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살리기 서명 한 번만 해주세요!” 3년 전 겨울, 광장에서 행인들을 향해 외치는 학생들의 목소리엔 쑥스러움이 가득했다. 디지털 매체로 소통하는 데만 익숙한 요즘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처음 보는 이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내가 전공한 분야의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전국의 원자력 전공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KTX역 광장에서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 서명운동을 펼치게 된 계기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에너지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탈(脫)원전을 추진했다. 계획과 인허가부터 건설까지 10년을 내다보고 하는 신규 원전 사업을 모두 중단했다. 안전 테스트를 이미 통과한 원전도 안전을 핑계로 무리하게 정비기간을 늘려 수입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되레 높였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할 때 한전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천연가스 발전단가가 원자력보다 2~4배 비싸기 때문이다.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사건 때 우리 학생들은 이를 ‘월성 원전 기획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전국 100여 대학 캠퍼스에 대자보를 붙였다. 면허를 갱신하기 전 이미 7000억원을 들여 정비를 모두 마친 원전을 억지로 폐쇄했다. 경제성 평가에서 ‘계속 운전’이 3700억원의 이윤을 남긴다는 보고서를 수차례 수정해 이득을 줄이고 결국 폐쇄를 강제했다. 답을 정해놓고 보고서 수치를 끼워 맞춘 것이다.

새 정부는 탈원전 5년이 낳은 에너지 수급 차질이라는 부담을 떠안은 채 시작하게 됐다. 출범 초기부터 신한울 3, 4호기는 물론이고 백지화된 원전 6기 건설 계획을 모두 부활시켜야 한다. 건설 예정구역마저 철회된 천지원전은 부지확보부터 서둘러야한다. 앞으로 전기차를 확대하고 산업을 전력화하며 전력 수요가 증가할 것이기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6기의 원전은 전문가들의 수요예측에 따라 건설이 예정된 발전소였다. 법적 근거 없이 추진된 탈원전과는 달리 경제성, 안전성, 에너지안보 등 다방면의 평가 후에 수립된 계획이기에 새 정부는 최소한의 재평가만 하고 신속하게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

탈원전 추진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불법적 절차들에 대한 처벌도 확실히 해야한다. 경제성 조작과 건설 중단으로 원전 지역 주민들, 원전 분야 기업인과 노동자들, 한전 주주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본 만큼 잘못에 대해선 분명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지시를 내린 청와대와 산업부 인사들에 대해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 이뤄져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한다.

세계는 원자력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유럽은 녹색 분류체계에 원자력을 포함했고 미국은 대규모 원전 투자가 포함된 인프라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러시아산 원유·가스에 의존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원전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우리는 뛰어난 원전 건설 노하우를 갖고 있다. 원전을 도입하는 여러 나라가 러시아·중국에 에너지 주도권을 넘길 수 없다며 두 나라를 입찰에서 제외하고 있다. 우리에겐 어느 때보다 유리한 시장이 형성됐다.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만 보이면 제2의 원전 수출은 어렵지 않다.

대형원전을 도입하기 부담스러운 곳이나 출력을 빠르게 조절가능한 에너지가 필요한 곳에 도입할 수 있는 소형원전의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소형원전은 선박 추진에도 활용할 수 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내뿜는 대형 선박들에 적용할 수 있는 친환경 추진기술은 원자력이 유일하다. 우리의 우수한 조선산업과 연계하면 상업용 선박 뿐만 아니라 부유식 원전, 원자력추진 잠수함과 항공모함까지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그 어떤 정책도 전문가들의 냉철한 분석과 법적 근거 위에서 추진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편향된 인사를 기용한 것이 문재인 정부 모든 실책의 원흉이었다. 사실과 과학에 근거해 원전에 대한 막연한 공포 대신 비전을 제시해야 할 지도자가 오히려 그 공포를 정치에 이용하는 쉬운 길을 택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이념에 편향되지 않은 최고의 전문가들을 기용하기를 바란다. 뛰어난 전문가가 정책 결정을 내린다고 할 때 학생들은 안심하고 강의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