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자유대 한국학 박사과정에 있는 궨돌린 덤닝은 원래 이 학교 의대생이었다. 열여섯 살 때부터 동방신기 팬이었던 그는 의대를 다니다 한국학으로 전과(轉科)했다.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한국 남자랑 사귀냐?”였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 지식인의 대다수는 K팝을 ‘쓰레기’라 여겼다. 하지만 괘념치 않았다. K팝에서 한국 정치, 역사로 폭을 넓힌 그는 현재 ‘대통령제에서의 권력형 부패’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궨돌린 뒤엔 그가 ‘닥터 무티’로 부르는 이은정 교수가 있다. 이 대학 역사문화학부 학장이자 한국학연구소장인 그는 2008년 25명에 불과했던 한국학 전공생을 현재 300명으로 늘린 주역이다. 입학 경쟁률이 6대1. 칸트, 헤겔, 아인슈타인이 속한 프러시아 왕립학술원(현 베를린-브란덴부르크 학술원) 최초의 비유럽 학자이기도 한 그는, “유럽 외교 무대에 한국의 역사, 정치,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차세대 전문가들을 육성해 진출시키는 게 내 목표”라고 했다.
◇한국 야당 이슈까지 꿴다
-독일은 한국학 불모지라고 들었다.
“전세계가 K팝 열풍이라지만, 독일 지식인들은 K팝을 하위 문화로 여겼다. 한국 드라마를 분석한다고 하면 왜 그런 쓰레기를 연구하냐는 비난을 받았다.”
-요즘은 다른가.
“2010년부터 한류에 열광한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2020년대 들어서 상륙했다. 동네 수퍼에서 한국 라면과 고추장을 팔고, 시내 옷 가게에서 BTS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국 아이가 독일 학교로 전학 오면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는 친구들이 줄을 길게 선단다. 지식인 사회도 변하고 있다. 박찬욱·봉준호 영화에 대해 토론하자는 동료들이 있고, ‘사랑의 불시착’을 몰아서 보느라 밤을 새웠다는 교수도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드라마는 한국이 가진 최고의 문화 외교 수단이라는 한 교수는 한국 갈 때 자기도 꼭 데려가 달란다(웃음).”
-한류가 한국학 연구에 자양분이 됐을까.
“독일 언론은 북핵 문제를 제외하면 한국에 관한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보도가 급증하고 있다. 가장 권위 있는 신문 중 하나인 디 차이트(Die Zeit)가 ‘한류로 인해 대중문화 역사상 처음으로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깨졌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를 활용해 독일 지식인 사회에 한국을 심고 말 걸기 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입학 경쟁률이 중국학과, 일본학과보다 훨씬 높다더라.
“90년대까지 한국학은 일본학과 수업 중 하나였다. 2008년 내가 부임했을 때도 정교수인 나와 한국어 강사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교수진이 12명으로 늘었다. 다른 학과생도 지원할 수 있는 교환학생 신청자는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서 정원을 3배 늘렸다. 올해만 60명이 한국에 온다.”
-한국학과엔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오나?
“초창기 지원자가 많지 않을 땐 아비투어(독일 수능) 성적이 낮은 학생도 들어왔는데, 지금은 커트라인이 높아져 의대나 법대 갈 실력의 아이들이 입학한다. 신입생 90%가 한글을 읽고 한국말로 자기 소개를 할 줄 안다. 배꼽 인사를 하며 ‘수고하셨습니다’ 할 땐 영락없는 한국 청년들이다(웃음).”
-대부분 K팝 팬들일까.
“어떤 방식으로든 K팝을 접한 아이들이지만, 졸업 논문을 K팝으로 쓰는 학생은 한두 명뿐이다. 대개는 K팝에서 한국의 정치·역사·문학 등으로 관심이 확장된다. 나보다도 한국 뉴스를 더 많이 보는 학생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근황은 물론 한국 야당이 어떤 이슈로 싸우는지도 훤히 꿴다.”
-남학생은 얼마나 되나.
“K팝 팬의 대수가 여성이기도 하지만, 입학 경쟁이 치열하니 한국처럼 공부 잘하는 여학생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웃음). 의과대는 남학생이 전체의 3분의 1이라도 되는데 우리는 5%도 안 된다.”
◇K팝보다 북핵
-무엇을 가르치나.
“고대 메소포타미아 연구를 하는 사람이 쐐기문자를 모르면 안 되듯 입학 첫 학기부터 졸업 때까지 한국어 수업이 이뤄진다. 문학작품과 논문을 읽고 한국어로 토론할 수준이 돼야 졸업할 수 있다. 전공 커리큘럼으로 한국사, 한국 문화, 한국 정치를 1학년 때부터 배우고, 2학년 때부터는 조선 시대와 남북한까지 아우른다.”
-한문도 배우나?
“물론이다. 고전과 현대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한자는 필수다. 궨돌린이 베를린에도 서울처럼 ‘학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푸념한다(웃음).”
-학생들 졸업 논문 주제가 궁금하다.
“남북 관계, 북핵이 가장 많다. 한국에서 학폭이 큰 이슈로 떠올랐을 땐 청소년 자살을 주제로 한 논문이 많았다. 페미니즘 연구도 활발하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한 학기에 특히 많았다.”
-진로는 어떻게 되나.
“한국 관련 업무를 하는 기업, 한국 기업의 유럽 지사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엔 독일연방정부와 베를린 시정부 같은 공공기관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같은 정치 재단에도 진출하고 있다. 독일과 유럽 공공기관엔 한국 전문가가 거의 없다. 일본·중국 전문가들이 커버한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에 한국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한국유럽센터를 만들었다. EU와 독일 정부의 외교관들, 수상청 공직자들과 워크숍하며 전문성과 인맥을 쌓는다.”
◇유럽 오리엔탈리즘에 맞서
-괴팅겐 대학에서 정치사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 비유럽인으로 처음 프러시아 왕립학술원 정회원으로 선출돼 화제였다.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1700년에 만든 학술원이다. 유전자 가위로 노벨상을 받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나란히 선출돼 기뻤다. 칸트, 헤겔이 회원이었다는 건 나중에 학술원 홈페이지를 보고 알았다(웃음).”
-어떤 연구를 인정받았나.
“1650년부터 2000년까지 유럽 사상가들이 동아시아를 인식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했다. 17세기엔 동아시아 국가를 이상적 국가의 모델로 봤지만, 18세기를 지나면서는 전제 군주의 억압에 순종하는 몽매한 사람들의 나라로 폄하한다. 그러다 20세기 후반엔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적 성공 비결이 유교 문화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양극을 오가면서도 ‘동아시아인은 근면하다, 순종적이다, 권위에 충성한다’는 고정관념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유럽 정치 상황과 개별 사상가의 필요에 따라 이상화하거나 폄하하면서 타자화했다는 것이 내 연구의 초점이다. 학술원은 문학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있다면 정치 사상 분야엔 내 책 ‘안티 유럽’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대중문화를 보는 유럽의 시각도 마찬가지라고 했더라.
“독일 언론과 인터뷰하면 기자들이 으레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의 성공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하기 때문 아니냐고 묻는다. 그래서 ‘양극화는 전 세계적 문제이고 이를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한 게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K팝과 관련해서도 아이돌 멤버들의 혹독한 훈련과 자살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래서 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연습생 제도와 독일 축구 클럽이 어린 축구 영재들을 키워내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다른가?’라고 묻는다.”
-일반 시민은 어떤가.
“우리 학생들이 베를린 시민을 설문조사했더니 나이가 많을수록 일본과 중국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됐다는 응답이 많았고, 나이가 어릴수록 동아시아 3국 중 한국을 제일 먼저 접했다는 응답이 많았다. 19세기 후반 우키오에 판화를 시작으로 일본에 열광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한국은 힙하고 잘사는 나라’로 인식한다. 독일 일간지에 17세 K팝 팬이 보낸 독자 편지를 읽었다. ‘서구·유럽·독일의 기준으로 한국 문화를 폄하하지 말라’고 썼더라. 이런 아이들이 성장하면 독일 주류 사회의 시각도 달라질 것이다.”
◇통일? 왜 벌써부터 걱정인가
-10년에 걸쳐 독일통일총서를 집대성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양국 관료들 통역을 했다. 통일 조약을 쓰고 협상을 주도한 주역들이 다 살아 있던 때라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총서는 이명박 정부 의뢰로 2010년 시작했다. 우리 연구소 6명이 팀을 꾸려 5000개 문서를 요약·해제·분석해 30권의 총서로 발간했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더라.
“독일에서 교수는 공무원이라 외부에서 돈을 받을 수 없어 무보수로 일했더니 미안해서 주신 것 같다(웃음).”
-통일의 비결이 담겨 있나?
“두 체제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정리했다. 행정, 군사, 보건, 교육 등 통일 후 공무원들이 어떤 작업을 했는지 보여준다. 다만 통일이 되기까지는 정치 역량으로 풀어야 한다. 독일의 한 원로 학자는 ‘독일이 세계사에서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도 하나님이 독일을 버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세계사에서 결코 오기 힘든 짧은 기회를 헬무트 콜이 빨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그 말에 내가 울었다.”
-대한민국 통일부는 축소되고 있는데.
“그러게 좀 잘 하시지(웃음).”
-젊은 세대는 통일에 관심이 없어 걱정이란 사람도 있다.
“내가 80년대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할 때 통일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하나도 없었다. 프랑스는 밥 먹듯 여행해도 고작 50km 떨어진 동독은 아주 먼 나라였다. 그러나 동독에 변화가 오니 아무도 통일을 반대하지 않았다. 젊은 세대에게 통일에 관심 가지라고 강요할 필요 없다. 지금처럼 대한민국을 전 세계인이 오고 싶어하는 나라로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밖에서 보는 대한민국은 어떤가.
“궨돌린이 권력형 부패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지만, 한국과 독일 정치의 청렴성, 부패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요지다. 실제로 독일에선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정치인 부패 사건이 급증했다. 궨돌린 논문은 아시아 정치인은 무조건 부패하다는 기존 부패분석이론을 비판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밖에서 볼 때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해낸 나라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오고 싶어할 만큼 충분히 멋진 나라다.”
☞이은정
1963년 대전 출생.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정치사상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2008년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장으로 부임해 현재 역사문화학부 학장, 동아시아대학원장을 겸하고 있다. 2016년 비유럽 학자 최초로 ‘베를린-브란덴부르크 학술원’ 정회원으로 선출됐고, 2010년부터 ‘독일통일총서’를 집대성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저서로 ‘베를린, 베를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