도 모든 사과는 달리 보였다. 세잔은 시간을 두고 테이블 주위로 움직여 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서로 다른 모든 장면을 한 화면에 담기 위해 신중하고 성실하게 붓을 놀렸다. 오래 그림을 그리다 보니 썩어 나가는 사과도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성실하게 규칙을 어긴 세잔은 미술의 흐름을 바꿨고, 피카소와 마티스 같은 반항아들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