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체사리 ‘배신당하는 예수’. 1596~97년, 동판에 유채, 77x56cm. 로마 보르게제 갤러리 소장.
우리 귀신은 그믐밤에 나오지만, 서양 귀신은 보름밤에 나온다. 서양 문화에서 달은 밝고 따뜻한 태양의 반대편에 있는 춥고 어둡고 사악한 존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체사리(Giuseppe Cesari·1568~1640)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가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 병사들에게 사로잡힌 것도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보름달은 불길한 사건의 조짐이었던 것이다. 체사리는 1600년 무렵 로마에서 가장 ‘잘나가는’ 화가였다. 교황 클레멘트 8세와 식스투스 5세의 신임을 연이어 받았던 그는 라테란 대성전을 비롯한 로마 주요 성당들의 천장과 벽면의 대형 프레스코화를 많이 그렸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봐야 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체사리는 균형 잡힌 구도에 장엄한 인물들을 안정적으로 배치해서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17세기 중반 이후, 바로크 시대의 혁신을 이끌었던 화가 카라바조도 체사리의 공방에서 도제 생활을 했을 정도로 그는 존경과 성공을 함께 누렸다. 당시 귀족들은 개인 서재 ‘캐비닛’에서 홀로 그림을 즐기는 게 유행이었는데, 체사리는 거대한 벽화를 그리면서 동시에 작은 캐비닛 그림에도 능했다. 동판에 그린 이 ‘배신당하는 예수’는 어둑한 방안 촛불 아래서 가까이 두고 보기에 딱 좋은 그림이다. 시린 달빛과 붉은 횃불이 교차하는 가운데서 군중들은 아우성치고 베드로는 칼을 휘두른다. 혼돈의 가운데서 여린 금빛 후광을 두른 예수의 몸짓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이처럼 색채, 방향, 밝기가 미묘하게 서로 다른 빛들이 곱게 연마한 동판 위에서 떠오를 때, 마침 창밖에 보름달까지 보인다면 그날의 혼란이 더욱 실감 나게 느껴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