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사기 범죄가 넘쳐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년부터 본격화된 대규모 전세 사기의 경우 전세보증보험을 제공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재정 건전성을 위협할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들어오는 스팸 문구들을 읽어보면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사기는 끊이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사기의 대상 역시 주식, 토지, 암호화폐, 재생에너지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계속 확대되고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사기는 ‘나쁜 꾀로 남을 속임’이라고 나온다. 형법 제347조에서 사기죄에 대해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남을 속이는 것 가운데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사기인 것이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2012년 23만9720건에서 2020년 35만4154건으로 증가하였다. 인구 10만 명당 비율로 따져보면 같은 기간 470건에서 683건으로 증가하였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400건대를 유지하던 10만 명당 사기 범죄 발생 비율은 2017년 이후 2020년까지 급증하였다. 이 시기 사기 범죄가 급증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소셜미디어의 본격적인 확산에 따른 영향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과거에 비해 더 쉽게 사기 대상자를 물색하고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키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넘쳐나는 사기 관련 기사를 접하다 보면 인터넷에서 종종 ‘대한민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사기 범죄율 1위’라는 글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출처로 언급되는 세계보건기구(WHO) 글로벌 헬스 옵저버토리(Global Health Observatory)에서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세계보건기구에서 사기와 관련한 사항을 조사하고 관리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우리는 WHO라는 기구의 공신력을 맹신하면서 잘못된 정보를 쉽게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름이 주는 권위에 쉽게 믿음을 줌으로써 사기에 취약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사기에 대한 국가별 통계는 유엔 마약 및 범죄사무소(UNODC)의 유엔범죄동향조사(United Nations Crime Trends Survey)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제공하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의외로 유럽 국가들의 사기 범죄 건수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하면 독일 80만8074건, 스웨덴 27만8954건, 핀란드의 경우 4만7132건 등으로 나타난다. 인구 10만 명당 비율로 환산해보면 독일은 969건으로 우리나라 683건보다 훨씬 높으며,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2690건으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상식과 판이하게 다른 이런 결과는 사기 범죄에 대한 규정이 국가별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신용카드와 관련한 소액 범죄들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런 사건들이 사기 범죄로 간주되면서 전체 사기 범죄 건수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경우 어떤 국가에서는 민사소송의 대상이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형법상 사기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후자의 경우 통계상 사기죄의 빈도는 매우 높게 나타난다. 사기를 둘러싼 사법제도와 처리 방식은 국가별로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국가 간 비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이 일본에 비해 사기 사건 10배’라는 사실도 다르게 볼 수 있다. 유엔 범죄동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2020년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3만468건으로 우리의 8.6%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10만 명당 사기 범죄 발생 건수로 따져보면 일본은 24건으로 우리의 683건과 비교해 보면 3.5%에 불과하다. 2019년을 기준으로 전체 범죄에서 사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일본은 4.3%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30.1%로 훨씬 높게 나타나는 것까지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사기 공화국인가?’라는 자괴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사법기관은 개인의 고소 고발을 쉽게 접수하지 않는다는 사법 체계의 차이와 더불어 소송보다는 협상과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훨씬 선호하는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보면 한국과 일본의 사기 범죄 실제 차이는 숫자보다 훨씬 줄어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사기에 취약하다는 점은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2022년 국제 시장조사 업체인 입소스가 수행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나라는 23%가 그렇다고 답해서 세계 평균 30%에 비해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문제는 우리는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 저신뢰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인식은 고신뢰 사회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저신뢰 사회에서는 상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다양한 보완 수단들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문서와 공증을 통해 의무와 권리 관계를 확실히 하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상대를 검증하고 보증의 수단을 마련한다. 당연히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경우 ‘신뢰’를 내세우면서 계약서 작성을 비롯한 각종 절차 등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고,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전문가의 개입과 비용의 지출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하면 사법 체계에 사건의 규명과 처벌을 떠넘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법 체계에 가해지는 부담이 가중되면서 사건 처리는 지연되고 그 결과에 대한 불만 역시 높아지고 있다. 시스템이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고 탓하기 이전에 저신뢰 사회에 걸맞은 행동 양식과 인식을 갖추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