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3일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주영 정몽헌 선대회장의 유업인 남북경협사업은 기필코 이어갈 것"이라는 현 회장은 푸근해 보이면서도 단호한 뚝심의 소유자였다. 2023.5.23 이태경기자

취임 20주년이지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밝게 웃지 못했다. 최근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 홀딩스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데다, 쉰들러 측이 현 회장 주식을 강제 압류하려는 등 경영권 공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다. 현 회장은 “배상금을 완납했는데도 강제집행을 요구하는 쉰들러는 국내 시장 점유율이 40%인 토종 엘리베이터 기업을 적대적 인수·합병하려는 것”이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사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아산이 2008년 이후 중단된 대북 사업을 접었다는 일각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취임 직후부터 매일이 전쟁이었다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경영 일선에 뛰어든 지 20년이다.

“처음부터 전쟁터였다. 보람된 일도, 기쁜 일도 있었지만 힘든 일이 훨씬 더 많았다.”

-두 달도 못 버티고 물러날 거란 전망이 많았다.

“신경 안 썼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적해서 일희일비할 시간이 없었다.”

-정씨가 아닌 현씨에게 현대그룹을 물려줄 수 없다는 이유로, 정상영 KCC 회장 등과 경영권 분쟁도 치렀다.

“남편에게 거대한 빚 상속을 받은 건데 집안 어른들은 내가 경영에 나서는 걸 원하지 않았다. 나도 애들 키우며 편하게 살고 싶었지만 이러다간 남편 유업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아 결단을 내렸다.”

-1·2위를 다투던 현대그룹의 재계 서열이 지금은 크게 낮아졌다.

“서열엔 신경 안 쓴다. 2000년대 들어 현대그룹의 분리가 가속됐고 규모는 축소됐지만 계열사별로 내실을 따지며 주력하는 사업들이 생기고 있다. 애들 아빠도 항상 그랬다. 회사가 어느 정도 커지면 개인 회사가 아니고 나라 거라고.”

-정주영 회장은 섭섭해하지 않을까.

“아버님도 요새 기업했으면 힘드셨을 거다(웃음). 옛날에는 기업이 열심히 하면 정부에서 밀어주고 국민들도 기업을 신뢰했다. 지금도 정부가 기업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만 국내외 여건상 여러 가지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기업하기 어려우니 2세, 3세들이 다른 직업도 많이 갖는다더라. 일본에도 기업 안 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급증해서 그런 기업들 처리해주는 신종 직업이 생겼단다. 우리나라에도 곧 생길 것 같다(웃음).”

-30년 주부였던 여성이 어떻게 그룹의 경영자가 될 수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애 아빠가 사업하느라 바쁘니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책 읽고 신문 보는 걸 좋아하는 내가 남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내용을 발췌해서 읽어주거나 요약을 해줬다. 그런 경험들이 그럭저럭 도움이 된 것 같다.”

-뚝심의 경영인으로 평가받더라.

“딸 넷 중 둘째다. 어머니(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가 대학원 다니며 강의 나가느라 바쁠 때 외할머니가 나를 외가로 데려갔다. 엄마 힘들다고. 사업가 정치인들 드나들던 3년간 외가에서 자라며 내 성격이 형성된 것 같다. 나중에 어머니가, 내가 어르신들 속에서 자라 둥글둥글하면서도 대찬 데가 있다고 하시더라.”

-남성적, 가부장적인 우리 기업 문화에서 여성 경영인으로 어려움도 있었겠다.

“남자들끼리는 전화 한 통 걸어 해결할 일을 난 못 하니까. 그때만 해도 여성이 기업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어디 물어볼 데도 없었다. 정주영 회장님처럼 ‘나를 따르라’를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계열사 대표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며 그룹을 이끌려고 노력했다.”

충북 충주에 위치한 현대엘리베이터 공장 조감도. 전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시장 점유율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그룹 제공

◇ 대북 사업, 포기 못 하는 이유

-정몽헌 회장 20주기이기도 하다. 현대아산이 업종을 건설로 변경했다는 뉴스도 나온다. 대북사업은 이제 접는다는 뜻인가?

“남북경협사업과 결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핵심사업 변경은 더더욱 아니다. 대북사업 중단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향후 재개될 것에 대비해 현대아산이 더 튼튼한 기업으로 성장해야 하므로 건설 부문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위기는 대북 사업에서 비롯된 거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 손해가 막심하지 않나?

“손해라기보단 부두, 숙박 시설 등에 투자했는데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터지기 3년 전부터는 이미 흑자를 내고 있었다. 1998년 소떼 방북 이후 200만 관광객이 금강산에 다녀갔고, 개성공단 준공 후 125개 기업이 입주해 좋은 실적을 거뒀다.”

–남편 정몽헌 회장이 대북 송금 수사를 받다 세상을 떠났는데 이 사업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가.

“그래서 더 매달리는 거다. 이제 와 포기하면 완전히 헛고생 아닌가. 대북 사업은 특히 아버님 의지가 강했다. 북한에 갔을 때 아이들을 안아보니 앙상한 뼈가 만져지더란다. 북한 주민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셨다.”

-1998년 정주영의 소떼방북으로 시작된 대북사업에 정몽헌 회장도 적극적이었나.

“소떼방북은 아버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소 얘기를 하셔서 남편은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했단다. 아버님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따른 건데, 막상 해보더니 희망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국민들 비난을 받게 돼 무척 속이 상했겠지만.”

-15년 째 남북 교류가 중단된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

“포기 생각은 안 했다. 선대 회장님들도 이게 단기간에 결실을 맺지 못할 거라고 예상하셨다. 남북관계가 다시 좋아지면 금강산도, 개성 관광도 바로 시작할 수 있다. 현대아산은 북측에 7개 SOC 독점사업권을 가지고 있다.”

-북의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수익이 핵 개발에 들어갔다는 비난도 받는다.

“2016년 개성공단이 중단됐을 때 정부도 개성공단 자금이 핵 개발에 유입된 증거는 없다고 했다. 금강산 수익도 그렇게 크지 않은 것으로 안다. 다만 골드만삭스 같은 데서 나온 리포트를 보면 북에는 자원과 노동력이 있고, 남쪽엔 기술이 있으니 민간 차원의 경제 교류만 되더라도 큰 결실을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류가 중단된 틈을 타 중국 기업들만 이득을 보고 있다.”

-네번 독대했다는 김정일 위원장은 어떻던가.

“2009년 마지막에 봤을 땐 건강이 안 좋아 보였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직접 설명을 하더라. ‘국수에 얹은 고명은 버섯을 얇게 채 썰어서 말린 다음 볶은 거다’란 식으로. 한국 영화도 많이 보는 듯했다. 임권택 감독의 ‘축제’를 인상 깊게 봤고, ‘쉬리’는 뭐 그따위로 만들었어, 라고 하더라(웃음).”

-백두산도 현 회장 가지라고 했다던데.

“그런 말로 상대를 휘어잡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특별기를 내줘서 백두산 답사를 했다. 그런데 핵 개발 등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모든 게 중단됐다.”

-남북관계, 국제정세에 휘둘리는 위험천만한 사업을 왜 고집하나.

“다른 기업들이 단시간에 얻을 수 없는 현대만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다들 입질도 하고 관심도 가졌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현대라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8년 6월 소떼를 몰고 방북에 앞서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소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적대적 M&A 맞서 현대엘리베이터 지켜낼 것

-현정은의 20년은 경영권 방어의 역사였다. 최근엔 쉰들러와 벌인 소송에서 졌다. 핵심은 ‘파생상품 계약’이다. 쉰들러는 현대그룹이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현대엘리베이터에 파생상품 계약을 맺게 함으로써 거액의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2006년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을 26% 사들였다. KCC가 가진 지분까지 합하면 우리 지분보다 많아지니 그룹에 비상이 걸렸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파생상품 계약을 통한 우호 지분을 확보했다. 합법적인 방식이었다.”

-그런데 왜 재판부는 쉰들러의 손을 들어줬나.

“1심은 파생상품 계약을 정상적 경영 행위로 보고 기각시켰다. 반면 2심은 쉰들러의 경영권 욕심은 알겠으나 일부 파생상품 계약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으니 20%는 책임이 있다며 1700억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했다.”

-대법원 판결 직후 배상금을 납부했는데, 왜 여진이 계속될까.

“손해배상금을 못 내게 하고 내 주식을 강제 압류함으로써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게 쉰들러 측 의도라는 것이 재계와 법조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채권자인 현대엘리베이터가 배상금을 상환받았는데도 강제집행을 요구한 것은 적대적 M&A의 강력한 증거다.”

-쉰들러가 왜 현대엘리베이터를 탐낼 거라고 생각하나.

“한국에서 토종 엘리베이터 기업은 현대뿐이다. LG는 오티스로 넘어갔고, 동양도 티센크루프와 합병했다. 게다가 현대는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이 전 세계 엘리베이터 신규 시장 3위라는 점도 매력이다.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많으니 승강기 수요가 높다.”

-쉰들러는 스위스 엘리베이터 제조업체인데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면 되지 않나.

“1987년 한국 시장 진출을 꾀했다가 실패했고, 2003년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해 재진출했지만 2% 미만의 시장 점유율과 적자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토종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뜻인가.

“외국 주요 엘리베이터 업체들이 우리 기업을 인수하면서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공장과 연구 시설은 폐쇄시키고 판매 기지로만 활용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충주에 전자동화 방식으로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지역 경제를 살리고 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기업이다.”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 주주들이 피해를 입은 건 사실 아닌가?

“최대 주주로서 적대적 M&A로부터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당시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이것이 현대엘리베이터나 현대그룹에도 이익이 된다는 의견이 많았고, 실제 1심 판결도 같은 취지였다. 일부 책임이 인정된 2심 판결도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해운업의 장기불황으로 현대상선 주가가 하락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업의 의사결정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현재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과정이므로 그 결과만 가지고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 이미 손해배상금을 완납했고, 앞으로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며 기업 가치가 극대화하는데 온 힘을 다할 것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회사 임직원 1만여 명의 얼굴로 구성된 고 정몽헌 회장의 대형 모자이크 사진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뒤 잠시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 여자라고 왜 못 해?

-경영권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이메일로 직원들 다독이며 단합을 도모했더라.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한두 달씩 해외 출장을 가시면 내가 그동안 집안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묘사해 편지로 보내드렸다. 적성검사 할 때 매일 똑같은 일 하는 게 싫다고 적었더니 기자가 맞는 직업이라고 나오더라. 한때 기자가 꿈인 적도 있었다(웃음).”

-그런데 어떻게 유교적 관념 강한 현대가의 며느리가 됐나.

“아버님이 먼저 날 좋게 보셨다. 난 빨리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군복무 중이던 애 아빠와 선을 보게 하고 약혼 날짜까지 당신이 잡아버렸다(웃음).”

-시집살이는 안 했나.

“아버님은 새벽 3시에도 남편에게 전화하셨다. 당시엔 핸드폰이 없으니까 내가 자다가 거실로 뛰쳐나가 전화 받고. 요새 얘기 들어보니 일론 머스크가 새벽 3시에 전화한다더라(웃음). 아버님은 또 자식들을 청운동 본가 근처에 살게 하면서 월수금, 화목토 팀으로 나눠 식사를 하게 했다. 그런 다음 안국동 본사로 함께 걸어서 출근하시고. 남편 말이 아버님이 어릴 때 심마니들을 많이 쫓아다녀서 다릿심이 좋다고 하더라. 대통령 출마 안 했으면 더 오래 사셨을텐데, 낙선 후 건강이 나빠지셨다.”

-시어머니 변중석 여사는 어떤 분이었나?

“애 아빠가 생선을 좋아한다고 날 보고 매일 시장에 가라고 하셨다. 어느땐 새벽 4시 반에 우리 집에 오셨다. 남편이 이천으로 출근할 땐 집에서 6시 반에 나가는데 아침을 제대로 안 챙겨 먹일까 봐(웃음).”

-요즘도 현대가 사람들이 기일에 한복 입고 모이는 사진이 신문에 난다.

“자손이 많아져 이젠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더라. 아버님 계실 땐 제사에 빠지면 큰일났는데, 안 계시니 빠지는 분이 많아졌다(웃음). 결혼 막 했을 땐 대청 안쪽에 남자들끼리 앉고 여자들은 따로 앉았다. 나중엔 아버님이 여자들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어머님이 싫어하셨다.”

-친정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던데.

“어릴 때 아버지(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께 뭘 여쭤보면 엄마한테 먼저 허락받고 오라고 하셨다. 당시 외조상이란 게 생겨 아버지에게 1호로 주려고 했는데 엄마가 시댁 눈치에 못 받게 하셨다.”

-회장직 승계를 어머니가 적극 도왔다.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생으로 이효재 교수와 친구다. ‘여성이라고 왜 못 해?’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다.”

-현정은은 성공한 기업인인가.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그저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회장을 다른 사람에 양보했으면 현대그룹이 더 좋아졌을 거란 생각은.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후배 여성 기업인들에게 조언한다면.

“‘무수히 맞는 잔 파도가 큰 파도를 이겨내는 훌륭한 선장을 만든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긍정의 마음으로 이겨냈으면 좋겠다.”

-정몽헌 회장이 떠난 날은 잊지 못하겠다.

“이상하게 그날은 새벽 5시에 깼는데 애 아빠가 옆에 없었다. 전날 언니네랑 외식하고 헤어진 뒤 친구 만나고 들어온다고 했는데….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 악물고 버텨낸 시간들이다.”

-아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열심히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리우신가.

“음… 지금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 부부는 그저 오래오래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웃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3일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2023.5.23 이태경기자

☞현정은

1955년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경기여고,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페어리 디킨슨대에서 인성개발학을 공부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다섯째 아들인 정몽헌과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다.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받던 남편의 죽음으로 2003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해 올해 20년을 맞았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주목할 만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 포춘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태지역 여성기업인’ 등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