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정의선(왼쪽) 현대차그룹 회장이 11일 경기도 화성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테슬라 전기차를 산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자동차를 산 게 아니라 혁신을 샀다” “굴러가는 컴퓨터에 투자했다”는 등의 얘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자율주행, 초고속 열차, 우주 개척 등 다소 무모한 아이디어를 던지고 그 분야에 도전해서 현실화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팬덤에 힘입어 테슬라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131만대 넘게 판매하면서 전기차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일부 테슬라 차주는 이슬람 신도처럼 강한 믿음을 테슬라에 보인다는 뜻에서 ‘테슬람(테슬라+이슬람)’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테슬라의 인기는 전통적인 자동차 시장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품질이나 서비스 면에서는 부족한 게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자랑하는 자율주행 시스템 ‘오토파일럿’은 오작동으로 사고만 수십건 났고 사망자도 여럿 나왔다. 최근 미국에서 출고된 모델Y 차량은 운전대 결합 불량으로 주행 도중 운전대가 통째로 뽑혀버리는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 테슬라에는 수동으로 차문을 열고 닫는 손잡이 자체가 없어 비상시 탈출이 어렵다. 또 100% 온라인 구매 방식에다 차량이 나오면 쇼핑몰 주차장 등에서 직접 인도해야 한다. 차량 AS 센터는 주말에 닫고, 국내 연락 창구는 080으로 시작하는 유선 번호 딱 하나다. 하루 만에 1000만원씩 올렸다 내렸다 하는 고무줄 가격 정책도 이해하기 어렵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2020년 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모델 3 딜리버리 이벤트에서 춤을 추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소비자들이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테슬라를 산다는 사실이다. 테슬라의 경쟁력은 여기에 있다. 머스크에게는 서사가 있다. 머스크는 ‘사기꾼’ ‘악마’로 불릴지언정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머스크는 ‘2050년까지 화성에 100만명을 이주시킨다’는 목표로 지난 2002년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를 설립했다. 당시만 해도 터무니없는 얘기로 들렸지만 스페이스X 는 우주선 ‘스타십’으로 이르면 이달 첫 지구궤도 시험 비행에 나설 정도로 성장했다. 머스크의 도전 정신이 테슬라라는 브랜드에 덧씌워지면서 테슬라는 ‘미래 지향적 차’의 대명사가 됐다. 테슬라를 탄다는 건 단순히 전기차를 타는 게 아니라, 마치 내가 머스크와 함께 미래로 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일이 됐다. 테슬라 차주들이 비상 탈출 연습까지 해가며 테슬라를 타는 이유일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테슬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과 안전성을 인정받았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아이오닉5와 EV6로 미국에서 실시하는 ‘북미 올해의 차’와 유럽에서 실시하는 ‘유럽 올해의 차’, 그리고 전 세계 출시된 차량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 올해의 차’ 최고상을 모두 휩쓸었다. 올해는 아이오닉6가 ‘세계 올해의 차’에 선정되면서 현대차는 2년 연속 최고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전기차 후발 주자인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개발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다.

하지만 최상위 품질에도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37만대 수준으로 테슬라, 중국 비야디 등에 밀려 세계 7위에 머물러 있다. 단순히 품질이 좋은 차를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뼈아픈 현실이다. 지난 11일 현대차그룹은 29년 만의 국내 자동차 공장이자 국내 첫 전기차 공장 착공식을 열면서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 24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톱3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그 목표가 현실이 되려면 현대차는 ‘꼭 현대차여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아직 소비자들도 찾지 못한 그 숙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