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은 이르면 다음 달 2026년부터 적용되는 방위비 분담 특별 협정(SMA)협상을 시작한다. 양국은 12차 SMA 협상을 맡을 수석대표로 우리 측에선 주미 대사관 참사관 출신의 이태우 전 북핵외교기획단장을, 미국 측은 국무부 정치군사국의 린다 스펙트 선임고문 겸 수석 협상가를 임명했다.

방위비 협정이 종료되기까지 1년 9개월이 남은 상황에서 새 협상에 들어가는 것은 이례적이다. 11월 미 대선에서 한미동맹을 중시하지 않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것에 대비한 것인데, 미 대선 기간에 진행될 SMA 협상에 대해 정부 안팎에서 우려가 나온다. 바이든과 트럼프 사이에 끼어서 우리가 처신하기 쉽지 않고, 실익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바이든과 트럼프가 맞붙는 미 대선 중의 SMA 협상은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며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합의를 번복할 가능성도 커서 우리 측의 협상 카드만 노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트럼프는 대한민국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맞서 태평양 지역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주한미군을 돈으로만 환산, 문제를 일으켜왔다. 2016년 미국 대선에 출마하면서부터 한미동맹 경시 발언을 하다가 당시 매년 방위비 분담금의 5배에 이르는 50억달러를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 국방부는 지난해 말부터 ‘막무가내’ 트럼프의 귀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고심해왔다. 특히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2021년에 맺은 SMA가 1년 내에 만료돼 다시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바이든 임기 내 새 협정을 맺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트럼프가 승리해 이를 무효로 하고 번복한다고 해도 그 책임은 미국에 있으므로 재협상에 나서는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승리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대안을 만들어 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11월 미 대선 전에 협상을 타결하려고 하면 바이든 측에서 우리를 배려할 가능성보다는 ‘트럼프 리스크’를 이용해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리는 트럼프의 귀환에 대비해 조기 협상에 응했는데 바이든 협상팀이 우리를 이해하기보다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활용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외교부의 전직 관리는 “미국은 동맹국이지만 방위비 협상장에 들어서면 냉정하게 요구한다. ‘트럼프 측의 요구보다는 나을 테니,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상당액을 증액해서 빨리 타결하자’는 요청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조기 방위비 협상을 자신에게 ‘항명’하는 것으로 보고, 당선된다면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우리로서는 바이든 행정부와 협상이 잘 진행돼 합의하면 트럼프에게 ‘괘씸죄’에 걸리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빨리 시작하는 한미 방위비 협상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을 수 없는데, 트럼프가 과연 이를 어떻게 볼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가 재집권하자마자 이를 문제 삼을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대면도 하기 전에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 외교부의 전직 관리도 “트럼프는 방위비 대폭 증액에 집착했었는데,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것에 대비해 조기 타결하는 것을 절대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1기 행정부와의 협상 경험을 참고로 방위비 분담 협상을 미국의 대선과 연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직전의 11차 방위비 분담 협상은 트럼프 1기 당시인 2019년 9월 시작했는데 트럼프가 매년 50억달러 규모로 인상을 요구하면서 파행됐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가 계속되는 가운데 2020년 트럼프와 바이든이 맞붙은 미 대선 국면에 진입했다. 우리 협상팀은 대선이 진행되는 가운데 트럼프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보다 대선 이후에 타결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한다. 결국 11차 협상은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46일 만에 타결됐다. 총액은 전년보다 13.9% 인상된 1조1833억원으로 하고 2025년까지 매년 우리 국방비 증가율을 적용해 인상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가 재집권할 가능성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며 “올해 중 조속한 타결보다는 미 대선에서의 여러 가능성을 내다보고 최종 합의를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주한미군 철수와 방위비 대폭 증액 다시 연계할 듯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021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협상이 타결될 때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라는 카드로 과도한 분담금을 요구하는 것은 혈맹인 한국을 갈취하는 것”이라고 비난했었다. 바이든이 이같이 말할 정도로 트럼프는 2017년부터 4년간 재임할 때 한국의 거액의 방위비 분담에 집착했다. 한국이 경제 선진국인데 방위비를 충분하게 지불하지 않고 있다며 기존 대비 5배가량 인상하겠다고 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행태는 트럼프 정부의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이 쓴 회고록에 자세하게 나온다. 트럼프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다루기 끔찍하다”며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해 여러 차례 압박했다고 했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를 자꾸 주장하자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1기 때는 다른 일로 바쁘니) 주한미군 철수는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하라”고 제안했고, 트럼프가 “그렇지, 두 번째 임기”라고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트럼프는 “한국은 우리에게 삼성 TV를 파는데, 우리는 그들을 보호해준다. 이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하면,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기간에 한미 FTA를 끔찍한 협상이라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2017년 취임 후 한미 FTA로 미국이 한 해에 400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며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예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의 억지로 재협상에 들어가 미국차의 한국 수입 물량을 두 배로 늘리기로 하는 등 미국에 양보를 해야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직무대행은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 (신)행정부에서 한미 관계를 재설정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한국이 여전히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변화가 필요한지 솔직하게 얘기할 때가 됐다”고 했다. 트럼프가 귀환하면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방위비 대폭 증액을 상수로 보고 준비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얘기다.

일본의 항목 중심 협상 참고해 더 투명해져야

한미 방위비 협상은 매번 진행될 때마다 홍역을 치른다. 2021년 우리 정부는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트럼프 행정부를 피해 바이든 정부와 13.9% 인상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이때 확정된 방위비분담금은 당시 우리 국방예산의 2.2% 수준이었다. 세종연구소는 이에 대해 “2020년 세계 10위 한국 GDP의 0.06%로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위해 우리 경제력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정부는 우리가 지급하는 방위비의 대부분이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한국 업체의 공사비 지급 등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일부 시민 단체와 좌파 단체는 굴욕적인 협상이라고 비판했다. 역대 3번째 높은 인상률로 특히 국방 예산 증가와 분담금 인상률을 연동함으로써 물가상승률을 적용한 것보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의 가장 큰 문제는 총액 위주의 협상으로 세부 항목을 잘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 측 주장에 따르면 한국의 분담금은 주한미군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 비용 중 44%를 차지하나 우리가 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투명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부 항목을 미국은 잘 공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의 총액 방식과는 다른 일본의 항목 방식 협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방위비 분담을 우리보다 일찍 시작한 일본은 미군에게 주는 방위비를 ‘배려 예산’이라고 부르며 미군에서 필요한 항목에 대해 지원을 요구할 때마다 응해 온 전통이 있다. 일본 측은 그 내용을 일반에게 세세하게 공개하지 않더라도 미군의 용처를 잘 알고 있는데 우리가 이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세종연구소도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의 사용처와 액수는 분명하지만, 군사건설비와 군수지원비 사용처와 액수는 다소 분명치 않다”며 “미국 정부가 우리가 분담한 방위비를 지정된 항목에 맞게 사용하는지를 검증하는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