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은 책을 안 본다. “공부하기 싫어 사업하는 건데유.” 경영서는 더더욱 안 본다. “남의 거 보면 흉내만 낼 텐디 뭐 하러.” 대신 상상을 한다. “맛있게 먹은 음식은 머리로 먼저 열 번 스무 번 만들어보쥬. 뭘 더 넣고 빼면 맛있어질까.”
그 상상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는 게 문제다. 음식에서 끝나지 않고 관광으로, 사업으로, 공익으로. 새해벽두부터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충남 예산시장’ 신드롬 역시 그의 엉뚱한 상상에서 비롯됐다. 쇠퇴일로의 예산 상설 시장을 리모델링한 지난 1월 이후 예산을 방문한 사람이 125만명. 인구도 증가했다. 지난해 7만7385명이던 예산군 인구가 4월 현재 7만8689명으로 늘었다. 지방 소멸 시대라며 앉아서 변죽만 울리던 정치인들의 뒤통수를 쳤다.
◇ 고향이라 실패해도 덜 쪽팔릴 듯해서
-하루 이삼십 명 오던 시장에 주말이면 1만~2만명 온다더라. 시장을 살려야겠다는 발상은 어떻게 하게 됐나.
“‘맛남의 광장’ ‘골목식당’ 같은 방송을 하면서 지역을 다녀보니 내가 어릴 때 가봤던 동네가 아니었다. 거리에 사람도 없지만 뭣보다 음식값이 비쌌다. 소비력이 떨어지니 가격이 올라가고 관광객이 안 오니 절대 매출이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예산이 고향이라 첫 실험장이 된 건가.
“실패해도 덜 쪽팔릴 것 같아서(웃음). 집안에서 운영하는 사학재단(예덕학원)이 있는 것도 핑곗거리가 됐다.”
-예산고, 예화여고 학생 수가 실제로 줄고 있다던데.
“입시 철 전국을 돌며 학교를 홍보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지역 소멸이 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귀농이 유행했지만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다. 수익이 창출돼야지. 전국 ‘골목식당’ 다녀본 경험으로 도움을 주면 젊은이들이 창업하러 오지 않을까, 홍콩·대만의 야시장 같은 걸 만들어놓으면 정착하는 사람이 늘지 않을까 상상했다.”
-낡고 오래된 예산 시장을 보고 “야, 이거 너무 좋다”며 감탄했다고.
“내가 어릴 때 본 시장 모습, 간판까지 그대로였다. 외관은 60~70년대 감성을 입히고 편의 시설, 화장실은 초현대화한 뒤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싼 가격으로 팔면 성공하겠다 싶었다.”
-예산군 공무원들과 시장 상인회는 난감해했다더라.
“그들은 다 밀어버리고 주상 복합 건물을 짓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웃음). 새 건물 지어 올린 시장 치고 성공한 데 없다고 얘기해줬다. 귀신 나올 것 같은 시장이 재밌고 신기해서 사진 찍어대는 젊은이들만 오게 해도 성공이라고 했다.”
-내부 공사부터 메뉴 개발, 집기 제공까지 백종원의 ‘더 본 코리아’가 20억~30억을 들여 직접 리모델링한 이유는 뭔가.
“지자체 예산이 집행되려면 하세월이 걸린다. 난 성질이 급해서 못 기다린다. 군(郡)의 승인이 나자마자 바로 공사에 들어갔다. 일단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 우선 화장실부터 남녀로 나누고 비데를 설치했다. 시장 골목에도 조명을 달고 함석 지붕을 넣었더니 다들 예쁘다고 하더라. 그제야 공무원과 상인들이 감을 잡았다. 이 사람이 말로만 하는 게 아니고, 진짜로 뭘 하려나 보다 믿게 된 거다.”
-1월 개장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2월 27일부터 한 달간 휴장도 했다.
“상인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주방 위생이며 식재료, 음식 가격까지 우리가 다 간섭하니까. 그렇게 안 했어도 먹고살았는데 왜 이렇게 괴롭히느냐는 거지(웃음).”
-예산읍 상인들 사이에 갈등도 있었다고.
“상대적 박탈감이 컸을 거다. 역전 시장에서도 (읍내) 예산시장으로 손님들 다 뺏겼다고 불평을 했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예산시장이 북적이니 인근 가게, 하다못해 편의점까지 매출이 올랐다. 시장처럼 열 배, 스무 배까진 아니어도 두 배, 세배는 올랐다. 역전 시장도 마찬가지다. 예산읍 인구보다 많은 외지인이 몰려오지만 예산시장은 그중 5%만 소화한다. 나머지는 어디로 가겠나. 시설 정비차 한 달간 휴장했더니 그 공백을 절실히 느끼더라. 예산시장이 문을 닫으니 원래 매출로 돌아간 거다.”
-맛도 맛이지만, 가격이 싸야 한다고 식당 주인들을 압박하더라. 멸치국수가 4000원, 고기튀김 3개에 2000원, 제주 은갈치 통구이가 8000원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한 청년몰 사업이 망한 건 가격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창업 기회를 준 대신 음식을 싸게 팔아야 한다고 처음부터 룰을 정해야 했다. 그런데 바깥 식당들과 똑같이 받았다. 잘되는 곳은 더 비싸게 받고. 대부분 외곽에 자리한 청년몰까지 비싼 음식을 사먹으러 올 이유가 없는 거다. ‘골목식당’ 할 때 찾아가 조언도 해줬지만, 그때 이미 실패를 예감했다.”
-위생도 지독하게 강조한다. 목숨 걸고 하지 않을 거면 그만두라고 주인들을 막 혼내더라.
“재래시장의 매력은 외부에 열려 있다는 점이다. 대신 위생이 맹점이다. 그래서 식당 안 위생만큼은 완벽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게 느슨해지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 날이 더워지면서 예산군은 지금 파리와 전쟁을 하고 있을 거다.”
◇ 수십억 투자? 난 손해 보는 장사 안 한다
-백종원의 ‘더 본 코리아’가 예산시장에 수십억 비용을 투자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투자와 보이지 않는 투자가 있다. 나는 눈에 안 보이는 투자가 훨씬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 재무 담당 CFO는 회사를 상장한 뒤에 하자며 말렸지만, 나는 상장에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고 설득했다. 충남 예산이 성공하면 다른 지자체들도 ‘우리도 해달라’며 손 들고 올 테니까.”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뜻인가?
“물론이다. 실제로 MOU 맺자는 지자체가 줄을 섰다. 바빠서 다 만나드리지도 못한다. 지역 개발 컨설팅 의뢰도 쏟아진다. 덕분에 우리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하우와 데이터를 얻는다. 뭣보다 지자체 예산이 이상한 조형물 만드는 데 쓰이지 않고 관광 수익으로 이어지도록 방향을 잡아준다는 보람이 크다.”
-그럼 현재 예산 시장 프로젝트에서 얻은 수익은 없는 건가?
“지금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진행할 다른 사업, 다른 지자체의 컨설팅은 비용을 받아야겠지. 실은 메뉴 개발부터가 다 비용이다.”
-예산 다음에 진행하는 지역의 테마는 시장이 아니라 ‘빈집’이라던데.
“시골 폐가를 활용하는 프로젝트다. 지자체들은 우리도 예산처럼 재래시장을 살려달라고 하는데 그 지역만의 매력 포인트를 찾아 관광으로 연결하는 게 내 목표다. 다행인 건, 예산시장이 성공하면서 지자체들이 지역의 오래된 건물들을 안 뜯는다고 하더라. 100년 된 양조장 헐었다고 내가 막 화를 내니까(웃음).”
◇ 지역민들의 양보도 필요하다
-예산시장이 잘되니 임대료가 오르고 건물주가 상인들을 내쫓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됐다.
“7천, 8천(만원)에 거래되던 상가가 3억, 4억으로 올랐다. 외지 업자들이 내려와 몰래 거래도 한다. 퇴거 요청을 받은 통닭집은 시장 내 다른 장소로 옮겨드렸고, 떡집은 건물주와 원만히 해결해 계속 영업하고 있다. 군에서 건물주들을 계속 설득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해 시장 안 폐점포 8곳을 미리 매입해두었다고 백종원 유튜브에서 밝혔던데.
“‘골목식당’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손님이 몰리니까 건물 임대료가 턱없이 올라 나중엔 음식 값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미리 점포를 확보했다. 어떤 건물주는 예산을 위해 좋은 일 하니 당신한테 인수하겠다는 고마운 분도 계셨다. 나는 지역을 살리려면 주민들의 양보와 헌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찬물 담긴 욕조에 뜨거운 물을 틀면 그 온기가 서서히 퍼져나가 전체가 고루 따뜻해지듯, 예산을 살리려면 주민들이 합심해 허리를 졸라매야 한다는 것이다. 관광객 몰려올 때 한몫 잡는다고 숙박비 올리고 음식값 올리면 인기는 오래 못 간다.”
-관광만으로 지역을 살릴 수 있을까. 교통, 의료 같은 기반시설이 우선 아닐까.
“내가 이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될 만큼 수익이 창출되는 게 먼저다. 의사들이 뭘 믿고 여길 들어오겠나. KTX가 뚫리면 오히려 인구는 줄어든다. 도시에서 출퇴근 하면 되니까. 수익이 되는 관광 자원부터 만들어야 한다.”
-지방이 사라진다며 대책 마련에 고심한 당국자들에게 할 말이 많겠다.
“소용없다. 그냥 현장을 많이 가봤으면 좋겠다. 이번 일 하면서 예산군 공무원들이 크게 바뀌는 모습을 봤다. 수동적이었던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변하더라. 8월 사과 맥주 축제 아이디어를 낸 것도 예산군 공무원이다. 주말 아침이면 ‘대표님, 지금 벌써 300명이 예산을 향해 달려오고 있어요’라고 톡을 보낸다. 티맵에 그런 기능이 있단다(웃음). 공무원 사회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도 결재 단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데, 나는 그자리에서 밀어붙이니 일이 커진다. 아마 예산군 공무원들은 날 죽이고 싶을 거다. 하하!”
◇ 길거리 음식만 먹고 다니는 이유
-예산시장 리모델링의 전 과정을 보여준 백종원 유튜브를 보면 가게의 창문 높이, 환풍기 위치, 심지어 멸치똥 따는 법까지 일일이 지적하고 지시하는 모습이 나온다.
“대학 졸업하고 인테리어 사업, 건축 자재 수입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쫄딱 망했다. 나중에 쌈밥집을 차리고 손님들에게 ‘어서 오십시오’ 하면서 ‘내가 왜 그 쓸데없는 사업들을 12년이나 했을까’ 후회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니 그런 경험들이 모두 도움이 되더라. 다 하늘의 뜻이었다(웃음).”
-사업에 실패한 뒤 홍콩에 죽으러 갔다는 게 사실인가?
“미식 천국이란 곳엔 가보고 죽자 했지. 그런데 거기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내가 몰랐던 음식, 처음 맛보는 것들. 중국에 가보니 거긴 더 어마어마했다. 이런 걸 모르고 죽으려고 했던가 싶은 게, 사업 아이디어가 막 떠오르더라. 죽는 대신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음식’에 승부를 걸었다. 17억 빚을 다 갚았다.”
-어릴 때부터 먹는 게 취미였다더라.
“온집안이 먹는 걸 좋아했다. 대천해수욕장 가서 바다엔 안 들어가고 해산물만 먹으러 다녔다. 설악산에 가도 등산은 안 하고 케이블카 타고 권금산장에 올라가 털보 아저씨가 파는 커피 맛만 보고 내려올 만큼 먹는 데 특화된 집안이었다. 중학교 때는 버스정류장마다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대학 때도 전공서는 안 읽고 ‘홍성유의 한국 맛있는 집 999′만 읽었다(웃음).”
-결혼 후 터키로 여행을 갔는데 남편이 길거리 음식만 먹고 다녀서 아내 소유진씨가 울었다고 하더라.
“내겐 피나는 노력이다. 난들 미슐랭 쓰리스타 식당에 가서 스테이크 썰고 싶지 않겠나. 그러나 외식 사업을 하는 사람은 마름모에서 가장 넓은 층을 차지하는 대중의 입맛을 갖고 있어야 한다. 최고급 식당들 음식에 익숙해지면 프랜차이즈는 실패한다.”
-요즘은 어떤 상상을 하시나.
“벼락처럼 통일이 되면 진짜 어마어마해질 거다. 지금 해외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은 비할 바가 아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한반도가 전쟁중이라고 생각해서다. 통일 후 불어닥칠 기회를 잡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근데 백종원은 좋은 리더는 아니더라. 유튜브를 보니 대표 앞에서 ‘아니요’라고 말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더라.
“내가 다 맞으니까(웃음). 사실 직원들도 주눅 든 척하는 거다. 내가 손님들 앞에선 착한 척, 통 큰 척, 공익을 위하는 척하듯이. 하하!”
☞백종원
1966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서울로 왔다. 연세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장사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서울고 시절 중고차 딜러로 첫 ‘알바’를 했고, 대학 시절 호프집도 경영했다. 건축, 무역 등 여러 사업에 실패한 뒤 1994년 외식 전문 기업 더본코리아를 설립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집밥 백선생’ ‘백종원의 골목식당’ 등에 출연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