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시기 조정 논란으로 결국 교육부 장관이 물러났다. 반대 여론이 컸던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빨리 입학하면 불리하다’는 심리적 판단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학교와 입시라는 경쟁 체제에서 빠른 입학은 경쟁자와 비교할 때 신체적, 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행동인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충분히 준비가 된 이후에 진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인식은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출산 예정일이 12월로 정해지면 아이가 나중에 경쟁에서 불리할까 불안해하고, 출산일을 늦출 수 없을까 고민하는 모습도 똑같은 현상이다.

/그래픽=박상훈

우리나라 청년의 사회 진출은 다른 나라에 비해 늦다.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 취업을 위해 대학 졸업을 늦추고, 이후에도 몇 년간의 취업 준비 기간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군 입대까지 포함할 경우 남성들의 사회 진출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가능하게 된 지 오래다. 경제활동 지연은 결혼 연령 상승으로 이어지고, 만혼 추세의 일반화는 저출산 경향으로 이어진다. 정부에서는 신혼부부에 대한 지원을 통해 출산율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신혼부부 자체가 나이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한계는 분명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여성정책연구원 공동 연구팀이 발간한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와 미래 경제사회 발전’ 보고서에서는 결혼이 1년 더 늦어질수록 합계출산율은 0.1명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지난 20년간 초혼 연령이 4.6년 늦어졌음을 고려해보면 합계출산율이 0.5명 정도 낮아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지연사회의 한 단면이다.

정치에서도 지연 현상은 분명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사회에서 할 만큼 해본 사람이 화룡점정을 이루겠다고 나설 때가 비로소 정치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정치 역시 젊은 나이에 경험하고 익혀야만 제대로 된 ‘직업 정치인’이 될 수 있다. 국회의원의 자리에 앉는다고 정치인이 되지는 않는다. 정치에서 필요한 상대방과의 투쟁, 협상, 타협, 연대 등은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경험과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평등한 대화와 타협보다는 위계에 의한 질서와 지시가 더 강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학습능력이 탁월한 젊은 시기에 시작해도 익히기 쉽지 않은 정치적 자질을 머리가 굳고 고집만 남은 연령대의 정치인에게 요구하고, 제대로 못한다고 비난하면서 선거 때마다 대폭적인 물갈이를 하지만 바뀌는 것은 별로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15년 스웨덴에서 1983년생 정치인 구스타브 프리돌린(Gustav Fridolin)이 32살의 나이로 교육부 장관이 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스웨덴의 경우 중학교 때부터 정당에 가입하고 다양한 정치활동에 참여하면서 경력을 쌓기 때문에 정치활동을 지속했을 경우 30살쯤 되면 정치 경력 15년 차에 해당하는 노련한 정치인으로 대해준다. 프리돌린도 의회 의원 경력만 10년에 이르는 중견 정치인이었다.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정치와 행정은 늙어가고 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할 때 전 세계 하원의원의 30.2%는 45세 미만이며, 2018년 28.1%에 비해 2.1%포인트 증가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21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4.9세이며, 50세 미만 의원은 37명으로 전체의 12.3% 수준에 불과하다. 행정부 역시 늙어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장관 평균 연령은 60.5세인데 OECD 회원국 전체적으로 보면 장관급 각료의 평균 연령은 53세이다. 우리나라의 행정 각료들은 일본 다음으로 고령화된 상태이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다양한 경로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가급적 결정적 순간을 뒤로 미루고, 더 많은 준비를 할 것을 강요한다. 인생 초반에 획득한 학벌, 입사의 결과가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원하는 지위는 한정적인 만큼 사회적으로 보면 더 큰 손실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 대오에서 조기 이탈할 경우 이에 뒤따르는 무능한 낙오자라는 평가가 두렵기 때문에 낮은 확률의 게임에 의욕 없이 참가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힘겨운 투쟁을 통해 좋은 직장과 직업을 획득하더라도 이미 의욕과 열정이 상실되어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연사회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1년 화성에 착륙한 미국의 퍼서비어런스호 개발 프로젝트의 수석 엔지니어인 애덤 스텔츠너는 고교 시절 낙제를 거듭하였고, 졸업 후에는 클럽밴드에서 연주를 하였다. 연주를 마치고 늦은 밤에 집에 돌아가던 중 바라본 하늘의 별 위치가 이전과 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2년제 대학인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해 물리학을 접하면서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는 이후 UC 데이비스, 칼텍, 위스콘신대 등을 거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NASA에 합류하여 10년 넘게 화성탐사선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정해진 길을 가지 않더라도 나중에라도 도전하고 꿈을 이룰 경로를 제공해주는 사회였기에 가능한 일화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상당수는 실패할까 두려워 미루고 늦추며 특정한 경로와 성취를 이루도록 모두에게 강요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를 마쳐야만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도 다양한 일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선택과 다양성을 억누르고 있다. 인구감소 시대에 한 사람이 감당하고 수행해야 할 일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인생의 여러 지점에서 다양한 도전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회구조로의 변화를 모색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