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하경

KBS의 수신료 분리 징수를 규정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지난달 12일 시행된 이후 KBS는 “정부의 수신료 분리 징수는 방송 장악 음모”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는 공영방송에 대한 부당한 억압”이라고도 한다. 지난 정권 내내 공영방송 KBS의 정권 나팔수 행태를 지켜본 시청자들 생각은 다르다. 특정 정파의 견해를 대변하는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인 MBC와 YTN도 편파 방송으로 비판받고 있다. 실제 편파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공영방송 감시 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대표 최철호)와 함께 주요 공영방송의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지난 6월부터 7월 말까지 두 달간 살펴봤다. “이러고도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는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편향과 왜곡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편파적 패널, 진행자의 노골적 편들기

지난달 20일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전문가 견해를 듣겠다며 민주당 정권 출신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출연시켰다. 이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을 ‘외눈박이’ ‘지난 1년간 이 나라의 평화가 진전된 게 뭐냐?’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진행자 주씨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멀어지고 있다”며 거들었다. 앞서 12일에도 민주당 정부 출신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같은 방송에 출연해 현 정부를 일방적으로 비판했다. 정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선제 타격 발언에 대해 “한 방, 진짜 귀싸대기 때려줄 건가? 못 때려요” “양치기 소년이라 그러느냐?”고 했다. 두 출연자가 진행자와 함께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민주당을 대변하는 스피커 노릇을 했다.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도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의미를 살펴본다며 지난 정부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교수를 출연시켰다. 최 교수는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생즉사 사즉생 연대’를 말한 것에 대해 “왜 우리 외교와 안보를 국내외적으로 자꾸 불확실성의 구덩이에 넣는지 잘 모르겠다 ”고 비판했다. 당시 국내에서 집중호우 피해가 생긴 것에 대해선 “재난에는 보이지 않는 대통령”이라고도 했다. 진행자는 “지금 교수님을 단독으로 모셨기 때문에 균형 감각을 위해 한번 질문을 드려야 한다”며 “총리가 대행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방송을 들은 한 언론학자는 “그런 질문은 비난할 기회를 한 번 더 준 것에 불과하다”며 “정말 균형을 맞추려면 패널 균형부터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파적 패널 구성은 양평 고속도로 사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 10일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은 정의당과 참여연대 등 야권 인사 3명을 출연시켜 정부를 일방적으로 비판했다. 반론을 펼 여권 인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픽=김하경

왜곡, 누락, 여론 몰이...자막 조작 시비도

7월 10일 MBC 뉴스데스크는 태평양 도서국(태도국)과 일본·IAEA의 화상 회의 개최 사실을 전하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한 사람의 발언만 11차례 내보냈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인물도 화면에 여럿 보였지만 다른 이들 코멘트는 없었기 때문에 태도국 전체가 방류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줬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해당 발언자는 반핵 환경 운동가이고 미국인이어서 태도국 전체를 대변할 위치에 있지 않았는데도 MBC가 반론을 함께 다루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갔다”고 지적했다.

뉴스데스크는 자막 조작 시비에도 휘말렸다.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홍콩 어민의 인터뷰 자막은 “오염수가 여기저기 퍼질 텐데, 그리고 하루이틀 만에 퍼지는 게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거라서”라고 돼 있다. 비(非)언론노조 계열인 MBC노동조합은 “여러 전문가에게 확인했더니 앞부분은 ‘소금에 절였다’였고 뒷부분은 사투리가 심해 알아듣기 어려웠는데도 오염수 방류를 걱정하고 반대하는 내용으로 단정하는 자막을 내보냈다”고 지적했다.

KBS MBC YTN...편파의 트라이앵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게) 관련 뉴스도 균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KBS 뉴스9는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최종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세 문장짜리 단신으로 다뤘다. “내 몸이 전자파에 튀겨진다” “성주 참외는 전자파 참외” 같은 괴담과 선동으로 우리 사회가 겪은 혼란과 갈등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작게 다뤄선 안 될 뉴스였다. 반면 이튿날 일부 성주 주민의 사드 반대 시위는 ‘안전 결과에도 믿을 수 없어 반발’이란 제목으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산골 마을에 100명밖에 살지 않는데 1년 사이 암 환자가 10명 발생했다”는 주민 주장도 그대로 내보냈다. 암과 사드의 연관성에 대한 전문가 견해나 반박은 없었다.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사드 환경영향평가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사실이 최근 정부 문서를 통해 확인됐지만 이 뉴스는 누락했다.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는 지난달 26일 뇌물 6000만원 수수 및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노웅래 민주당 의원을 출연시켰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 기각부터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까지 야당의 일방적 주장을 내보냈다. 19분짜리 방송의 마지막 5분을 노 의원의 검찰 공격에 할애했고, 노 의원은 ‘정치 검찰’ ‘야당 때려잡기’ ‘증거 조작’ ‘공작 수사’라며 검찰을 비난했다. 앞서 KBS 더라이브도 돈 봉투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송영길 전 대표를 출연시켜 30분이나 피의자 신분인 그에게 마이크를 쥐여 줬다.

공언련이 지난 두 달 KBS MBC YTN 등 공영방송의 불공정 보도 사례를 집계해보니 총 482건이었다. KBS는 뉴스9 46건, 주진우 라이브 64건, 최경영의 최강시사 44건, 더라이브 25건이었다. MBC는 뉴스데스크 87건,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107건, 김종배의 시선집중 70건 등이었다. YTN은 TV와 라디오를 포함해 28건이었다. 이홍렬 공언련 공정언론감시단장은 “공영방송의 중요한 기능이 객관적 토론을 할 수 있는 공론장 기능인데 편파 방송은 공영방송의 존재 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가 장악한 방송...정치갈등 격화되며 공영은커녕 용병 언론 됐다

언론학자들은 편파 방송의 근본 원인으로 공영방송이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에 장악된 점을 꼽는다. 언론노조 정치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언론노조의 목적은 ‘조합의 강령과 규약, 정치 방향에 따라 조합의 정치 활동 역량을 강화하고 민주노총과 제 민주 단체 및 진보 정치 세력과 연대하여 노동자 민중의 정치 세력화’다. 방송이 정치 투쟁 도구라는 뜻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방송을 통해 특정 정치·노동 이념을 추구한다고 밝힌 이 규약은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방송법 6조 1항과 위배된다”며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현재의 노영 방송 구조부터 혁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장악한 KBS와 MBC는 언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을 버리고 언론의 반대 진영을 공격하거나 자기 이념을 전파하는 도구로 쓴다는 점에서 일종의 ‘용병 언론’이 됐다”고 진단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도 최근 펴낸 ‘MBC의 흑역사’에서 “MBC와 언론노조는 자기들의 편향성을 ‘선과 정의’라고 떼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공영미디어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공영방송의 이해’에 필진으로 참여한 심석태 세명대 교수는 책에 ‘다양한 분야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의도적으로 왜곡된 주장이나 허위 사실을 유포해 여론을 조작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 저널리즘은 각 분야의 갈등을 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하는 쪽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썼다. 영국 BBC 등 유럽 방송들은 공영방송이 편향성에 빠지지 않도록 방송 종사자가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하는 ‘내적 다원성’(internal pluralism) 원칙을 강조한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