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남자가 음식이나 먹으러 전국을 다니며 할머니들과 실없는 말도 주고받으니 밉게 보면 한참 밉게 볼 수도 있지요.”
최불암씨는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장수(長壽) 드라마 ‘수사반장’ ‘전원일기’에서 그랬듯이, 그가 현재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KBS)도 꼭 10년이 됐다. 그 세월 동안 그의 개인적 변화는 숫자로 70세에서 80세가 된 것뿐이다.
“이번엔 전남 해남을 다녀왔지요. 길이 멀었어요. 승합차로 왕복 11시간 걸렸으니’’'. 요즘에는 어디든 당일치기 출장을 해요. 장시간 차를 타면 허리가 많이 아프지만, 힘들기는 운전기사가 더하겠죠.”
-지금 여든인데, 하루 만에 해남까지 가서 촬영하고 그날 다시 올라왔다는 겁니까?
“제작비를 줄여야 하는 문제도 있고’'', 옛날에는 멀리 가면 하룻밤 잤어요. 사실 낯선 데서 자는 것도 불편해요. 스태프와 같이 숙식하면 고급 호텔에 묵지도 않거든요.”
가난한 밥상
-제 나이에도 지방 다녀오면 힘든데, 매주 한 번꼴로 출장을 감당하는 게 대단합니다.
“이게 내 직업이니까 참는 거죠.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아무리 허리가 아파도 ‘잘 다녀왔소’ ‘오늘 좋았소’라고 말하지요. 옛날에 우리 클 때만 해도 ‘잘 참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한번은 어느 후배가 ‘일이 너무 힘들어 죽겠다’며 그만두고 싶다고 하기에, ‘놀다 죽었단 소리보다 일하다 죽었단 소리를 듣는 게 낫다’고 말한 적 있어요. 뭐 꼰대처럼 들리겠지만, 허허허.”
-’한국인의 밥상' 프로를 10년 하면서 우리나라를 거의 다 가봤겠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전국 각지 사람과 음식, 정서를 접할 수 있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10년 해보니 어딜 가도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은 똑같다는 걸 느낍니다. 돈 많다고 특별나게 행복하지도, 없어서 불행하게 보이지도 않았어요. 우리 세대는 다들 어려운 시절을 거쳐왔어요. 하지만 이들은 주어진 삶에 크게 불평하지 않았어요. 항상 자신보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선이었고요. 사람의 삶이 이런 건가, 애틋한 가족 관계를 뒤늦게 깨달아요.”
-전국을 다니며 먹어본 한국인의 밥상에서 공통점이 있던가요?
“10년을 했으니, 횟수로는 한국인의 밥상을 500번 이상 받아봤지요. 그 밥상은 대부분 어려운 시절에 가족을 먹이기 위해 어머니가 궁핍한 식재료를 갖고 지혜를 짜내 만든 것이었어요. 밥상을 받을 때마다 이 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어머니 덕분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어느 지역 어느 밥상이 가장 맛있고 인상에 남았습니까?
“새우젓만으로 간을 맞춘 우럭젓국이라든지, 어머니의 지혜로 만든 가난한 밥상이 가장 맛있어요. 이 프로를 하니까 주위 친구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좋은 음식을 다 먹고 다닌다’고 말해요. 음식점에 가면 갑자기 저에 대해 신경을 많이 씁니다. 내가 음식 평가를 하러 온 줄로 알거든요.”
-이런 프로가 10년 장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지요. 자극적이었으면 오래 못 갔을 겁니다.
“저와 생각이 같군요. 제작진에게 ‘야단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었습니다.”
-최 선생님을 9년 전쯤 만난 것 같은데 지금도 여전한 모습입니다. 특별한 운동이라도 합니까?
“건강은 세월 따라 가는 거죠. 운동은 거의 안 합니다. 바깥에서 걸으려고 해도 사람들이 쳐다봐서 못 하고, 집 안에 러닝머신이 있지만 잘 타지도 않아요.”
-아마 훨씬 전에도 지금 모습이었을 테고 앞으로도 이렇겠지요. 굳이 사람 분류를 한다면, 최 선생님은 질리지 않고 오래가는 사람 쪽입니다.
“옛날에 ‘수사반장’ ‘전원일기’를 본 노인들은 저를 아주 오래된 옛날 배우로 압니다. 당초 대학 시절 연극할 때부터 주로 노역(老役)을 했으니’’'. 제가 아버지를 일곱 살 때 여의고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노역이 자연스러웠는지, 어쨌든 청년에서 바로 노인으로 간 거죠.”
-1971년 ‘수사반장’을 처음 맡았을 때가 서른한 살이었지요?
“드라마 속 수사반장은 쉰다섯 살쯤 되는 노숙한 역이었지요. 내가 ‘한국인의 밥상’ 프로를 시작할 때 일흔 살이었는데, 지방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최불암씨는 아흔다섯 살은 됐을 거로 아는데, 얼굴이 생생하시다. 어디 성형이라도 했소?’라고 합니다.”
-최 선생님의 브랜드를 만든 ‘수사반장’은 1971부터 1989년까지 했지요?
“어떤 운명의 장난인지 ‘수사반장’에 함께 출연한 김상순, 조경환, 남성훈은 모두 고인이 됐습니다. 조언해준 최중락 총경도 그렇고요. (그는 개인 수첩을 꺼내 보여주며) 이 명단은 여순경으로 출연한 배우들인데, 세월이 오래돼 자꾸 잊어서 적어놓은 겁니다. 김영애, 염복순, 김화란 등의 순으로 출연했지요. 이분들도 고인이 됐거나 소식이 끊겼습니다.”
- ‘전원일기’(1980∼2002년)에서 응삼이 역을 했던 박윤배씨가 돌아가셨지요?
“어머니 역을 했던 정애란씨가 돌아가셨고 이제 응삼이가 저세상으로 갔어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함께하는 배우나 스태프는 제게 가족이고 동지였지요.”
불안감
-최 선생님은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 회장 역을 하면서 ‘국민 대표 아버지’가 됐지요. 연기를 시작한 뒤로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아온 거죠?
“작가가 써준 대로 배역을 맡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요. 작가의 펜 끝에 연기자의 운명이 달렸다고나 할까요. 드라마에서 내가 아버지 역을 맡고 있으면, 현실에서 내가 그 그려진 아버지에게 자신을 맞춰 좇아가고 있어요.”
-집안에서도 드라마에 비친 그런 아버지였나요?
“자녀들이 자랄 때는 방송 일로 워낙 바빠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 했지요. 내 아이도 곁에 있는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인지 드라마에 나오는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인지 헷갈렸을 겁니다. ‘전원일기’를 찍던 시절 집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아내가 ‘허리 좀 펴고 앉으세요’라며 면박을 줘요. 아이도 ‘양촌리 김 회장님 같아요’라고 했으니까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회장을 맡은 지 40년이 됐는데, 그 계기도 ‘전원일기’ 속의 연기(演技) 때문이었다고 했지요?
“1981년이었어요. 농기구를 사러 장터에 갔는데 ‘금동이’가 앉아 동냥하고 있었어요. 내가 발걸음이 안 떨어져 뒤돌아서 천원을 주려다가 ‘우리 집에 갈래? 더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형(兄)아가 입던 옷도 있다’며 데려오는 장면이었어요. 그 방송이 나간 뒤 ‘당신 훌륭하다’는 격려 전화와 편지가 쇄도했어요. 작가가 써준 대로 연기한 것뿐인데 내가 위선자 아닌가, 그런 고민을 할 때 누군가가 여길 소개해 줬어요.”
-현실과 드라마를 혼동하듯, ‘전원일기’에 나오는 김혜자씨를 최 선생님의 부인으로 생각한 이도 많았습니다.
“내 친구들도 ‘김혜자와 사나, 김민자와 사나? 낮에는 김혜자, 밤에는 김민자냐?’고 짓궂게 놀리곤 했지요. ‘전원일기’를 오래 하다 보니 아내한테 미안하게 됐지요.”
-김혜자 선생은 아주 드물게 문자를 보내오는데 나라 걱정이 많더군요. 언론에 몸담고 있지만 시원한 답변을 못 해줬습니다.
“내 아내(김민자)도 뉴스를 보는 시간이 길어졌고 걱정이 많더군요.”
-이런 분들까지 ‘나라가 어떻게 될까’ 걱정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지금 정치가 크게 잘못됐다는 방증이겠지요.
“정치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려는 것인데, 지금 시국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내 주위 사람들도 다들 불안해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속 말을 바깥으로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됐어요. 말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민주화 이후로 지금까지 다른 정권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한 불안감이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받아들여 온 가치나 예의, 상식 기준이 급격히 허물어져버린 것 같아요. 아예 대놓고 이를 조롱하고 폄하하는 무리도 생겨났습니다.
“세상이 갑자기 왜 이렇게 가고 있는지 답답하죠. 현 정권 출범할 때만 해도 많이 기대했는데’'', 문 대통령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어가는지 잘 모르겠어요. 국민은 가는 길이 어디인지를 좀 더 분명하게 알았으면 해요. 모르니까 불안한 거죠.”
-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라며 가야 할 길의 청사진을 이미 보여줬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것 같군요.
“우리가 못 알아들어서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언론에서 아무리 지적하고 의문을 제기해도 대통령의 대답을 들을 수 없어요. 국민은 그걸 알 권리가 있잖아요. 대답이 정 어려우면 ‘지금은 이런 이유로 말을 못 하겠다’ 하든지’’'. 그러다가 대통령이 겨우 답변을 내놓을 때도 있지만 그게 무슨 뜻이고 무슨 의도가 담겨있는지를 모르겠어요.”
문 대통령의 의중
-설마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니겠지요?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잘 모르겠다는 거죠. 국민이 다들 불안하고 무언가 알고 싶어 하는데, 왜 터놓고 알아듣게 얘기해주지 않느냐는 겁니다. 지도자의 뜻을 알아야 국민이 따라가잖아요. 국민에게 납득이 안 되는 전략을 쓰니 불안한 거죠.”
-문 대통령이 하는 말과 실제로 이뤄지는 것은 다릅니다. 세간에서는 문 대통령이 말하는 것과 반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들 하지요.
“아마 대통령도 고민이 많을 거예요. 그렇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속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나요. 차라리 노무현처럼 ‘힘들어서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하는 게 더 낫겠어요. 지금 모든 국민이 불안하게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잖아요.”
점심 자리에서 그는 앞서 빠뜨렸던 정말 중요한 얘기를 꺼냈다.
“오늘 최 형을 만난다니까 아내가 ‘말씀 조심하고 묻는 말에만 간단하게 대답하라’고 걱정했어요. 우리처럼 얼굴 내놓고 사는 사람은 참 말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나는 지금껏 자기주장을 별로 안 내세우고 살아왔어요. 남들과 충돌하지 않고 세게 고집부린 적도 없었어요. 하지만 요즘 시국을 보면 너무 답답합니다.”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