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 사는 마츠다 아키히로는 한국에서 유명 인사다. 마츠다 부장, 마부장으로 불리며 샐러리맨들의 추앙을 받는다. 회사 직원들과 “재미 삼아” 만든 유튜브가 대박이 났다. 오사카 구석구석 숨은 맛집을 유창한 한국말로 소개한다. 퇴근길 우라난바의 허름한 노포에서 안창살을 구워 먹고, 술이 무한 리필인 이자카야에서 생맥주를 들이켠 뒤 “죽인다~”를 외친다.
“세상에서 맥주를 가장 맛있게 마시는 남자”로 소문나면서 112만명이 ‘구독’을 눌렀다. 신현준 정준호 성시경 유현준이 “마 부장과 한잔하러” 오사카로 날아갔다. 장부승 간사이외국어대 교수는 ‘마부장·다나카(김경욱) 신드롬’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 한일 양국의 미래를 열어갈 해법이 거기 있다고. 마부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제가 좋아서 먹고 마셨을 뿐인데.”
일본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덕에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마츠다씨를 서울 마포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마츠다 리스트’를 내고 한국 팬들과 북 콘서트를 했다.
◇ 양복에 서류 가방 들고 다니는 까닭
-인기를 실감하시나?
“한국에 들어올 때만 잠시(웃음). 오사카로 여행 온 한국 분들이 사인해 달라거나 사진을 찍자고는 하지만, 일본에서 나는 전혀 유명하지 않다.”
-지난 12일엔 잠실 야구장에서 시구를 했더라.
“두산 베어스 초청으로. 잘 던졌어야 하는데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말았다(웃음).”
-공 던지러 가는데 서류 가방도 들고 갔더라.
“마부장의 상징이니까! 손에 들려 있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고 불안하다.”
-흰색 와이셔츠에 양복을 차려입는 건 설정인가?
“주말에 집에서 쉴 때나 캠핑 갈 때 빼고는 늘 이렇게 입는다.”
-한여름에도 긴소매를 입는다고?
“물론이다. 반소매 와이셔츠를 입는 직장인은 일본에 거의 없다.”
-가방엔 ‘재떨이 지갑’을 늘 갖고 다니더라.
“애연가에겐 필수품이다. 담뱃재를 길바닥에 털 수는 없지 않나. 웬만한 편의점에서 다 판다. 한국 돈으로 이삼천 원?”
-유튜브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로 스타가 됐다. 맛집은 어떻게 선정하시나?
“지나가다 느낌이 좋다 싶은 곳에 들어간다. 인터넷 검색이나 평점 혹은 리뷰는 보지 않는다.”
-막상 들어갔는데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주인장 앞에서 맛없다고는 못 하니 ‘간이 좀 안 맞다’ ‘호불호가 갈리겠다’는 식으로 표현한다(웃음). 촬영했어도 유튜브에 올리진 않는다.”
-맛집으로 소개했는데 맛이 없었다는 컴플레인도 오나?
“엄청 많이, 하하하! 각자 취향이 있기 때문에 그건 감수할 수밖에 없다.”
-미식가인가?
“자기만의 특별한 기호를 갖고 맛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미식가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난 그런 부류는 아니다.”
-그럼 맛집을 고르는 기준이 뭔가?
“음식과 분위기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맛있는 식당은 많다. 그런데 불친절하고 청결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진미라도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화날 때 마시는 술은 毒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은 112만명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이지만 시작은 미미했더라.
“8~9년 전인가, 우리 회사 젊은 과장이 우리도 유튜브 한번 해보자며 카메라를 들고 왔더라. 이 나이에 무슨 유튜브냐며 손사래를 쳤는데, 기어이 찍어서 올리더라.”
-처음부터 맛집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나?
“아니다. 내가 한국말을 잘하니 일본어 잘하는 법 등 여러 종류의 동영상을 찍어 올렸다.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구독자가 단박에 10만명까지 올라갔다.”
-퇴근 후 한잔할 수 있는 ‘회사원 시리즈’로 대박이 났다.
“마침 코로나가 시작돼 회사도 어려워져서 유튜브고 뭐고 다 접고 6개월 동안 버티고 있었는데, 오사카에서 영상·음악 관련 일을 하고 있던 나승철 PD를 만나게 됐다. 뼛속까지 아티스트이고 나처럼 술을 좋아해서 죽이 잘 맞았는데, 유튜브를 제대로 찍어보자고 하더라.”
-사람들이 왜 ‘오사사’에 열광한다고 생각하나?
“만만해서(웃음)? 이른바 관광지 맛집들과는 다르게 일본 회사원들이 가는 뒷골목 맛집, 일본의 속살을 볼 수 있는 작은 식당들을 소개해 좋아하시는 것 같다.”
-온갖 식당들에서 섭외 요청이 올 것 같은데.
“우리의 답장 내용은 정해져 있다. ‘저희는 돈을 받고 음식점을 촬영하지 않습니다.’ 맛집으로 소개하는 식당도 모두 우리 돈을 내고 먹는다.”
-’세상에서 맥주를 가장 맛있게 마시는 남자’라고 하더라.
“첫 잔을 항상 맥주로 시작한다. 갈증을 극대화하려고 오후 4시부터는 물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 하하!”
-술은 생맥주(나마비루), 하이볼, 고구마소주 순으로 마시던데.
“첫 잔이 맥주인 건 분명한데, 그다음부터는 그날 음식에 따라 당기는 술을 마신다. 어떤 날은 뜨거운 사케를, 어떤 날은 차가운 사케를 마신다.”
-그 지역 사케(니혼슈)를 선택하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더라.
“사케 종류만 일본에 수만 가지다. 아직도 못 마셔본 사케가 많다. 뭘 골라야 할지 모를 땐 식당 주인이 권하는 사케를 마시면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
-’술은 기분 좋을 때 마신다’는 철칙이 있더라.
“화가 났을 때 마시는 술은 독이 되니까.”
-보통은 기분이 안 좋고 화가 날 때 술을 마시지 않나?
“난 아니다. 기분이 나쁘면 집에 가서 영화를 보든지 잠을 잔다. 근데 살면서 화가 날 때가 그렇게 많은가? 물론 업무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마실 수는 있다. 그런데 화날 때 술을 마시면 고통이 두 배가 된다.”
◇허영만이냐, 성시경이냐
-한국의 유명 인사들이 마부장을 찾아 오사카로 날아가더라.
“촬영 제안이 많이 온다. 음식 이야기보다는 토크쇼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누가 제일 기억에 남나?
“정준호씨? 배우라서 그런지 목소리가 정말 쩌렁쩌렁하더라. 신현준씨와 둘이 와서 촬영장을 뒤집어 놓고 갔다.”
-’허영만의 백반기행’과 ‘성시경의 먹을텐데’ 중 어느 쪽이 라이벌인가?
“그러잖아도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게스트로) 출연할 예정이다. 처음 뵙는 거라 엄청 기대된다. (성)시경이는 서울과 오사카에서 함께 촬영했다. 집에 초대해 음식도 만들어 주더라. 두 분 다 고수 중의 고수다.”
-마부장은 한국 샐러리맨들이 ‘술 한잔 마시고 싶은 상사’ 일 순위로 꼽힌다. 술 한잔 하고 싶은 한국인이 있다면?
“글쎄, 술은 함께 마시면서 그 사람의 매력을 알아가는 거지, 특별히 누구랑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한국과 일본의 술 문화에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안주와 술을 처음부터 함께 주문하지만, 일본은 맥주부터 마시며 천천히 안주를 고른다. 또, 일본엔 혼술 문화가 일반적인데 나는 한국서 자라 그런지 혼자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책에 ‘서민적인 것이 가장 세련된 것’이라고 썼더라.
“가이세키 요리도 좋지만, 술은 역시 허름한 야장에서 밤하늘 올려다보며 마시는 술이 최고다(웃음).”
-서울에 오면 즐겨 가는 식당은?
“시경이와 함께 갔던 문래동 ‘은진포차’, 정동길에 있는 ‘동아리’도 좋아한다. 간장게장이 유명한 마포의 ‘진미식당’도 가는데 문을 너무 일찍 닫더라. 아, 오늘은 골뱅이탕이 먹고 싶다(웃음).”
◇오사카는 ‘하늘 아래 부엌’
-세 살 때 한국에 왔다던데.
“아버지가 주한 일본 대사관에서 오래 근무하셔서 초·중·고를 한국에서 나왔다.”
-안 가도 되는 군에 입대해 28개월 복무했더라. 그것도 최전방인 강원도 양구 21사단에서.
“군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해병대나 특공대에 가고 싶었는데 떨어져서 육군으로 갔다. 힘들었지만 배운 게 많다. 맨땅에 헤딩하는 강인함! 겨울엔 눈이 어마무시하게 왔다(웃음).”
-전역한 뒤 일본으로 간 건가?
“시야와 경험을 넓히라고 아버지가 권하셨다.”
-졸업 후 여러 업종을 전전했더라.
“전공이 국문학(일본문학)이라 취직이 힘들었다. 공무원 시험을 볼까 했는데 아버지가 반대하시더라. 매우 지루한 직업이라며(웃음). 그래서 인터넷으로 가방 장사도 해보고 옥외 간판 업체도 운영했다. 내가 디자인에 재능이 좀 있다. 지금도 오사카에 내가 디자인한 간판들이 많이 서 있다.”
-복집도 운영했다던데.
“복을 엄청 좋아해서 오사카에 있는 복집은 거의 다 다녔다. 복어 조리 면허도 따서 야심차게 식당도 열었는데 개업 1년도 안 돼 리먼 브러더스 발 세계 금융 위기가 터져 쫄딱 망했다.”
-코로나 시기도 힘들었다고.
“일본에 오는 한국인들에게 집 구해드리는 일을 했는데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혔으니 그냥 망했지. 부업으로 직원들과 김밥을 말아 팔아야 했을 정도다.”
-어떻게 재기했나.
“이상하게도 밑바닥까지는 안 떨어지더라. 바닥에 부딪칠 찰나에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고, 살아날 구멍이 보였다.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이 히트할 줄 누가 알았겠나.”
-’오사사’를 틀어놓고 밥 먹는 회사원도 있단다.
“감사드린다. 모두가 힘든 시기지만, ‘오늘이 암울하니까 내일도 암울하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빛이 어디에서 내리쬘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일 관계는 더 좋아질까?
“서로에 대한 매력을 찾아낼수록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올여름 오사카 여행자들에게 맛집 세 곳을 권한다면.
“우메다역 근처 스시집 ‘스사비유’, 오코노미야키 전문점 ‘후사야(본점)’, 나라의 수제 소바집 ‘이코마’. 내 책 ‘마츠다 리스트’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하늘 아래 부엌’ 오사카로 오시면 꼭 연락하시라(웃음).”
☞마츠다 아키히로
1972년 일본 구마모토 출생. 주한 일본 대사관으로 발령 난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따라 세 살 때 서울에 와 초·중·고를 다녔다. 강원도 양구 21사단에서 군 복무를 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부동산 회사에 다니다 가방 디자인, 옥외 간판 업체, 복집을 경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