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고 하자 ‘실성했다’ ‘맛이 갔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유신 개발 독재를 줄기차게 비판해온 그의 동료들, 좌파 경제학자들이었다.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는 “맛이 간 게 아니라 새로운 맛에 빠진 것”이라며 호방하게 웃었다. 마르크스를 신봉했던 경제학자는 어쩌다 박정희에 꽂혔을까?
◇ 우상화? 박정희 정상화
–논란 끝에 5일 경북도청 앞에 박정희 동상이 선다.
“추진 위원 7000명, 일반 국민 1만3000명 등 총 2만명이 넉 달 만에 20억원을 모아주셨다. 8.2m 높이 동상을 12개 배경석(石)이 병풍처럼 둘러싼 형상이다.”
–동상을 두고 대구시, 영남대와 경쟁하는 모양새던데.
“그렇지 않다. 대구시와 민관 협력을 추진했지만 홍준표 시장이 단독으로 건립하겠다고 해서 성사되지 못했고, 대신 이철우 지사가 도와주셔서 경북도청 천년숲에 건립하게 됐다.”
–왜 꼭 동상이어야 할까?
“일단 시각적으로 눈에 띄어야 젊은 세대도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 대구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30대의 70%가 동상 건립에 찬성했다.”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 우상화라는 비판이 있다.
“우상화가 아니라 정상화다. 독재자로 악마화하지만 말고 우리 역사를 정당하게 평가해보자는 것이다. 한쪽으로만 굽어진 나무를 바로 세워 보자는 것이다.”
–반대 시위가 거셌다.
“참배를 하든, 침을 뱉든 자유다. 동상 건립을 계기로 치열한 토론의 장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배경석에 새긴다는 12대 업적 중 ‘5·16혁명’은 논란이 되지 않을까.
“5·16은 군사 정변에서 끝나지 않았다. 근대화, 산업화로 이어져 대한민국을 근간부터 바꾼 혁명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 전 쓰신 일기에도 ‘5·16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문장이 나온다.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립 경제를 꿈꿨다.”
–박정희 동상이 호남에 세워져야 더 뜻깊은 것 아닐까.
“5·18 동지회 김현장 회장도 박정희 동상 건립 추진 위원으로 참여해주셨다. 호남에 박정희 동상이, 영남에 김대중 동상이 세워질 날이 곧 올 것이다.”
◇ 민주주의라는 외눈박이
–72학번 유신 세대로 반유신·반독재 운동을 했다.
“세상을 민주주의라는 시각만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외눈박이었다.”
–김수행 교수보다 먼저 서울대에서 ‘자본론’을 강의했던데.
“소련 해체 직전 페레스트로이카 경제학자들의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노동력을 상품화하면 노동 소외와 종속을 가져온다는 것이 마르크스 이론인데, 페레스트로이카 학자들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소련에서 노동 해방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한 그들은 노동 시장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안 있어 공산주의가 무너졌다.”
–박정희를 파고든 계기는 무엇이었나?
“2006년 미국 버클리대에 1년 연구교수로 가 있을 때 좌파 학자들이 박정희를 높이 평가하는 걸 보고 놀랐다. 그들은 국가가 적절한 개입을 하면서도 시장을 죽이지 않는 방식으로 성공한 박정희 모델을 케인스 경제학의 성공 사례로 보았다.”
–스승 변형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박정희와 대척점에 서 있던 분 아닌가.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을 만든 분이다. 박정희의 수출 주도 중화학공업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며 내수 중심의 경공업, 농업과 중소기업 육성 등으로 경제를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중경제론은 안병직 선생 비판대로 북한의 극단적인 자력갱생 모델 같은 것이었다. 대중 경제로 갔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다.”
–노무현 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경제학자 이정우는 ‘박정희 때문에 경제 발전을 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경제 발전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던데.
“언어 도단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말했듯이 박정희가 수출 주도 성장 정책으로 경제를 빅 푸시 하면서 한국은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현재 남한과 북한의 격차는 김대중의 대중경제, 북한의 명령적 계획경제를 이긴 박정희 경제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갑제 선생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의 수상자는 사실상 박정희’라고 하셨는데, 나도 동의한다.”
–노무현 정권의 무능을 비판하며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진보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느냐는 물음에 응답해야 한다. 박정희의 고민은 먹고사는 문제와 국가 생존의 문제가 민주주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독재를 했으나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일궈냈고 가난에 허덕이는 국민들을 밥 먹게 했다.”
◇ 박정희 모델 넘은 제3의 길
–밥을 먹게 해줬다고 박정희의 독재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프랑스의 좌파 경제학자 알랭 리피에츠는 박정희의 개발 독재는 필요악이라고 했다. 한국의 산업화는 세계사적으로 봤을 때 최소한의 피를 흘리고 달성했다는 것이다. 노벨상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도 독재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경제 성공을 덮을 수는 없다고 했다.”
–최소한의 피를 흘렸다는 것은 유신 피해자들과 가족에겐 큰 상처가 될 말이다.
“물론이다. 그래서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 등 유신 시대의 인권 탄압으로 죽어간 이들과 유족에게 사과해주기를 바랬다. 역사적 화해가 이뤄져야 한다.”
–환경 파괴, 빈부 격차 등 박정희 개발 독재의 부작용, 후유증도 적지 않다.
“산업화 과정에서 불가피한 환경 파괴는 있었지만 박정희는 그린벨트를 만들고 대대적인 산림 녹화를 추진한 지도자였다. 세계적 환경 운동가인 미국 지구정책연구소장 레스터 브라운도 박정희의 산림녹화 사업을 세계적 성공 사례로 꼽았고 박정희처럼 우리도 지구를 다시 푸르게 만들 수 있다고 했을 정도다.”
–빈부 격차, 양극화의 시작을 개발 독재로 보는 학자도 많다.
“1993년 세계은행이 ‘공평성을 수반한 고성장(high growth with equity)’이 동아시아 기적의 핵심이었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한국이 그 대표적인 국가였다. 폭발적 성장의 과실을 일자리 창출을 통해 ‘분배’함으로써 서민들도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논쟁적이지만, 양극화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심화됐다고 보는 게 맞다.”
–IMF 외환 위기로 시효를 다한 박정희 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더라.
“박정희의 유산인 산업 정책과 금융 통제는 계승하고 성장 지상주의, 과도한 중앙집권 같은 부정적 유산은 극복한 ‘제3의 길’이 나와야 한다. 나는 개헌을 통한 지방 분권과 복지 이코노미에 그 열쇠가 있다고 본다.”
◇ 지속 가능한 진보가 되려면
–2006년 임혁백, 김호기 교수와 뉴레프트 그룹인 ‘좋은 정책 포럼’을 만들었다.
“출발은 ‘노무현 정부 2년 평가’였다. 평가위원장이 임혁백, 나는 균형발전 분과위원장이었다. 가차 없이 비판해달라는 노 대통령 요구로 참여정부의 모든 부처를 칼질해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정책실 386 참모들의 반대로 폐기됐다. 이에 실망한 학자들이 ‘진보의 성찰’을 화두로 뭉친 것이 ‘좋은 정책 포럼’이다.”
–성장, 안보, 북한 인권 등 보수의 의제들을 앞세웠더라.
“지속 가능한 진보가 되기 위해서다. 스웨덴 볼보 자동차는 노동 소외의 상징인 컨베이어 벨트 조립 라인을 없애고 노동자의 자주성을 살린 진보적 생산 방식을 도입해 각광받았지만, 결국 고비용 저효율로 포드에 합병당했다. 아무리 진보적인 노동 과정이라도 경쟁력과 효율성이 떨어지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애국적 진보’라는 표현을 했더라. 애국이란 말은 전체주의, 국가주의를 연상시키는데.
“하버마스의 ‘헌법적 애국주의’라는 말처럼 애국은 특정 정당, 정치인이 아니라 헌법에 충성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반역하는 진보여서는 안 된다.”
–통진당 사건이 진보를 죽였다고 보나?
“이석기는 진보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진보가 국민 신뢰를 되찾으려면 북한 추종 세력과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북한 체제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의 권리만큼 노동의 윤리가 중요하다고도 했다.
“노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말이다. 노조 밖 노동자들,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고통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 임금만 올리기 위해 투쟁해온 민노총 역시 양극화에 책임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도 변형윤의 학현학파를 비롯한 좌파 경제학자들 작품인가?
“케인스 이론 중 하나인 ‘임금 주도 성장’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혁신을 통한 성장과 일자리 창출 없이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과 이념만 앞세워 서민을 더욱 고통 속에 빠뜨린 실패한 정책이었다.”
–민주당 이재명표 경제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포퓰리즘이고 국가 예산을 낭비할 뿐이며, 병의 뿌리를 다스리지 않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형수 욕’보다 더 위험한 게 이 대표의 경제 인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초특급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전 정권 실패를 수습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서 출발했다. 개혁의 방향은 맞지만 추진 전략에 보완할 점이 있다고 본다. 위기일수록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박정희 정신’이 절실하다. 박 대통령은 한 라인의 보고만 받지 않았다. 여러 라인을 비밀리에 경쟁시키며 다양한 채널에서 최적의 해법을 찾아나갔다.”
–‘좋은 정책 포럼’은 지금도 이어가고 있나?
“5·18법 제정, 윤석열 정부에 대한 견해가 달라 소원해졌다.”
–학계에선 외로울 것 같다.
“동료는 물론 제자들에게서도 비난받은 안병직 선생의 심정을 알겠더라(웃음). 그러나 두렵지 않다. 진짜 용기는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박정희가 옳았다.”
☞김형기
1953년 대구 출생.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임용돼 한국사회경제학회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을 지냈고, 뉴레프트를 내건 ‘좋은정책포럼’을 이끌었다. 저서로 ‘한국경제 제3의 길’ ‘새로운 한국 모델-박정희 모델을 넘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