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세요?” 어색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마주쳐본 이는 안다. 전화번호조차 모르는 이를 직접 만나 내가 가진 재화를 파는 게 얼마나 ‘뻘쭘한’ 일인지를. 지역 기반 직거래 플랫폼이니 보나마나 동네 사람일 텐데, 용돈 받듯 현금을 받고 돌아서는 건 영 어색한 일이다. 그러나 판매자나 구매자나 가격엔 칼같이 엄격하다. 얼굴과 사는 동네가 대략적으로 공개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바가지도, 후려치기도 먹히지 않는다. 1~2분가량의 어색함만 버텨내면 철저히 ‘오늘날의 가치’에 따라 물건을 거래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오늘을 읽는 데엔 ‘당근’만 한 게 없다.

재미 삼아 여러 물건을 팔아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정치인들의 책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의 책은 5000원에도 불티나듯 팔렸다. 최근 몇 년 새 서울시장, 대통령 선거에 매번 등장한 정치인의 책은 1000원에 올렸는데도 아무도 사겠다는 이가 없었다. 이른바 ‘문파’들이 찬양했던 어느 정치인의 책은 3000원에 올렸는데 반응이 엇갈렸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중요한 책을 왜 파느냐”는 훈계 조의 말을 했고, 어떤 사람은 “이걸 이 돈 받고 팔려 하느냐”며 값을 깎아달라고 질책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느 여론조사보다도 적확했다. ‘이런 게 민심인가’ 싶기도 했다.

9일 전북 익산시 익산실내체육관 주차장에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이 요소수를 사기위해 연료통을 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김영근 기자

그런 ‘당근’에 ‘요소수 구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솔직히 최근까지도 요소수가 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운전면허를 딴 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고, 차를 사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요소수를 둘러싼 ‘당근’의 분위기는 뭔가 희한했다. 구하는 사람은 많은데, 파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판매글이 올라와도 ‘1분 컷’이었다. 아이돌 콘서트표 판매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매일 꾸준히 값이 올랐다. 한 통에 4만원이던 게 5만원이 됐고, 6만원이 됐고, 어느덧 8만원까지 올랐다. 그런데도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냥 ‘제발 팔아달라’고 읍소하기만 했다. 도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유행 아이템인가 싶어 요소수를 검색해볼 지경이 됐다. 그게 벌써 2주 전 얘기다. 요소수란 디젤 차량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을 줄여주는 물질로, 이게 없으면 차량을 운행할 수 없다고 한다. 택배도 할 수 없어 물류 대란이 일어난다는 설명이었다.

민간에선 난리가 난 지 오래인데, 정부는 뒤늦게 요소수를 매점매석하거나 불법적으로 유통하는 행위를 단속하겠다고 했다. 온라인에서 폭리를 취하려는 판매자들을 엄벌에 처하겠다는 발상이다. 물음표가 꼬리를 물었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넘쳐난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서 단속 운운하는 걸까.

‘당근’에는 여전히 요소수를 구한다는 글이 올라온다. 단속을 하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고, 당장 오늘이 급한 사람들의 목소리다. ‘요소수 선착순 판매 정보 공유합니다’라는 선의의 글도 있다. 당장 내일 발이 묶일 처지에 놓인, 정부에 기대를 걸어봐야 별것 없다는 것을 아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 시장에 운명을 맡기고 서로에게 기댄다. ‘당근’은 역시, 다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