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1974년 11월 16일, 카리브해와 맞닿은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에서 최첨단 전파 망원경 준공식이 열렸다. 직경 300m가 넘는 거대 아레시보 망원경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저명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와 칼 세이건은 야심 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당시 지구상의 모든 발전소를 합친 전력의 20배에 달하는 강력한 신호를 우주로 보낼 수 있는 망원경의 성능을 보여주는 데 이보다 좋은 아이디어는 없을 것이라며 손뼉을 쳤다. 몇 달에 걸쳐 가장 기본적인 컴퓨터 코드를 이용해 1679비트의 데이터가 만들어졌다. 준공식에서 2380메가헤르츠(㎒)의 주파수로 3분간 쏘아 올린 ‘아레시보 메시지’의 내용을 만약 외계인이 해석해 낸다면 지구와 인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1에서 10까지의 수를 사용합니다. 우리 몸은 이중 나선 형태의 디옥시리보핵산(DNA)으로 구성돼 있으며 주성분은 수소·탄소·질소·산소·인입니다. 현재 40억명 정도가 있으며 평균 키는 175cm입니다.”

아레시보 메시지를 해독하면 나타나는 표.

반세기가 지난 현재 지구에서 500조km 이상 떨어진 곳을 날고 있는 아레시보 메시지의 최종 목적지는 우리 은하의 성단(星團)인 M13이다. 드레이크가 최초의 외계 교신 대상으로 헤라클레스자리 대성단이라 불리는 M13을 선택한 배경에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준공 행사 당시 망원경이 향한 방향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M13까지의 거리는 2만5000광년(光年). 만약 M13의 수많은 별과 행성 가운데 외계인이 살고 있고, 메시지 해독까지 성공한다면 서기 5만2000년쯤에 지구에서 답장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메시지 송신 당시는 물론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도 교신의 성패를 확인할 수 없는 무의미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과학계에서는 아레시보 메시지를 ‘20세기 우주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른다. 수백만 년간 지구상에서 살아온 인류가 다른 생명체를 본격적으로 찾아 나서는 위대한 도전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드레이크와 세이건은 외계인의 존재를 확신했다. 드레이크는 1961년 우주에서 외계 문명의 수를 구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발표했다. 해마다 새롭게 탄생하는 별의 수, 별들이 행성을 거느릴 비율, 행성에서 생명체가 살 가능성 등 7가지 항목을 곱하는 식이다. 아직 각 항목의 정확한 수치를 모르기 때문에 드레이크 방정식의 답은 없다. 다만 과학계에서는 우주에 너무나 많은 별과 행성이 있는 만큼 외계인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과학자들은 느리지만 꾸준히 외계인의 발견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1992년 폴란드 천문학자 알렉산데르 볼슈찬이 태양계 밖에서 행성을 처음 발견했고, 이제 그 수는 5000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29개의 행성은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는 액체 상태의 물이 있는 이른바 ‘골딜록스 존(Goldilocks Zone)’에 놓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드레이크와 세이건의 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기술로 만들어진 미항공우주국(NASA)의 케플러 망원경과 TESS 망원경은 외계 행성을 수천 개씩 찾아내며 ‘행성 사냥꾼’으로 불린다.

푸에르토리코의 아레시보 망원경. 2020년 붕괴됐다. /위키피디아

900t 무게의 거대 접시와 케이블이 연결된 아레시보 망원경은 보는 사람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데다 두 차례의 지진까지 겪으며 2020년 케이블이 끊어지고 구조물이 무너져 내렸다. 미국과학재단(NSF)은 거액을 들여 망원경을 수리하는 대신, 교육 시설로 활용하기로 했다. 드레이크의 딸인 과학 기자 나디아 드레이크는 “물리적으로 아레시보는 사라졌지만, 그 유산인 메시지는 여전히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외계 문명을 마주하게 됐을 때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적대적인 포식자일지도 모르는 외계인에게 인류의 위치와 DNA 정보를 알려준 것은 위험천만하고 섣부른 일이었다며 아레시보 메시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 광활한 우주에 진짜 우리만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보다 인간의 본성인 호기심에 더 어울리는 일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