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집값 대폭락’을 예측해 부동산 족집게란 별명을 얻은 김경민 서울대 교수는 내년도 전망을 묻자 미간을 찌푸렸다. “중국 부동산 위기, 5%에 근접한 미국 국고채 금리, 가계 부채, 총선 등 너무도 많은 변수가 맞물린 불확실성의 해”인 탓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터져 더더욱 안갯속. 다만 김 교수는 “서울의 경우 바닥은 확인됐다. 문제는 2025년 공급 물량 부족으로 전셋값이 오르고 그 기세가 매매가까지 상승시키는 것”이라며 “지금은 양평고속도로 정쟁(政爭)을 할 때가 아니라 총선 이후 주택 공급 대책을 고심해야 할 때”라고 했다. 실패할 경우 “2027년은 부동산 대선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2024 부동산 시장은 시계 제로?
-내년도 부동산 예측은 왜 어려운가.
“다양한 위험 요인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누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날 줄 알았겠나.”
-내년엔 미국과 한국 모두 금리 인하가 점쳐졌는데 물 건너간 건가?
“전쟁 이전 전망일 뿐이다. 미국은 국채를 마구 발행할 거고,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는 오른다. JP모건 회장 말대로 7%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면 우리 경제를 강타할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20% 이상 폭락했던 서울 집값은 반등을 시작했다.
“나는 집값이 2018년 4분기 가격까지 떨어지면 내년부터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그 시점이 훨씬 앞당겨져 당황했다. 그러나 계속 오르진 않는다. 상고하저로, 내년까지 조정 기간을 거칠 것이다.”
-바닥을 친 속도는 왜 빨라졌을까.
“정보의 유통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마침 기준금리는 올라가는데 국고채 금리와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떨어지는 예외적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자 기준금리도 곧 인하될 거라 기대한 사람들이 시장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정책도 반등을 앞당겼을까.
“물론이다. 소득에 상관없이 9억원 이하 주택에 저금리 혜택을 주는 바람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욕망이 분출했다. 흥미로운 건, 9억원 이하뿐 아니라 15억원 이상 고가 주택 거래량도 급증했다는 점이다. 서민뿐 아니라 중산층, 고소득자 모두 2018년 4분기 수준의 집값을 바닥으로 본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집값이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던데.
“미분양이 많은 지방은 몰라도, 서울은 바닥을 쳤다고 보는 게 맞는다. 물론 계속 상승하진 않을 거다. 국고채 금리와 주담대 이자가 빠르게 오르고 있어서 상승세는 꺾이지만, 대폭락이 오진 않는다.”
-고금리에 집값은 하락하지 않나.
“2015~2017년에 36만 가구가 아파트를 매입했다. 당시 집을 워낙 싸게 산 그들은 집값이 대폭락한 작년에 팔았어도 돈을 번 경우라 더 큰 평수로 갈아타고 싶은 욕구가 크다. 대기 수요도 계속해서 존재한다. 전세 사기 공포로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로 옮기려 하고, 경기도 주민들은 서울 진입을 노린다. 20~30대 1인 가구의 최대 관심사 역시 부동산이다. 고금리에도 청년층이 주택 매입의 가장 큰손으로 떠오른 이유다.”
-그럼 실수요자는 언제 집을 사야 할까.
“시점보단 상황이다. 위에 언급한 위험 요인들이 안정화된 이후를 권한다. 굳이 시점을 예측하라면 정체기에 속하는 내년 중후반이다. 2025년부터는 아파트 공급 물량 부족으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실한 9·26 부동산 대책
-정부의 특례보금자리론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인센티브 정책은 소득이 적은 약자를 위한 것인데, 소득에 상관없이 혜택을 준 게 문제였다. 1가구 2주택의 양도소득세 면제도 3년으로 완화된 상황이라 고소득층도 뛰어들었다. 정부가 시장에 너무 직접적으로 개입한 경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가계 빚이 안 잡히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고했던데.
“금리를 올릴 수 있으니 집 사려고 대출을 무리하게 받지 말라는 경고다. 그런데 국토부는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정책으로 빚 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시그널을 줬다. 두 기관의 사인이 맞지 않았다고 본다.”
-국토부의 9·26부동산 대책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부가 토지를 공급하겠다며 제시한 국공유지가 문재인 정부 때 나왔던 부지와 거의 동일하다. 그때도 서울과 멀어서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받은 부지다. 서울에도 코레일의 용산 국제업무지구, 서울시의 상암동 부지 등 국공유지가 많은데 왜 활용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린(green) 기능을 상실한 그린벨트 지역도 활용해야 한다.”
-업계에 PF 대출 연장 특혜를 준 것이 총선 후 부동산 시장을 강타할 폭탄이 될 것이라고 했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는 대규모 부동산 개발에 활용되는 대출로 금리에 매우 민감하다. PF 금리가 상승하면 부동산 개발 수입이 급감해 사업이 좌초되는 경우가 많다. 경기 침체로 이런 부실 사업장들이 수두룩한데, 정부가 이들의 대출 기간을 연장해주고 이자도 후취하는 조건으로 시혜를 베풀었다. 총선 후 이들이 한꺼번에 터지면 은행권 부실과 신용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PF 대출 연장이 아파트 공급 부족을 야기한다고도 했다.
“부실 사업장들이 도산해 저렴한 토지들이 시장에 나와야 새로운 개발이 시작된다. 그런데 PF 대출 연장으로 부실 사업장들이 좀비처럼 명맥을 잇고 있다. 이미 시공비와 금융비가 엄청나게 상승한 상황에 토지가격조차 떨어지지 않으니 자금력 있는 디벨로퍼들도 개발에 뛰어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2025년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감하고, 전세 폭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서민들 고통만 가중된다. 국토부는 ‘양평 정쟁’에 휘말릴 게 아니라 주택 공급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전세가는 힘들지만 매매가는 잡을 수 있다. 정부가 국공유지를 제공하고 민간 건축 회사가 들어오는 공공민간 협동 개발 방식으로 아파트를 짓고, 일부는 분양, 일부는 공공주택으로 임대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 주도의 거대한 리츠(REITs·부동산 간접투자)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더라.
“우리나라는 정부가 임대료를 제어할 수 있는 물량이 너무 부족하다. 토지가 비싸고 주변의 반대가 심해 LH나 SH의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쉽지 않다. 따라서 정부가 민간 아파트를 매입해 개발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재원이 필요하다. 이를 리츠 형태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국민연금처럼 국내 자산운용사에 기금을 운영하게 하는 방식으로 정부 주도의 모(母)리츠가 존재하고, 여러 자(子)리츠 운영 회사들이 민간 아파트를 매입하고 운영하게 하는 방식이다.”
◇文 정부 부동산 참사 되풀이 않으려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였던 김수현 전 정책실장이 최근 ‘부동산과 정치’를 출간했다. 당시 집값 급등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과잉 유동성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문 정부 후기엔 유동성이 작동한 게 맞는다. 그러나 문 정부 전기엔 공급 부족이 원인이었다. 신축 아파트의 공급이 거의 없었는데도 장기 플랜 없이 미시적으로만 대응한 게 문제였다.”
-LTV, DTI 등 더 강한 대출 규제를 했어야 한다고도 썼더라.
“시장의 작동 원리를 모르는 무지한 소리다.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부자들만 집을 살 수 있다. 미국은 서민과 중산층이 집 살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기 위해 LTV, DTI를 가급적 완화시킨다. 부동산 세제, 부동산 금융 문제는 여야가 합의해 지속성 있게 가야 한다. LTV, DTI를 자기들 멋대로 바꾸는 나라가 어디 있나. 종부세도 정권 따라 널뛴다.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 모두 부동산에 대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 철학이 없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에 분양과 임대를 함께 조성하는 ‘소셜 믹스’ 전통이 강한 나라다. 박정희 정권이 강남을 개발할 때도 다 소셜 믹스였다. 고가라는 압구정 현대·한양 아파트에도 70평대부터 30평대까지 고루 있었고, 테헤란로 이남 개나리 아파트도 20평부터 64평까지 있었다. 서민부터 고소득자까지 다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놨다. 지금 서초를 봐라. 초고가 주택 단지로 바뀌고 있다. 한강 변에 50층 아파트를 짓는 게 결코 자랑이 아니다. 도시 경관 다 망가진다. 성냥갑 같다고 조롱한 과거 한강 변 아파트가 차라리 나았다. 강북에서 관악산 능선이 다 보였다. 도시를 만드는 철학이 빈곤해지고 있다.”
◇부활하는 신촌 상권
-한국부동산원 통계 조작 사건으로 나라가 들썩였다.
“호가 지수가 문제다. 부동산 중개인들이 부르는 가격을 반영하는 거라 임의로 조정할 가능성이 생긴다. 해법은 대학연구소 등 제3의 기관들에서도 인덱스가 나와 서로 경쟁하는 것이다. 통계 기관은 정치적, 재정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시민들은 통계를 어떻게 활용해 할까?
“주(週) 단위 지수는 무시해야 한다. 부동산 흐름이 어떻게 일주일 만에 왔다 갔다 하나. 분기별 트렌드만 알아도 충분하다. 주변 30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에서 25평·33평의 분기별 거래 가격, 전세 가격을 눈여겨보는 것도 흐름을 따라잡는 노하우다.”
-’부동산 트렌드 2024′를 출간했다. 지난해 핫플레이스 중 하나로 꼽은 신당동은 요즘 힙당동으로 불리더라. 내년 주목할 핫플을 꼽는다면?
“신당, 청구, 약수 등 6호선 라인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기적으로는 신촌 상권이 부활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20대 1인 여성 가구가 가장 많이 살면서, 외국인 생활 인구도 급증하는 곳이다. 두 그룹의 라이프 스타일을 충족시키는 공간이 나온다면 엄청난 잠재력이 발생할 것이다.”
☞김경민
1972년 서울 출생. 서울대 지리학과를 나와 UC버클리대에서 정보시스템 석사, 하버드대에서 도시계획·부동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보스턴의 상업용 부동산 리서치회사 PPR에서 글로벌 부동산을 연구했고, 현재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를 비롯해 빅데이터에 기반해 부동산 시장을 분석한 ‘부동산 트렌드’를 매년 출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