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백형선

지금은 구글이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이 되었지만, 설립 당시만 해도 구글이 지금처럼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보여주는 일화가 창업자들이 구글의 검색 엔진을 2000년대 초, 당시 인터넷 기업의 대명사였던 야후에 팔려다 실패한 일이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애초에 검색 엔진이 광고를 파는 것을 사업 모델로 삼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생존보다는 큰돈을 받고 팔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독자 생존의 길을 택했다.

20년 전 MS를 괴롭혔던 반독점 소송

그런 구글의 초기 성장을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던 기업이 있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당시 MS의 규모는 스타트업을 벗어나지 못한 구글의 싹을 자를 수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구글이 인터넷을 장악하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다. MS는 왜 구글을 사버리지 못했을까? 1990년대 초에 시작해서 근 10년 동안 MS를 괴롭혔던 반독점 소송에 대한 악몽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MS가 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자사의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 탑재해서 경쟁자인 넷스케이프를 상대로 부당한 우위를 누린다고 판단했고, 여러모로 반독점법의 적용 대상이라고 보았다. 때마침 일어난 9·11 테러로 부시 정권이 힘을 안보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MS는 기업 분할을 모면할 수 있었지만, 10년 동안 정부와의 싸움으로 사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경영진은 구글을 두고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구글은 MS를 위협하는 테크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당시 MS의 기업 문화를 아는 사람들은 구글이 MS에 인수되었다면 절대 지금과 같은 기업이 되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다시 반독점 칼 꺼내든 美 의회와 행정부

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그 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미국의 의회와 행정부는 다시 한번 반독점의 칼을 꺼내들었다. MS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지만, 이번에는 구글이 도마에 올랐고, 아마존과 페이스북, 애플도 함께 조사받게 되었다. 지난 6일 미 하원 법사위원회의 반독점 분과위원회가 공개한 45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는 이 네 기업의 독점 행위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그 행위들이 궁극적으로 업계에서 “경쟁을 해치고,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기업들에 반독점법을 적용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미국의 반독점법인 셔먼법(1890)과 클레이턴법(1914)은 무려 100년이 넘은 법으로, 19세기 말에 등장한 ‘강도 남작(robber baron)’이라 불렸던 거대 기업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졌다. 당시 철도⋅석유⋅철강 재벌들은 경쟁자들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누르거나 인수하여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한 후에 가격을 올려서 돈을 벌었다. 이들에게는 크게 두 가지 혐의가 있었다. 경쟁을 해쳤고, 그 결과로 가격 상승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것이다.

그런데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시카고학파를 중심으로 독점의 폐해를 새롭게 해석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경쟁을 해치더라도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는다면 기업의 효율이 향상한 것이기 때문에 반독점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이런 법 해석은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미국 정부의 태도를 지배하고 있는데, 이 기준을 21세기 테크 기업들에 적용해보면 ‘소비자의 피해’를 증명하기 쉽지 않다. 가령, 사용자들이 페이스북 같은 대형 플랫폼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 서비스에 가면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장을 독점하는 거대 플랫폼은 그렇지 못한 플랫폼에 비해 사용자에게 이득이다. 비슷한 이유로 아마존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가격을 낮춰버리면 소비자들에게는 이익이 되기 때문에 이 기업들은 단지 독점이라는 이유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최근 美 여론은 거대 테크 기업에 불리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의 여론이 바뀌고 있다. 독점의 기준을 느슨하게 바꾼 결과로 탄생한 거대 테크 기업들은 100년 전의 독점자본보다 덩치가 더 커졌을 뿐 아니라, 신생 스타트업이 혁신을 통해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실리콘밸리의 정신을 죽이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글은 야후와 MS를 이길 수 있었지만, 구글을 누를 수 있는 검색 엔진, 페이스북을 누를 수 있는 소셜미디어가 나올 수 있으리라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 의회에서는 이참에 독점의 기준을 새롭게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단지 가격만 낮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반독점법의 애초 정신으로 되돌아가서 소비자 외에도 “노동자와 기업가, 독립 기업, 열린 시장, 공정한 경제, 민주주의 이상”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반독점법의 원칙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거대 테크 기업의 영향력이 국민이 선출한 의회와 정부의 힘보다 더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여기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모두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차기 백악관과 의회를 어느 당이 차지하든 상관없이 반독점 심사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글⋅페이스북⋅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정말로 쪼개지게 될까? MS의 CEO로 반독점 조사를 받은 스티븐 발머는 기업 분할은 불가능할 거라 전망하면서도 “정치인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게 하지 말고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실리콘밸리와 워싱턴의 힘 싸움(과 로비전)을 예고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