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둔 9월 2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바이오 라이더' 작업실에서 만난 이래진씨는 "각종 공구들에 둘러싸여 새로운 기계를 발명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바이오 라이더’라는 매연 저감 장치를 생산해내던 70평 작업실은 2020년 9월 21일 낮 1시 35분에 멈춰섰다.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와 배를 타고, 수산고 졸업 후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를 누빈 이래진은 각종 공구로 뒤덮인 작업실에서 새로운 기계를 발명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동생 이대준의 실종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놨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싸움, 국가 권력을 향한 싸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3년. 감사원은 이달 5일, “문재인 정부가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을 근거도 없이 자진 월북자로 몰아갔다”는 내용의 감사 보고서를 채택했다.

◇슬리퍼가 월북의 증거?

-지난달 이대준 피격 사건 전말을 기록한 ‘서해일기’를 출간했다.

“해경이 사고 현장을 수색하는 모습을 보면서 단순 실종 사고가 아닐 거란 예감이 들었다. 일지로 기록해두지 않으면 중요한 단서들을 놓칠 수 있고, 나중에 재판으로 갈 경우 정황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매일의 상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걸 책으로 엮었다.”

-왜 단순 실종 사고로 여기지 않았나.

“수색 과정에 헬기를 요청했더니 마지 못해 날아와 대연평도를 한 바퀴 돌고 남쪽으로 내려가더라. 지그재그나 S자 형태로 돌아야 바다를 자세히 훑어볼 수 있는데 그냥 한 바퀴 휙! 수색에 분초를 다퉈야 할 시간에 구명조끼 전수조사를 하는 것도 이상했다. 실종 3일째 되는 날 ‘동생이 북한을 동경했느냐’ ‘불온 서적 읽는 걸 본 적 없느냐’는 전화를 받고 누구도 믿어선 안 된다고 다짐했다.”

-사고 초기엔 우리 해군이 동생을 구조해낼 거라 믿었다고 썼던데.

“조류 예측 시스템이 계속 발전해 왔기 때문에 골든 타임이면 구조도 가능할 거라 믿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특히 슬리퍼. 그들은 선미에 나란히 세워져 있던 슬리퍼를 자살 혹은 월북의 단서라고 주장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무슨 뜻인가.

“나는 완도 수산고를 졸업한 뒤 원양선사에서 10년간 근무하며 실종 등 선박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을 보고 수습했던 사람이다. 선박에서 자살자는 절대 슬리퍼를 그렇게 놓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라 난간에 한 짝이 엎어져 있거나 난간 위에 있다. 그리고 당직이었던 동생은 복장 규정상 근무복과 안전화를 신고 있었을 거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방에 있어야 할 슬리퍼를 가지고 나와 세워 놓은 것이다.”

-2억6000만원의 빚 때문에 월북을 시도했을 거란 보도도 나왔다.

“얼마나 파렴치한가. 국민의 생명보다 동생을 일단 나쁜 놈으로 몰고 가는 게 그들에겐 더 시급했다. 기사가 나오자 동생의 회생법원 담당 변호사가 연락했더라. 대준이는 짧은 기간 변제가 가능했던 특A 우량자였다고, 필요하면 증언하겠다고. 나중에 밝혀진 동생의 공식 채무는 9500만원으로, 2년 반이면 다 갚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또 동생이 월북을 결심했다면 고속단정을 내려서 타고 가지 미쳤다고 조류를 거슬러 맨몸으로 헤엄쳐 가겠는가. 조오련도 아닌데.”

서해 피격 공무원 유족 이래진(왼쪽) 씨가 2023년 7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외 1명에 대한 추가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월북 인정하면 보상한다는 회유

-민주당 황희 의원을 비롯해 해군참모총장 등 6명이 안산 작업실로 찾아와 협박을 했다던데.

“황희는 이 사건의 민주당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사건 발생 일주일만에 ‘월북이 사실로 확인돼가고 있다’고 발표하더니, 다음 날 안산으로 와 ‘동생이 월북 운운했다는 SI(특수정보) 첩보를 듣고 왔다. 어린 조카들 생각해서 월북으로 인정해라. 그러면 보상해 주겠다’고 하더라. ‘같은 호남이니 같은 편 아니냐’고도 했다.”

-흔들렸을 것 같다.

“동생의 육성이 아니면 믿지 못 하겠다. SI 첩보를 나도 좀 들려달라고 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 첩보에는 동생이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남으로 보내달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흔들렸으면 우리 가족은 월북 낙인이 찍혀 이 땅에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인영 당시 통일부 장관은 유족이 김정은에게 쓴 편지 전달을 거부했더라. 사고 현장을 방문해 동생 위해 소주 한 잔 붓게 해 달라고 쓴 편지였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는 그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가 나를 더욱 투쟁적으로 만들었다. 국보법 철폐와 인권을 외쳤던 자들이 동생을 국보법으로 처벌하려 월북몰이 한 것에 가장 분노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고소했다.

“국군통수권자는 국방을 책임져야 한다. 더구나 NLL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김정은과 9·19남북군사합의문까지 작성했고, 늘 ‘사람이 먼저’라고 얘기했던 대통령 아닌가. 그런데 동생 사건에서는 국민 목숨보다 북한이 먼저였다.”

-당시 문 대통령이 어떻게 했어야 하나.

“유엔 연설, 종전 선언을 미뤘어야 한다. 우리 국민이 적대 국가에 체포됐으니 구조가 우선이라고 했어야 한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덮기 위해 자국민을 죽게 하고 월북자로 몰아갔다. 두 번 다시 이런 통치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왜 동생을 구조하지 않고 월북으로 몰고 갔을까.

“종전 선언을 부각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정치 쇼를 위해.”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 행사에 문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자국민을 지키지 못한 건 반성하지 않고 무엇을 기념한다는 건가. 동생의 피살로 9·19군사합의 의미는 사라졌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조카한테 엄정 수사를 약속해놓고, 책임자인 해경 수사정보국장을 남해청장으로 승진 발령시켰다. 유족을 얼마나 하찮게 봤으면. 북의 잘못을 덮기 위해 국민을 월북으로 몰아간 대통령은 반드시 합당한 죄를 받아야 한다.”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격된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부인 권영미(오른쪽)와 맏형 이래진(왼쪽)씨가 2022년 6월 17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향후 법적 대응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모자, 선글라스 쓴다고 공격도

-지난 3년간 악성 댓글 등 수많은 공격을 당했다.

“구토가 나올 만큼 욕설과 악플이 달렸다. 그런데 악플 덕에 서해 사건이 계속 최상위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동생 사건이 잊히지 않고 포털에서 매일 이슈가 되려면 견뎌야 했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시비 걸더라.

“모자는 머리에 상처가 있어서 쓴다. 선글라스는 바다 태양빛에 망막이 상해 바람만 살짝 불어도 눈물이 나서 쓴다. 이게 왜 공격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

-조카가 대통령에게 쓴 편지가 대필이란 의심도 받았다.

“내가 편지를 대신 써줄 시간이 어디 있나. 국방부와 해경, 정치인, 기자들 상대하느라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어서 살이 52kg까지 빠졌다. 나중엔 심근경색이 왔다.”

-동생의 죽음을 팔아 돈벌이한다는 악플도 있었다.

“동생 사건으로 나는 알거지가 될 판인데 돈벌이라니. 내가 특허 낸 바이오 라이더는 자동차, 선박에 장착하는 매연 저감 장치인데 잘 팔릴 땐 하루에 3천(만원), 5천씩 통장에 꽂혔다. 그런데 동생 실종 후 올스톱 됐다.”

-고향이 호남이라 문 정권에 맞서는 게 부담스러웠겠다.

“새파란 후배들이 술 먹고 전화해서 욕하더라.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래도 동생 잃은 슬픔을 위로해주는 분들이 더 많았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엔 민주당 지지자였나.

“선거에서 늘 민주당을 찍었다. 그러나 동생 사건을 겪으며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당이 어디인지 알게 됐다.”

-호남 인맥이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까.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 호남이니 영향을 받는다. 특히 내가 사는 안산은 호남향우회가 세다. 지역민 40%가 호남 출신이라 향우회가 안산시장을 당선시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내가 문재인 정부와 싸워 서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자 많은 이들이 돌아왔다. 미안했다면서. 지난 대선에서도 호남 표심에 서해 사건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는 이래진씨. 10월 5일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근거도 없이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를 월북으로 몰아갔다"는 내용의 감사 보고서를 채택했다. /장련성 기자

◇계란으로 바위를 깨부수다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을 만났다.

“검찰총장 직무 정지 기간에 동생 사건 전체를 다 검토하고 왔더라. 대통령이 되면 가장 우선적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제대로 조사해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일주일 만에 그 약속을 지켰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첩보 삭제, 피격 은폐로 재판 중이다. 이제 마무리 단계로 가는 건가?

“아직 멀었다.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다. 증인 신문을 7월에 끝낸다고 하더니 12월로 미뤘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루려는 거다. 그래서 재판 속개를 요청했다. 고인과 유족을 2차 가해한 정치인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공무원이 뻘짓하다 사고 당해 죽은 것’이라고 말한 주철현 같은 의원들인가.

“우상호, 주철현 등 민주당 의원들이 막말로 여론을 호도해 내 사업은 거의 망가졌다. 둘째 동생도 항해사인데 직장을 잃었다. 우리 가족의 정신적 고통을 포함해 손해배상 청구를 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식들한테도 두고두고 부끄러울 것이다.”

-3년에 걸친 싸움이었다.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는지.

“포기하려면 시작도 안 하는 성격이다. 끝장 볼 때까지 파는 스타일이라 다들 미친놈이라고 했다. 수륙양용 자전거도, 바이오 라이더도 수억씩 날려먹고 개발해낸 거다.”

-추석 직전이던 9월 22일이 이대준씨 3주기였다.

“제수씨와 조카들이 집에서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1주기엔 하태경 의원, 김기윤 변호사와 여기서 배, 사과, 육포 한 개씩 올려놓고 제사를 지냈다. 혼자였던 나를 위해 함께 싸워준 분들이다.”

-조카들은 잘 지내나.

“대준이 아들은 군에 입대해 부사관으로 생활한다. 4학년이 된 딸도 이제 아빠의 죽음을 알고 있다.”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더라.

“‘서해일기’는 단순히 내 동생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호소가 아니다. 힘없는 국민이 우리와 같은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싸워야 하고 어떤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길잡이가 돼주려고 쓴 것이다. 국가와 싸워선 안 된다며 다들 만류했지만 가족의 명예를 위해 나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쳤는데, 바위가 진짜 깨졌다는 걸 보여준 게 뿌듯하다.”

지나달 출간된 이래진씨의 책 '서해일기'. 동생 이대준의 실종 당일부터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3년의 험난한 여정을 담았다. / 글통 출판사

☞이래진

1966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완도수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으로 숨진 이대준의 맏형이다. 수산고 졸업 후 동원산업 항해사로 5년, 동원수산의 선원 담당으로 5년 근무한 뒤 경기도 안산에 정착, 수륙양용자전거와 자동차 매연 저감 장치 등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바이오 라이더’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