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 의원이 야당 원내대표 시절 얘기와 자신의 생각을 담은 ‘나경원의 증언’을 출간했다. 하지만 예정된 북 콘서트가 코로나로 취소됐다. 말할 기회를 대신 주려고 그녀를 만났다.

나경원 전 의원은“박원순 성추행과 자살로 비롯된 선거라는 게 완전히 희석돼 버렸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책 얘기에 앞서, 당신이 지인 자녀를 스페셜올림픽코리아에 특혜 채용했다며 고발된 건(件)이 얼마 전 검찰에서 무혐의 났는데?

“한 좌파 단체 인사가 총선 전후로 나에 대해 무려 13건을 고발했다. 그는 민주당 공천관리위원까지 했던 사람이다. 몇 달 전부터는 여당이 ‘왜 검찰은 조국만 수사하고 나경원은 수사하지 않느냐?’며 집중 공세에 나섰다. 추미애 장관은 사실상 ‘나경원 수사’ 지시를 내렸다. 검찰이 법원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가 통째로 기각되자 재청구하는 등 집요하게 털고 있다.”

-본인이 왜 그런 타깃이 됐다고 보나?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 내가 야당 원내대표로서 진두지휘했다. 여당과 좌파 단체는 물타기 작전으로 나와 내 자녀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치몬드 산후조리원

-당시 ‘원정 출산’ 의혹이 먼저 제기됐는데?

“조국 아들의 ‘이중국적’ 보도가 나오니까, 한 인터넷 카페에 ‘나경원이 LA에 있는 라치몬드 산후조리원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게 포털 실검 1위였다. 현 정권에서 박영선·강경화 장관이 ‘이중국적’ 아이를 뒀기에 그쪽으로 옮아가지 않도록 물타기를 하는 것인지…, 정말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부산에서 판사 하던 시절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아들 출생신고 서류를 공개하면 되지 않았나?

“저들의 속성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내가 ‘아들은 1997년생이고 라치몬드 산후조리원은 2000년 개원했다’고 하자, 저들은 ’2000년에 공식 개원했지만 실제 영업은 1997년부터 했다'는 식으로 나왔다. 부산 출생 기록을 제시하면 저들은 ‘서류가 위조됐다’고 나왔을 게 뻔하다.”

-사실관계를 떠나, 세간에는 ‘나경원 자녀도 조국 자녀처럼 대학 진학에 뭔가 특혜를 봤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맹세컨대 자녀 문제에서 조국처럼 해본 적이 없다. 현 정권에서 수사 당국이 샅샅이 다 뒤졌는데 위법이 있었으면 이렇게 놔두겠나.”

-당시 MBC 시사 프로 ‘스트레이트’는 나경원 자녀의 의혹과 관련해 세 차례나 보도했는데?

“공영방송이 같은 프로에서 45분짜리 두 번, 20분짜리 한 번을 내보냈다. 3회에 걸친 나경원 낙선(落選) 특집이었다. 인터뷰한 이들의 말을 교묘히 잘라 붙이고, 내용과 다른 자막도 넣었다. 그 뒤 여권의 공격을 받게 된 윤석열 검찰총장에 관한 방송을 할 때도 나를 엮었다. 정권에 의한 탄압이 이런 것이다.”

-그 방송이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나?

“유권자 눈빛만 봐도 안다. 방송이 나간 뒤 며칠간 지지율이 10%p나 빠졌다. 한 좌파 단체는 지역구 지하철역마다 ‘사사건건 아베 편’이라는 피켓을 들고나왔고, ‘투표로 100년 친일 청산’ ’70년 적폐 청산' 같은 현수막을 곳곳에 매달았다. 반면 내 지지자들이 만든 ‘민생 파탄’ ‘거짓말 OUT’ 같은 피켓은 불법 선거운동이라며 제지했다.”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조해주씨가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이 되면서, 선관위가 엄정한 헌법기관이 아니라 ‘정권 하수인’이라는 인상을 줬다.

“선관위는 ‘친일 청산’ 현수막이 선거법상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친일 청산 앞에 ’100년'이 붙었기 때문에 ‘특정 후보와 선거’에 대한 의견 개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성난 내 지지자들이 ‘반세기 민생 파탄’ ’100년 거짓말 OUT’으로 응수하자, 선관위는 선거를 이틀 앞두고 ‘친일 청산’ 현수막도 불허한다고 했다.”

/연합뉴스

-여권의 한 인사가 낙선한 당신에 대해 ‘국민 밉상’이라고 조롱했는데?

“우파 정당은 이를 그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함께 싸워주지 않는다. 저쪽은 조국·박원순 등에서 보듯이 창피한 일인데도 끝까지 편을 들어준다.”

-우파도 좌파처럼 상식이나 사실관계를 떠나 진영 논리로 뭉쳐야 한다는 건가?

“불법을 감싸달라는 게 아니다. 부당한 공격에 같이 맞서줘야 하는 것이다. 내 개인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우파는 동지적 의리가 없는 것 같다. 함께 맞서 싸우지 않으니 우파는 현대사의 쟁점이나 정통성 논쟁에서 벼랑 끝으로 밀렸다. 저쪽에서 김대중·노무현을 기리는 것만큼 과연 우파 정당에서 이승만· 박정희를 기리고 있나.”

-우파 정당 구성원들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공부가 안 돼 있거나, 그런 가치 대결에서 결코 밀려서 안 된다는 용기가 없는 것 같은데?

“저쪽에서 끊임없이 이승만·박정희를 공격하고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해도, 우파는 맞서 싸울 생각 없이 모두 숨어버린다. 우파는 지금껏 너무 비겁했지 않은가. 이런 얘기를 하면 ‘철 지난 이념’이라고 공박하지만, 나는 ‘이념이 곧 민생(民生)’이라고 본다. 현 정권에서 세금과 부동산 정책을 보면 알지 않나. 좌파 이념에서 이런 정책이 나오는 것이다.”

노영민과 비공개 만남

-총선 참패 뒤 야당에서는 ‘낡은 보수 이념을 버려야 산다’ ‘보수 가치가 시대 흐름에 뒤처졌다’는 내부 반성이 나왔다.

“선거에 크게 몇 번 졌다고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아선 안 된다고 본다. 어설프게 저쪽을 따라가면, 유권자는 원조(元祖)를 찍지 짝퉁을 찍지 않는다. 정당이 굳이 두 개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정당이 살아남으려면 지금은 시대 흐름인 좌파에 올라타야 한다는데?

“이는 용기가 부족한 정치다. 일시적인 부정적 여론과 언론의 공격에 위축돼 물러서면 더 심각한 당의 위기를 맞는다. 우리가 스스로 옳다고 믿는 가치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당의 확장성을 위해 빨리 중도로 가야한다는 강박감이 있는 것 같다.

“기득권 개혁은 필요하지만, 당 이념과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답이 아니다. 사실 ‘중도’는 움직이는 유권자들을 말하는 것이지 이념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있고, 시대 상황에 따라 이 중 하나가 선택받는 것이다. 물론 중도 유인 정책이나 포퓰리즘을 채택할 수 있다. 하지만 우파 정당이면 이를 좌파식이 아닌 우파식으로 내놓아야 한다.”

-이런 입장은 ‘수구 기득권의 반발’로 받아들여질 텐데?

“우파가 왜 수구(守舊)인가, 현 정권 같은 좌파가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다. 물론 뜬구름 잡는 식의 이념에 매달리면 안 된다. 우파적 정책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교육 개혁, 노동 개혁, 규제 개혁 등에서 얼마든지 우파가 국민들의 삶에 어필할 수 있다고 본다.”

-현 정권은 저 모양인데 왜 야당이 지지를 못 받는다고 보나? 국민의힘 지지율은 30% 이하 박스권에 갇혀 있다.

“국민의힘이 우파를 분열시키고 있는 게 아닌지 솔직히 걱정스럽다. 우파 가치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니 국민이 신뢰를 못 한다. 당의 전통적 지지층 신뢰부터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국민의힘 의석수의 절대 열세를 감안해도 지금 모든 것이 여당의 뜻대로 가고 있는데?

“당초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하고 다른 상임위원장 7개를 준다고 했을 때 협상해야 했다. 그걸 포기하는 바람에 입법부를 저쪽에 다 내줬다.”

-여당이 입법부를 마음대로 하는 걸 국민에게 보여줘 정권을 찾아오면 되지 않느냐는 게, 당초 김종인 위원장의 계산이었는데?

“상임위원장 7개를 갖고 있었으면 정권의 스케줄대로 임대차 3법이나 예산안 등이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맹탕 국정감사도 없었다. 한 번도 야당다운 결기나 투쟁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총선 뒤 야당 안에서는 ‘문재인 정권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발목을 잡은 게 참패의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당신은 원내대표를 맡아 국회 보이콧과 장외 투쟁을 벌였으니 원인 제공자인 셈인데?

“이게 바로 정부·여당의 프레임이다. 당시 우리는 소득 주도 성장, 주 52시간제, 탈원전, 사법부와 헌법재판소 장악, 준연동형 선거제, 공수처법 등을 막기 위해 싸워야 했다. 총선 참패가 이런 투쟁 때문인가. 여당이 이긴 것은 코로나 방역과 재난지원금 때문이었고, 우리가 패배한 것은 공천 실패와 전략 부재, 막말 때문이었다.”

-그렇게 막으려고 했던 공수처는 현실화되고 있다. 요란한 투쟁만 있었고 성과는 없었는데?

“공수처 법안 저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출범 시기를 최대한 늦추거나 몇 가지 문제 조항을 삭제하는 협상을 해야 했다. 작년 11월 노영민 비서실장과 비공개로 만나 ‘공수처 출범을 대통령 임기 종료 후 차기 대통령 때까지 연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자, ‘임기 후는 절대 안 되고 늦어도 임기 종료 6개월 전까지라면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뒤 황교안 대표의 갑작스러운 단식으로 정국이 냉각됐다. 차악(次惡)이라도 과실을 땄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아쉬웠다.”

분노 투표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박영선 장관에 이어 오차 범위 내 2위로 나왔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박영선은 범야권 경선에서 박원순에게 졌고, 당신은 본선에서 패배했는데?

“오세훈 시장 사퇴와 안철수 등장으로 당시 서울시장 선거는 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을 버렸는데 왜 또 한나라당을 찍어야 하는지를 설득해야 했다. 이번엔 저쪽에서 버린 서울시장 자리다. 하지만 박원순 성추행과 자살로 비롯된 선거라는 게 이미 완전히 희석돼 버렸다.”

-서울시장 보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보궐선거 투표율은 매우 낮다. 결국 분노 투표나 조직 투표가 승부를 결정짓는다. 서울시 25개 구청장 중 24개가 여당이다. 조직 투표에서 백배 불리하다. 결국 현 정권에 분노한 시민과 야당 핵심 지지층이 투표하러 나와야 이긴다. 이들을 잠깨워 투표장에 나올 수 있게 하는 후보가 필요하다.”

-낙선한 뒤 정치를 계속해야겠다는 열망이 더 강해졌나?

“정치를 그만두는 것까지도 생각해봤다. 그러면 현 정권의 탄압과 공작에 지는 것이 된다. 나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