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라는 마약을 금한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마약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외화 벌이를 위해 1970년대에는 비교적 감시가 허술한 대사관과 외교관을 통해 중계무역 형태로 마약 밀수와 판매를 해오다 발각되어 국제 사회에서 망신을 당했다. 북한 고위 관료였다 탈북한 황장엽씨의 증언에 따르면, 1980~90년대 북한은 직접 양귀비를 재배하여 헤로인을 만드는 ‘백도라지 사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여의도의 약 25배에 해당하는 7206ha에서 양귀비를 재배해 40t의 아편을 생산하여 연간 4t의 헤로인을 만들었을 것으로 한국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1990년대 북한이 유일하게 성공한 두 분야가 핵무기와 마약이었다. 핵무기 개발로 인해 경제 제재를 당하여 상품의 수입과 수출이 제한된 북한은 마약 판매에 더욱 열을 올렸다. 마약 특성상 거래가 불법이기에 무역 제재의 영향을 덜 받았고 마약은 무기에 비해 부피가 작아 밀수도 쉬웠다.
북한제 최고 상품은 핵무기나 미사일이 아니라, 마약, 그중에서도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이다. 필로폰 결정이 얼음처럼 투명해 ‘얼음’ ‘아이스’ ‘크리스털’이라고 불리는데, 중국과 북한에서는 ‘빙두(冰毒, 얼음독)’라고 한다.
마약 수사팀을 지휘했던 전직 경찰 간부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산 필로폰 순도는 98~100%로 전 세계에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합성 마약인 필로폰은 대개 소수의 개인이나 범죄 집단, 즉 아마추어가 감기약의 원료인 슈도에페드린 등을 원료로 해서 소규모로 만든다. 하지만 북한 제약 회사에서 실제로 근무했던 탈북자 이모씨 등 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흥남제약공장’ 지하 2층에 있는 5직장에서 박사급 인력들이 국가의 명령 아래 전문적으로 필로폰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품질이 나쁠 수가 없다. 특히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의 경제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의약품의 생산은 거의 가동을 멈추었지만, 헤로인과 필로폰은 라남제약공장(청진)과 흥남제약공장(함흥)에서 여전히 쉬지 않고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곳 모두 항구에 위치해 배로 밀수출하기에도 용이하다. 마약 판매 규모가 커서, 중국의 삼합회, 일본의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 등과 같은 국제 범죄 조직들과 거래하며 발각되어 몇 차례 국제 뉴스가 되기도 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무기 거래로 연간 2억~5억달러, 마약 생산과 밀매를 통해 1억~2억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아편을 추출하기 위해 양귀비를 조금씩 재배하고 있었다. ‘동의보감’ 탕액편(湯液篇)에서 앵속(양귀비)을 약초로 분류하고 복용하는 법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아편은 약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법으로 금지하는 마약이 되었는데, 현대 의학의 혜택을 잘 누릴 수 없는 북한에서는 아편을 가정상비약으로 쓰기 위해 계속 양귀비를 키우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으로 수많은 이들이 아사하고 전염병으로 고통받자 북한 주민들은 집에서 본격적으로 양귀비를 기르기 시작했다.
실제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인터뷰한 탈북자들이 이런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한국에는 아편보다 훨씬 효과 좋은 약이 많겠지만, 북한에서는 아편이 최고의 약이다. 치료용으로 제일이다. 통증도 금방 없어진다. 북한 사람들은 아편만 있으면 뭐든지 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탈북자 A씨) “아편 같은 것은 보통 집에서 밭농사를 하는 사람들이면 다 기른다. 북한에 약이 없다 보니 아편을 만병통치약으로 본다.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 치고 아편을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탈북자 B씨)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건 아편만이 아니다. 북한 정부가 제약 회사에서 필로폰을 생산하면서, 직원들이 필로폰을 빼돌리거나, 전문 인력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필로폰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필로폰 생산이 본격화된 2000년대부터 필로폰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한 탈북자는 마약을 “쌀보다 더 구하기 쉬운” 상품이라고 할 정도였다. 주로 산간 지역이라 양귀비를 기르기 쉬운 양강도 쪽은 아편을, 필로폰을 생산하는 제약 회사가 있는 함경도 쪽에는 필로폰을 많이 만든다.
1회용 주사기조차 구하기 어려운 북한에서는 주로 필로폰을 은박지 위에 올려놓고 열을 가해 연기를 마시는 방식으로 투여한다. 필로폰의 원료가 되는 물질인 슈도에페드린은 콧물 감기약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필로폰을 하면 실제로 코가 뻥 뚫린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북한 사회에는 아편과 필로폰이 널리 퍼져 있다. 한 탈북자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인터뷰에서 “마약은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다”며 “전당, 전군, 전민이 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자는 ‘KBS 추척 60분’ 인터뷰에서 “배가 아파도, 머리가 아파도, 무릎이 아파도, 감기에 걸려도 마약을 한다. 아예 현금처럼 쓰이기도 한다. 결혼식 축의금으로 돈이나 선물 대신 빙두(필로폰) 10g을 주면 신랑과 신부가 좋아한다”고 했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필로폰 1g이 북한에서 대략 1만7000원이지만, 한국에서는 38만원이었다. 북한 주민들이나 탈북자 입장에서 필로폰의 유통과 판매는 매력적인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생산된 필로폰이 중국 국경을 넘기만 해도 가격이 5배가량 오른다고 한다.
이제 마약은 북한에서 가정상비약인 동시에 만병통치약, 심지어 화폐를 넘어 매력적인 사업 분야가 되었다. 마약을 생산하는 정부, 경제 및 의료 시스템의 붕괴, 여기에 주민들의 무지와 가난이 더해져 북한의 마약 문제는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보다 마약을 하기 쉬운 이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것은 모든 면에서 쉽지 않다. 여기에 한반도만의 특수한 상황이 낳은 이민자가 있다. ‘탈북자’, 다른 말로 ‘북한이탈주민’이다. 과거에는 ‘망명형 탈북’이 대부분이었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로 식량난으로 인한 ‘생계형 탈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막상 머나먼 길을 돌아 한국에 왔지만, 모든 것이 다른 낯선 상황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탈북자는 쉽게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탈북자들이 어떤 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를까? 놀랍게도 마약 관련 범죄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탈북자 수감자 수는 166명으로, 그중 마약류 관련 범죄가 53명(31.9%)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한국인 수감자 중 마약류 사범 비율인 6.3%(2023년 교정연보)에 비해 5배 이상 높았다.
탈북자의 마약 범죄율이 높은 이유는 북한에서 마약에 익숙해져 있고, 낯선 체제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 등이 연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탈북 경로가 통상 ‘북한-중국-동남아-한국’인데, 이 경로와 마약 유통·거래 경로가 비슷한 것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