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변호사들의 치열한 공방전. 서초동 법정에서가 아니었다. 언론 매체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뤄진 여론 법정이었다.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아동을 학대했다는 사건. 실제 재판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양측 변호사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피해 아동 A군이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서 손웅정 SON 아카데미 감독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아카데미 코치로부터 피멍이 들도록 맞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손 감독 측은 여론이 등을 돌리기 전에 재빨리 A군 아버지의 녹취를 공개했다. A군 아버지가 손흥민의 이미지 값이라면서 합의금 5억원을 요구했다가 점차 금액을 낮추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얼마 뒤 아카데미 코치들이 욕설을 일삼았다는 영상, 손웅정 감독이 넘어진 선수에게 발길질을 했다는 역폭로가 나왔다.

양측 변호사는 날마다 제시되는 새로운 증거 자료에 열심히 대응했다. 피해 아동 측 변호사는 “수억 원의 합의금은 손 감독 측이 먼저 제시했다. 전후 과정을 뺀 것”이라고 했다. 손 감독 측 변호사는 “훈련 내용이 실전에서 나오지 않아 답답했던 탓에 표현이 정제되지 않았다”라며 “게다가 피해 아동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라고 선을 그었다. 본인 쪽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상대 탓을 했다. 옳고 그른지는 뒷전이었다. 사실 당연하다. 의뢰인 입장을 최대한 설득하는 게 변호사 본연의 임무다.

SON 아카데미 학부모들의 진흙탕 싸움 참가도 인상적이었다. SON 아카데미 학부모들은 “(체벌 당시엔) 분위기를 바꿀 무언가가 필요했다.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일을 마치 큰 범죄인 것처럼 다룬다”고 했다. 이들은 “체벌이 정당하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덧붙였지만, 정당하게 여겼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프로의 길로 접어드는 자녀들이 얼른 축구에 집중하길 바랐을 것이다.

지난한 여론전을 보면서 떠오른 건 소위 ‘어른들의 속담 재해석’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등이다. 체념 섞인 자조적 유머지만 폐부를 찌르는 통찰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이런 말들에 공감하면서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이를 가르치지 않는다. 아직은 올바른 가치관을 배워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전으로서의 삶은 그다음 순서다.

피해 아동 A군은 캐릭터 잠옷을 좋아하고,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춤도 따라 추는 평범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런 A군이 어른에게도 힘겨운 여론전을 견디고 있다. 선악의 경계가 흔들린 어른들의 세계를 여실히 맞닥트린 것이다. 죄책감과 무력감에 몇 날 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SON 아카데미 학생들이라고 다를까. 험악한 분위기에서 피멍이 들도록 맞아도 축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선생과 부모에게 직접 배웠다. 어찌 보면 어른들 모두가 각각 위치에서 나름대로 현명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렇지만 어른들의 합리적 결정을 보면서 아이들은 마음속에 무엇을 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