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9일 대구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현장체험활동을 나온 대구내일학교 늦깎이 학습자들이 무인결제기(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운 뒤 직접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뉴스1

정년퇴직 이후 집 근처 동네에서 볼일을 볼 때가 많아졌다. 어느 날 은행 한 곳을 들르게 되었는데 객장(客場) 풍경이 꽤 낯설었다. ‘금융 정보화’ 시대를 맞아 대다수 국민이 온라인 거래 방식을 이용하는 줄 알던 터였다. 점포 개수의 급감과 창구 업무의 소멸 또한 당연한 대세라 믿던 터였다. 그런 나에게 아침부터 수많은 고객들로 북적거리는 은행 내부는 마치 딴 세상 같았다. 서민 밀집 지역의 여느 평범하고도 번라(煩羅)한 시장통에 위치한 그곳은 각종 ‘정보화 약자’로 그득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정보화 기기 이용에 서툴러 은행 직원들의 ‘자비로운’ 과잉 친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노인이 생각보다 많았다. 순번 대기표 뽑는 일에서부터 경비원의 안내를 받는 노인도 적지 않았다. 노인들은 당당한 금융 고객으로서가 아니라, 각종 정보 시스템이나 자동화 프로그램에 과부하를 초래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일종의 ‘버그(bug)’ 같은 느낌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날이 늘어나는 키오스크 매장에서 기계 주문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식당 테이블에 설치된 태블릿 메뉴판 오더 시스템 역시 어색해하는 노인들이 많다. 관리자 하나 없는 최첨단 전자동 주차장에서 진땀을 뺐다는 고령 운전자 이야기도 있다. ‘현금 없는’ 버스를 탔다가 다른 승객의 카드 도움을 받았다는 사연의 주인공도 노인이었다. 이번 추석의 경우 코레일 승차권은 전부 비대면 예매 방식이었는데, 노인들 사이에 “우리보고 어쩌라고” 하는 볼멘소리가 충분히 튀어나올 만했다.

물론 노인이라고 모두 정보화 취약자는 아니다. 그들 가운데도 IT 능력자는 얼마든지 있다. 또한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무관하게 기존 아날로그적 삶을 연장하며 살아가는 상류사회 부자 노인들도 보란 듯 존재한다. 독립형 부스, 호화 인테리어, 퍼스널 컨설팅 등으로 대변되는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 서비스가 그 보기다. 결국 문제는 한편으로는 정보화 시대에 적응하기가 귀찮거나 벅차고,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사회를 외면할 만한 재력도 갖추지 못한, 보통 노인들의 사정이다.

젊은 세대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이라면 노인 세대는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이다. 말하자면 살아생전 재(再)사회화가 싫든 좋든 불가피해진 세대다. 이들은 디지털 약자로 탄생한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그렇게 분류될 따름이다. 그런 만큼 생활방식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모드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들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수고와 고통은 각별히 이해되고 배려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구겨진 자존심과 열등의식은 결코 스스로 책임질 사안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심리적 불편함이 구조적 불이익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도록 나서는 일은 사회 공동체의 의무이자 도리다.

선진국들은 디지털 혁명에 관련하여 나름 속도 조절을 한다. 현찰 거래에 미련을 갖는 나라도 있고, 컴퓨터 조기 교육을 지양하는 나라도 있으며, 종이 신문을 계속 가까이하는 나라도 있고, 도어록 대신 열쇠 꾸러미를 선호하는 나라도 있다. 특히 노인 문제와 관련하여 이른바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 개념을 널리 받아들인다. 자신이 살던 집이나 동네에서 늙어가는 것이 최상의 노인 복지라는 판단에서다. 사실 노인들이 가게나 시장, 은행 등을 찾아 나서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 그립고 스몰 토크(small talk)가 하고 싶어서이다. 이는 ‘디지털 세상에서 늙어 가기’(aging in digital)를 사실상 강요하는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사뭇 기대하기 힘든 사회적 가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대한민국 초거대 AI 도약’ 회의를 주재하면서 ‘전 국민 인공지능 일상화’ 시대를 약속했다. 그런데 이처럼 나라 전체가 정보화 강국을 향해 ‘앞으로 돌격’하는 모양새가 반드시 바람직하기만 할까? 아무리 정보화 시대를 역행하기 어려워도 말이다. IT 혁명이란 본질적으로 자본과 권력이 주연(主演)인 공급자 중심의 발상이다. 농업혁명을 농민이 선도하지 않았고, 산업혁명을 노동자들이 주도하지 않았듯 말이다. 노인 세대의 디지털 지체가 엄존하는 현실 앞에서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디지털 혁명인가를 국가적 차원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가면 어떨까. 게다가 스마트 문명의 종착지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