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몇 달이 채 안 됐던 수습기자 때 성범죄 사건을 취재했다. 낙종해 질책당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쫓겼다. 어찌어찌 피해자 측 변호인을 만날 기회를 만들었다. 머릿속에 기사를 써야 한다는 생각만 온통 가득했다. 약자를 대변하는 대신, 특종에 눈이 먼 기자로 보였을 테다. 결국 진심 없는 인터뷰에는 아무 수확이 없었다. 부끄러운 기억이다.

지난달 중순 한국 축구 간판 스트라이커 황의조가 성범죄 피의자가 됐다. 황의조는 상대 동의 없이 성관계 영상을 촬영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고 기사를 썼다.

유포 피해자는 온라인에 영상이 올라온 뒤부터 오랫동안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영상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아가 ‘휴대폰 공포증’ 까지 찾아온다.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 앞사람의 휴대폰 카메라 렌즈가 본인을 향하고만 있어도 식은땀이 날 정도라고 한다.

피해자의 불안을 키우는 요소 중엔 법적 허점도 있다. 현행법상 성관계 영상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법적 책임이 없다. 법은 영상의 소유권이 촬영자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상을 지울 의무 역시 없다. 만약 유포는 제3자가 했고, 촬영자가 불법 촬영 혐의를 벗는다면 그 영상은 다시 촬영자에게 돌아간다. 영상이 떠돌아다닐까 봐 또 불안에 떠는 건 피해자의 몫이다.

그래서 황의조 사건 피해자도 처음엔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본인 신원이 노출될까 두려웠다. 황의조가 동의 없이 영상을 촬영했다고 밝힐 거라 믿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낌새가 보이지 않자 피해자는 경찰에 처벌을 원한다며 직접 대응에 나섰다. 주변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피해자로서는 큰 용기를 낸 것이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피해자는 특정될 수 있는 위협을 받았다. 그 뒤 발표된 황의조의 입장문에 피해자 신원에 대한 정보가 들어가 있던 것이다. 수틀리면 신원을 공개해 버리겠다는 협박성 입장문이라고 범죄 심리 전문가는 추정했다. 피해자는 영상이 유포되고 황의조와 여러 번 통화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피해자의 상황을 잘 알고 이용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재 수사는 영상을 촬영하기 전 동의가 있었는지가 쟁점이지만, 황의조가 뉘우칠 부분은 그것만이 아니다. 영상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받고도 지우지 않았다. 연인 관계가 끝나고도 영상을 계속 휴대폰에 가지고 있던 게 유출의 빌미가 됐다. 심지어 그 휴대폰을 유포 피의자인 형수에게 거리낌 없이 빌려줬다가 영상이 퍼졌다. 그 탓에 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래서 피해자가 누구래?’ 기사를 쓴 뒤 주변에서 자주 들은 말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악의 없는 질문들이었다. 사건을 둘러싼 많은 사람이 그 질문을 들을 것이다. 그중 한 명이 ‘너만 알고 있어라’라고 말하는 순간 피해자의 지옥은 시작이다. 그러니 나쁜 의도는 아니더라도 궁금증은 마음 밖을 넘지 말기를. 크게 힘들지 않은 단순한 인내가 피해자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