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아들이 40대 엄마에게 따지듯 물었다. “엄마도 페미야?”

영화 제작을 하는 여성 후배의 이야기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해놓고 미뤘던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퇴근길에 들고 귀가했다고 한다. 그 책을 아들이 발견했다는 것. 그러고는 원망과 함께 책을 잡아채더니 자신의 책상 서랍에 집어넣고 A4 용지에 두 글자를 써서 붙였다. ‘봉인(封印)’. 종이를 찢으면, 엄마와 나 사이는 이제 끝이라면서.

신남성연대 회원 200여명이 2021년 12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남성혐오 페미니즘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2021.12.12 /이덕훈 기자

일부만의 극단적 사례일까. 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는 자신의 신간 ‘슬기로운 좌파생활’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공부하는 일을 하다 보니 주변에 여성 박사들이 많고 유명한 여성들도 매우 많은데 대부분 진보 쪽이라는 것. 이 엄마들의 고민이 얼마 전부터 아들과 대화하기가 아주 힘들고, 심지어는 아들이 자신을 미워하기도 한다는 거다. 엄마도 페미야? 이런 이야기를 아들에게 듣고 결국은 눈물 흘리더란다. 지난 2~3년 새 이런 일들이 주변에 부쩍 늘었다. 진보 성향의 엄마와 10대부터 마초 아니 심지어 여혐 성향을 보이는 아들 사이의 갈등 말이다. 우 교수는 요즘 중2 남학생과 진보 성향 엄마야말로 ‘환장의 조합’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가부장제의 혜택을 받고 성장한 세대의 남성이 젠더 갈등을 언급하기란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 주제를 회피하거나 미루는 일 역시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필자가 목격하거나 들은 세태 풍경이다. 하나는 요즘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연애 풍경. 설레는 청춘을 한자리에 모아 놓으니 당연히 커플도 탄생한다는 게 교사 친구의 이야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열이면 아홉은 여학생이 먼저 사귀자고 말한단다.

또 하나는 미성년을 통과한 20대 커플의 연애 에피소드. 서로 좋아해서 혹여나 모텔에 가더라도, 계산의 주체를 여자친구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남자친구의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사용하더라도 말이다. 아버지는 에이, 못난 놈이라고 힐난했지만, 아들은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대꾸했다.

엄마를 ‘페미’로 낮춰 부르는 10대를 옹호할 생각도 없고, 좋아하면서 말도 먼저 못 꺼내는 못난 아들을 두둔할 마음도 없다. 전체의 풍경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사례를 소위 ‘이대남’이 지지리도 못나서, 혹은 피해의식에 절어서라고만 얘기할 수 있을까. 이대남의 입장에서 보면 여성 차별로 인한 이득은 앞선 세대 남성이 다 누려 놓고, 정작 별 특권도 없는 자신들에게 차별 개선 비용을 지불하라는 꼴이다. 이대남 그리고 한층 더 과격해졌다는 ‘일대남’(10대 남성)의 보수화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세대적 불의’에 대한 방어기제라는 것이다.

이념 갈등, 세대 갈등 못지않게 오래되고 복잡한 젠더 갈등이라는 매듭을 단칼에 자를 묘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 중심주의와 가부장적 사고를 탈피하고 평등을 이뤄내자는 페미니즘의 지향 자체를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 아름다운 가치에 도달하기 위한 이념별·세대별·개인별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의 길로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 게 정치와 정치가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은 실망스럽다. 대통령은 최근 국내외 통신사와의 합동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년들이 어렵고 기회가 부족하니 여성과 남성 모두 자신을 성차별의 피해자로 생각한다고. 정치권이 앞장서서 갈등을 치유하며 국민을 통합시켜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옳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권 출범 초창기가 아니라 지난 5년을 평가하는 시간. 그 대답은 5년 전에 나왔어야 할 말이고, 지금 해야 할 말은 젠더 갈등이 왜 여기까지 왔는가에 대한 자성(自省)이다. 부동산·일자리 참사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를 평가할 때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 꼬리표는 ‘친페미니즘 정부’다. 여성할당제 덕에 장관 됐다고 공개 석상에서 말하는 여성가족부 장관,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게 남성의 시민적 의무라고 강의하는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을 보면서, 이 정부가 젠더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로 love를 제치고 mother가 1위를 차지했다는 영국문화원의 한 따뜻한 설문조사를 최근 읽었다. 나 역시 ‘엄마’가 제일 아름다운 한글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를 먼저 떠올리기에 앞서 엄마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고, 아들과 엄마 모두에게 눈물 아닌 미소를 돌려주는 게 정치의 몫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