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64)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2년 문재인 대통령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다. 그가 비서실장으로 있던 지난 2년 사이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압승했다. 그러나 코로나와 마스크 대란, 백신, 부동산, 조국, 윤석열 사태, 남북 관계 등으로 줄곧 애를 먹었다. 대통령 지지율도 40% 이하로 떨어졌다. 다주택 논란으로 서울 반포와 충북 청주의 아파트를 모두 팔았고, 퇴임 전 그의 지역구인 청주에 전세를 구했다. 청주에서 그를 만났다.
-고향에 돌아와 뭐하고 지냈나.
“완벽한 휴식 중이다. 청와대에서 치아 문제가 생겼는데 퇴임 2주 만에 신기하게 치아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제대로 보필 못한 책임'을 언급했는데.
“비서실장이라는 자리가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포괄적 책임을 말한 것이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자 작년 12월 30일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2020년 10대 성과' 보고서를 건넸다. ‘세계 표준이 된 K방역, 위기에 강한 경제, 총선 압승, 권력기관 개혁’ 등 10개 항목으로 이뤄졌다.
“연말에 한 번씩 ‘우리가 이것을 잘했다’는 보고를 했다. 잘못한 것이야 야당과 언론에서 차고 넘칠 만큼 지적을 하니 우리 성과 위주로 보고한다. 2020년의 평가는 결국 코로나 팬데믹이다. 우리는 경제와 방역에서 성공한 사실상 유일한 나라다. 확진자 사망자 숫자로는 OECD 국가 중 호주와 뉴질랜드 빼고 가장 잘했다.”
그는 ‘성과’를 한참 설명했다. 북한 비핵화에 실패했고 북한에 저자세였다는 평가와 달리 ‘자주국방 토대 확립’이라는 부분을 특히 강조했다. 첨단 무기 도입,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등을 거론하며 “역대 정권이 20년 걸릴 일을 우리 정부가 다했다”고 자랑했다.
-우리가 재래식 무기를 살 동안 북한은 핵무기를 고도화했다. 국방력의 비대칭이 더 커졌다.
“안보 문제라 다 밝힐 수 없지만 우리는 비핵화라는 국제사회의 룰을 지키며 국방 능력을 최대로 키웠다. 핵무기의 유무로 단순히 비교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 미사일이 북한보다 많다.”
-미북 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 다 했지만 결국 북한 비핵화는 실패했다.
“원점이 아니라 싱가포르 회담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싱가포르 합의를 기반으로 해서 하노이 때 합의되지 못한 문제부터 다시 논의하면 된다.”
-성과 중 ‘주가, 사상 최고치 경신’도 있는데 대통령 반응은.
“대통령은 주식시장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고 생각한다. 주가 하락을 겁내 3000 시대 돌입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성과만 보고하고 잘못은 보고하지 않나.
“잘못한 것은 야당, 그리고 신문 1면부터 도배를 하니 대통령도 잘 아신다. 대통령은 신문을 꼼꼼하게 읽으신다. 인터넷 댓글까지 읽는다. 우리가 대통령 눈을 가린다거나, 민심을 왜곡한다는 것은 다 틀린 말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민심(民心)과 자주 역행한다. 특히 부동산과 윤석열, 추미애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 문제로 사과까지 하지 않았나.
그는 부동산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부동산 정책은 효과가 나오려면 4~5년 걸린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 공급이 없었다. 그 여파가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저금리와 유동성 과잉 등 구조적 문제도 있다. 부동산은 정책의 오류라기보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왜 대통령은 부동산 안정화를 국민에게 자신했나.
“최악의 경우라도 대통령이 부동산 가격이 오를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제는 심리다. 부동산에 자신 있다, 안정화되고 있다고 하는 대통령 말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를 보고한 것 아닌가.
“1인 가구의 폭증 등 일부는 우리가 예측을 잘못했다. 1년 사이에 30%가 넘었다. 그러나 큰 방향에서 잘못은 없었다.”
-대통령이 부동산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책임감을 못 느끼나.
“그럴 리가 있나.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대통령의 사과는 결과에 대한 것이다.”
화제를 추미애⋅윤석열 문제로 돌렸지만, 부동산과 달리 말을 아꼈다.
-윤 총장이 언급했던 임기를 다하라는 대통령의 메신저가 당신이라던데.
“누가 그러나.”
-추 장관에게 사퇴를 권유한 메신저라는 말도 있다.
“현직 장관의 문제다. 지금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
-이 사태가 커지기 전에 추 장관을 경질할 수 없었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자. 지금은 아니다. 나중에, 나중에.”
-윤 총장이 대선 주자로서 지지율이 높다.
“그를 여론조사에서 빼면 될 일이다. 윤 총장 본인도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모두 곤혹스러울 것이다. 나는 (윤석열 대망론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이유? 그것도 나중에 말하자.”
-전직 대통령 사면 전망은.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다”
그는 대통령이 이런 지점을 고민할 것이라며 몇 가지를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사안이 다르고 국민 여론도 다르다. 국민들이 사면을 납득하려면 당사자들의 사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코로나도 있으니 형집행정지 등을 먼저 하고 사면을 하는 2단계 방법도 있다.”
-이낙연 대표는 대통령과 사면을 사전에 논의했나.
“사면이 두 분 사이에 거론은 안 됐다고 한다. 이견? 그건 모르겠다. 대통령은 직전 대통령, 그리고 여성 대통령이 4년이나 옥고를 치르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이 지금도 있나.
“잘 있고 매일 보신다. 벽면 모니터에 딱 있다. 대통령 관심이 제일 크다. 일자리 만드는 기업이라면 대통령이 일부 참모들 반대에도 여러 번 방문해 격려했다.”
-하지만 일자리 성적이 나쁘다.
“통계를 보는 방법에 따라 평가도 달라진다. 우리 일자리 성적은 전 세계에 비춰 나쁜 상황은 아니다.”
그는 탈원전 정책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 대해선 “감사나 수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 확산의 계기가 됐던 광화문 집회 참석자를 두고 ‘살인자’라고 말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지금도 살인자라고 생각하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많이 나와 당국은 노심초사했는데 그들은 너무 떳떳했다.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했는데, 적합한 표현은 아니었다.”
-사과할 생각은 없나.
“이미 국회에서 유감 표명을 했다.”
-반포 아파트 놔두고 청주 아파트 먼저 팔아 발표해 다주택 논란이 커졌다.
“청주 아파트는 중국 대사 나갈 때부터 빈 상태였고 반포 아파트에는 아들이 살고 있었다. 청주 아파트를 먼저 내놨는데 대변인이 브리핑을 잘못했고 바로 정정했다. 그 문제로 사표까지 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무주택자가 됐다.
“무주택자로 한번 살아 보려 한다. 살아볼 만한 것 같다. 당분간 집 살 생각도 없다. 집은 주거 개념이지 재테크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재임 2년 동안 가장 기뻤거나 보람 있던 일은.
“조금 정파적인가. 솔직히 총선 승리 때가 제일 기뻤다. 그리고 주가 3000, 권력기관 개혁과 제도적 완성도 보람 있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것도. "
-총선은 코로나 지원금 영향이 컸던 것 아닌가.
“지원금이 도움이 될 순 있었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방역과 마스크 대란 해결이었다. 대통령 지지율도 방역 성적과 관련이 있다. 부동산과 윤석열 사태는 이미 대통령 지지율에 반영됐고 현재 지지율 등락도 방역에 달렸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취임 두 달 만에 하노이 회담이 결렬됐다. 너무 아쉽고 충격도 컸다. 그러나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조국 사태와 부동산 문제가 힘들었다.”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미국에 잘못 전달한 것 아닌가.
그는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조치가 단계적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했다”고 말했다.
-임기 내에 남북 관계에 변화가 있겠나.
“두고 보자. 코로나에 달렸다. 북한은 선(先) 미국, 후(後) 남북으로 정한 것 같다. 미국 문제가 풀려야 남북 문제도 풀릴 것 같다.”
-북한에 너무 저자세 아니었나.
“우리가 퍼준다고 하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북한에 다 줬다. 그런데 우리만 안 줬다. 인도적 차원에서 쌀을 주겠다고 했는데 북한이 거부했다. 김정일은 우리가 준다면 통 크게 받았는데 김정은은 안 한다. 그게 두 사람 차이다.”
-평화를 강조하지만 서해 피격 사건도 있었고 개성 연락사무소도 폭파했다.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는 북한이 오버한 것이다. 두고두고 후회할 짓을 했다.”
-대통령이 남의 말을 잘 듣는 줄 알았는데, 대통령이 된 뒤에 독단적으로 바뀐 건가.
“동의할 수 없다. 대통령은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다양한 인사를 중용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야권 인사 여러 명에게 장관직을 제안했었다.”
그는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으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려면 권력 의지, 시대 정신, 그리고 강력한 지지층(팬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시대 정신은 ‘직접 민주주의’라고 했다. 강력한 지지층과 직접 민주주의 하니 트럼프 대통령이 떠올랐고, 문 대통령의 극렬 지지층도 연상됐다. 그는 “후보가 될 때까지 확실한 자기 색을 내야 하고, 후보가 된 다음에는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소위 ‘문빠’들에게 너무 기대는 것 아닌가.
“대통령은 중도적이다. 외교에선 한미동맹을 최우선하고, 경제에서도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고 세금을 납부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한다. 그런 측면에선 오히려 보수적이다. 다만 사회적 약자에 대해선 진보적이다. "
-국민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이것도 야당, 언론의 문제인가.
“언론이 좀 긍정적으로 보도를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노영민은 누구
1957년 청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했고 이후 배전 기술자로 일하다 전기 관련 사업도 했다. 청주에서 3선을 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주요 정치 현안은 노영민과 상의한다”고 했다. 2017년 중국 대사를 지냈고, 2019년부터 2년 동안 비서실장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