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만난 헬렌 김은 “한국이야말로 축복의 땅”이라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지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신의 호출’이 늘 원하는 방향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치판에서 유엔으로, 유엔에서 ‘죽음의 땅’ 아이티로 진군할 때 “틈만 나면 하나님 손아귀로부터 도망칠 방법을 궁리했다”며 그녀는 깔깔 웃었다. 서울시청 앞 대형 트리를 올려다보며 “이곳이야말로 축복의 땅”이라고도 했다. “한국이 싫다고요? 갱단에 살해당한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 무정부 상태의 아이티에 오시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 감사하게 될 겁니다(웃음).” 아이티의 ‘마마리아’(거리의 엄마)로 불리는 헬렌 김 선교사 이야기다.

◇ 내 방탄차는 ‘시편 91편’

-’스크랜튼 상’을 받기 위해 귀국했다고 들었다.

“130년 전 척박한 조선 땅에 여성 교육의 씨를 뿌린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를 기념한 상이라 기쁘고 감사했다. 아이티의 우리 아이들, 선생님들에게 큰 소망을 안겨주셨다.”

-현재 아이티 상황은 어떠한가?

“대통령은 살해됐고 의회는 해산됐다. 총을 든 무장 갱단이 사실상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영양실조와 마약으로 죽어가고 있다. 매일 밤 총소리가 들린다.”

-’하나님께 사표 내지 말라고 주신 상’이라고 했더라.

“90개 넘는 갱단이 난립해 공항과 항구를 점령하면서 경제가 멈춰 섰다. 쌀값이 20배 오르고 환율이 폭등해 당장 아이들 먹을 양식이 바닥나고 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다. 스크랜튼 상금은 우리 아이들 한 달 점심값이 될 것이다. 도망치려고 할 때마다 기적을 보여주시니 사표를 내려도 낼 수가 없다(웃음).”

-두렵지 않나.

“그렇잖아도 이번에 상을 주신 유나이티드 문화재단 강덕영 이사장님이 헬렌이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르니 빨리 상을 줘야 한다고 서두르셨다더라, 하하!”

-웃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방탄차를 타고 다니라는 분들 많지만, 중고차도 1억원이 넘는다. 내 목숨이 그렇게 비싼가?(웃음) 대신 시편 91편을 방탄차 삼았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성경 구절이 총알을 막아줄 수 있나.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믿음이 강철보다 강한 방패막이다. 아이티에서 12년 살면서 한 번도 총 맞아 본 적 없다(웃음).”

헬렌 김 선교사가 아이티의 아이들과 활짝 웃고 있다. 헬렌 김은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쉼터와 '아가페 스쿨'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헬렌 김 선교사 제공

◇ 거리의 엄마, ‘마마리아’

-2013년부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거리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86명이 숙식하는 쉼터, 145명이 배우는 ‘아가페 스쿨’을 운영한다. 학교가 있는 ‘시테 솔레이’는 ‘태양의 도시’라는 뜻이지만 ‘쓰레기 마을’로 불릴 만큼 유엔이 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10대 지역 중 하나다.”

-아이티 정부의 지원은 없을 테고.

“100퍼센트 헌금으로 운영한다. 나는 어떤 교회나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나 홀로 선교사’라 하나님 ‘빽’이 절대 필요하다(웃음).”

-처음엔 쉼터 하나로 시작했다던데.

“초창기엔 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오게 해 밥을 먹였다. 그런데 밥만 먹이고 다시 거리로 돌려보내니 아이들 삶이 바뀌지 않더라. 함께 살면서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다.”

-학교까지 세우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미국 뉴저지의 한 교회에서 1만7000달러를 보내주셨다. 교인 30명의 아주 작은 교회에서 보내주신 헌금이라 얼마나 놀라고 감동했는지 모른다.”

-’델마’라는 곳에도 아가페 스쿨이 있더라.

“무정부 상태가 되자 구호단체들이 학교 문을 닫고 아이티를 떠났다. 그중 한 곳을 내가 떠맡게 돼 올해부터 규모가 커졌다.”

-교사가 다 선교사들인가.

“50명 모두 아이티 현지인들이다. 실무 책임자인 잭 플로리발은 미국 갱단 출신이다. 총을 19방 맞고 길에 쓰러져 죽어가던 그를 지나가던 목사님이 살리셨다고 한다. 미국에서 아이티로 추방됐다가 나를 만나 거리의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에 뛰어들었다. 잭을 비롯해 궂은일 도맡아하는 그분들이 진짜 영웅이다.”

-아이들이 말썽을 일으키진 않나?

“갱단에 있던 아이들이 많아 초기엔 싸움이 한번 일어나면 여기저기서 피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교사들도 벌벌 떨 정도인데 이상하게도 내가 ‘그만해!’라고 소리치면 아이들이 딱 멈췄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특별한 권능이다, 하하!”

-갱단도 ‘마마리아 헬렌’이라고 하면 혀를 내두른다던데.

“학교를 계속 운영하려면 매달 얼마씩 상납을 하라고 하더라. 그렇지 않으면 폐쇄시키겠다며. 그래서 ‘맘대로 하라’고 했다. ‘그렇잖아도 헌금이 바닥나고 먹을 것도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학교를 문 닫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그러자 주민들이 갱단에 몰려가 항의하더라. 너희가 우리 애들 먹이고 가르쳐줄 거냐고. 결국 갱단이 손을 들었다(웃음).”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거리에서 조폭 연합 'G9'의 두목인 지미 '바비큐' 셰리지에(가운데)가 복면을 쓴 조직원들과 총을 들고 활보하고 있다. 중남미 최초의 독립국인 아이티는 빈곤과 정정 불안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조폭들에게 점령됐다. 2021년에는 대통령이 괴한들에게 피살되는 등 국정 마비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 한국 정치판에서 배운 것

-100명 넘는 아이들에게 심장 수술도 해줬다던데.

“치료비가 없어 수술받지 못한 채 병원 컨테이너에 쌓여가는 아이들 시체를 보았다. 뭐라도 해야겠는데 하나님이 고대병원 심장수술팀에 이어 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과 만나게 해주셨다. 이번에도 아이들과 부모들을 인솔해 서울에 왔다. ”

-소속 교회나 단체 없이 이 모든 일을 어떻게 꾸려가나.

“대학 졸업하고 뛰어든 한국 정치판에서 조직과 시스템 만드는 법을 배우고 훈련했다. 위기가 닥치면 당황하지 않고 대응 전략, 전술부터 떠올리는 게 몸에 뱄다. 정치에서 배운 걸 아이티에 와서 써먹을 줄은 몰랐다(웃음).”

-27세에 통일국민당 최연소 정책전문위원으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사무국장으로 활약했더라.

“여성경제인협회 시절 만들어 통과시킨 ‘여성경제인 지원에 관한 법률’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여성 경제인이 3%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40%를 넘었다고 들었다.”

-왜 정치판을 떠났나?

“여성 정치인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시아버지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거나 남편 직업이 빵빵해야만 했다(웃음). 개인적으로도 이혼의 아픔을 겪고 아이들 친권마저 빼앗기면서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나 하나도 구원 못하면서 다른 여성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나, 회의가 밀려들더라.”

-그래서 유엔으로 떠난 건가?

“원래 뉴욕 본부로 가게 돼 있었는데,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유엔 직원 103명이 사망하면서 아이티 평화유지부로 급히 발령났다. 폭력, 마약, 강간에 노출된 여성들과 아이들을 구해내면서 아이티는 내게 특별한 땅이 되었다. 돌아보면 모든 게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뎅기열부터 코로나까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고.

“치킨군야는 관절에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라 손가락, 팔, 어깨를 하나도 쓰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코로나에 걸렸을 땐 죽음 직전까지 갔다. ‘마지막 숨이겠다’ 싶은 순간 하나님이 살려주시더라. 비로소 나의 교만을 내려놨다.”

-교만이라니.

“신의 뜻에 따라 아이티까지 왔지만 틈만 나면 도망칠 궁리를 했다. 나 같은 인재가 이런 끔찍한 곳에서 썩어도 되나 싶어 늘 화를 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웃음).”

헬렌 김 선교사가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세운 아가페 스쿨. 학교가 있는 '시테 솔레이'는 유엔이 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10대 지역에 포함돼 있다. /헬렌 김 선교사 제공

◇ 아이티란 이름의 ‘거룩한 땅’

-그 후 생각이 달라진 건가?

“스크랜튼 선교사가 거리의 여자아이들을 데려와 교육시킬 때 오늘의 대한민국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을까. 스크랜튼처럼 나 또한 씨를 뿌리는 사람이지, 열매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떨기나무를 통해 모세를 불러 광야로 인도하신 것처럼 내게는 아이티가 거룩한 땅이었다.”

-살인, 강간, 약탈이 밤낮으로 이뤄지는 아이티에 신이 있을까?

“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는 땅이었다. 내가 아이티 아이들에게 1950~60년대 대한민국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가 어디지?’라고 물으면 일제히 ‘시테 솔레이’라고 대답한다(웃음). 죽음의 땅이었던 한국이 부유한 나라가 되고, 전세계에 2만명의 선교사를 파견하는 축복의 땅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너무도 먼 훗날의 일 아닐까.

“갱단 두목이 학교를 굳이 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묻더라. 그래서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10년 뒤, 20년 뒤에 이 쓰레기마을에서 아이티를 이끌 위대한 지도자가 나올 거라고.”

-원래 이렇게 씩씩한가?

“위로 오빠만 셋이라 인형을 갖고 놀아본 적이 없다(웃음).”

-맷집이 대단한 것 같다.

“나를 아이티로 데려온 하나님은 마른 명태 패듯 나를 괴롭혔는데 그게 다 은혜였다.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한 헌금을 얻기 위해 후원자들께 90도로 고개 숙일 때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다. 멸시하고 모욕을 당해도 행복했다.”

-정치에 미련은 없으신가?

“나는 정치를 사랑한다. 정치는 칼과 같아서 망나니 손에 쥐여주면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되고, 의인의 손에 쥐어주면 다윗처럼 나라를 세운다. 좋은 법과 정책으로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게 정치다.”

-정치의 실패로 한국 사회는 깊은 우울병에 잠겨 있다.

“우리가 가진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걸 누리고 있는지 감사하지 못해서다. 정치인들이 아이티에서 하루만 살아봤으면 좋겠다(웃음).”

-아이티에도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질까?

“물론이다. 마른 뼈들이 일어나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는 기적이 일어나도록 아이들과 함께 소리 높여 노래할 것이다. 희망을 선포할 것이다.”

12월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아이티 거리의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선교사 헬렌 김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헬렌 김

1966년 전북 전주 출생. 한국명은 김혜련이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경희대에서 국제법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사무국장을 거쳐 유엔 아이티 평화유지부 여성정책담당관으로 일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파송 선교사로 선교 단체 DFI를 설립했고, 현재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