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가 같은 조 동반자한테 관심 뺏겨본 적이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며 동료 골퍼 파드리그 해링턴이 농담했다. “어이, 타이거. 비켜봐. 찰리 좀 보게.” 지난달 아버지 우즈와 함께 골프 대회에 나선 열한 살 찰리는 등장하자마자 세계 골프 팬들 마음속으로 쏙 들어왔다. 해맑은 미소, 유려한 스윙에 혼자 힘으로 이글을 잡는 실력까지 보여줬다.

2020년 12월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이벤트 골프대회 PNC챔피언십에 한 팀으로 출전한 타이거 우즈와 아들 찰리./AFP 연합뉴스

찰리는 지역 주니어 대회에 몇 차례 나가본 게 전부였다. 프로 선수와 가족이 팀을 이루는 이벤트 경기이긴 해도, 몸짓 하나하나 온 동네 생중계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40여 년간 주로 주니어 골퍼들을 지도해온 베테랑 코치 랜디 스미스는 출전자 중 가장 어린 찰리에게서 스윙만큼 놀라운 걸 봤다고 했다. “주니어 선수를 평가할 때, 라운드 전이나 다음 샷을 하러 가는 동안 뭘 하는지 유심히 관찰하죠. 찰리는 몸만 작을 뿐 거의 프로였어요.”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열한 살이고 아버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인데, 한 팀으로 전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 처음 나간다면? 아마 시도 때도 없이 아빠에게 눈빛 신호를 보냈을 거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돼?’ 만약 내가 대단한 골퍼인데, 아들의 골프 실력을 만천하에 처음 공개하는 날이라면? 온종일 아이 옆에 바싹 달라붙어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찰리와 우즈는 뚫어지게 공을 쳐다보느라 서로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대화도 많지 않았다. 찰리가 “나 이거 빼낼 수 있을 거 같아”라고 하면 우즈가 “그냥 쳐봐” 하는 식이었다. 찰리가 먼저 티샷하고 엄지를 들어 올리면, 같은 팀 우즈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샷을 생략했다. 제 손으로 결과를 만들어볼 기회를 줬다.

찰리는 자기 구상과 전략대로 샷을 했다. 물에 공을 빠뜨렸고, 퍼트를 놓쳐 아쉬워도 했다. 그래도 초조해하며 골프백을 만지작거리거나 쭈뼛대지 않았다. 18홀 내내 우즈는 찰리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찰리가 샷하고 퍼트할 때 등 뒤에 태산처럼 버티고 서서 지켜봤다. 경기가 끝나자 우즈는 혼자 기자들 앞에 나왔다. “찰리가 골프를 계속 즐길 수 있도록 골프 외 나머지는 내가 맡겠다”고 했다.

평소 우즈가 자녀를 어떻게 키우는지 알 수 없지만, 이들의 라운드는 적어도 그것을 짐작하게 하는 하나의 모델이었다. 현장을 지켜본 미국 골프 매체 기자들은 이렇게 썼다. “요즘 주니어 골퍼의 부모들은 무리해서라도 자녀에게 필요한 건 뭐든 대신 해결해준다. 하지만 타이거는 골프를 통해 책임감을 가르쳤다.” “코스에서 타이거는 (자녀 주위를 맴돌며 간섭하는) 헬리콥터 부모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찰리는 모든 샷을 자기 아이디어로 만들어냈다.” 우즈는 울타리를 넓게 둘러주고는 그 안에서 아들이 선택하고 도전하다가 실패도 해볼 기회를 허용했다. 훗날 골프를 직업으로 삼든 아니든, 찰리는 아버지와 숱한 라운드를 함께해오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프로의 자세를 배웠을 것이다.

스미스 코치는 “잘못된 방식으로 몰아붙이면 아이는 정말 쉽게 망가진다. 아무도 찰리를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찰리는 그저 자기 할 일을 했다는 게 대단하다”고 했다. 팍팍하고 치열한 시대의 부모들은 너무 당연하게 아이 인생을 기획하고 관리하고 대신 준비한다. 아이들은 삶을 헤쳐나갈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내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대회 마치고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아빠의 우람한 두 어깨 사이에 폭 안긴 찰리를 보니 찡했다. 언제든 쉬어갈 넉넉한 품 내주는 게 부모 노릇이지 싶다가도, 욕심과 불안 다스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