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지난 6월에 쓴 칼럼에서 “의료산업에 나라 경제의 미래와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달려 있다. 병원은 물론 의료 전후방 산업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의대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최근 정부가 그렇게 할 방침을 밝히고 의사협회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겠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업종을 막론하고 공급을 얼마나 늘려야 할까를 결정할 때는 소비자 입장에서 판단을 해야지 공급자의 의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공급자는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을 싫어해서 언제나 공급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의사 수를 늘리면 의사의 질이 떨어진다는 등 수요자를 위해서 공급 제한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기까지 한다. 의사협회보다는 병원협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병원은 의사에 대해서 수요자이니까.

정부 발표를 보면 필수의료(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도 필수의료라고 생각하지만 대안이 없어 이 표현을 쓴다), 지역의료에서의 의사 수 절대적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의대 정원 확충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의료산업을 성장 동력, 일자리 창출 산업으로 키우려는 적극성은 보이지 않는다. 임상의사만이 아니라 의과학 발전, 외국인 환자 유치와 해외 진출 등을 감안할 때 의사 수요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자 한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현실은 의대 정원의 확대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처지가 아니다. 의사 수를 늘려도 서울의 비필수 분야 개업의만 늘어날 것이고 지방과 필수 분야로 의사들이 가지 않을 거라는 의사협회의 주장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높은 소득을 기대할 수 있고 의료 사고로 인한 피소 등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로 너무 많은 의사가 쏠린 반사적 결과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수가체계를 포함해서 의사들에 대한 보상 체계를 전면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 최근 정부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상주하고 분만실을 가진 의원에서 분만을 할 경우 수가를 79만원에서 189만원으로 올려 주고 소아과 전공의에게 매월 100만원을 지급하는 등 나름 과감한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이미 환자 수가 줄어버려 이 정도 인센티브로 의사들이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분기별로 동향을 체크하면서 산부인과와 소아과 의사가 늘어날 때까지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보건사회사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같은 62 수준에서 출발한 환산 지수가 2023년 병원 79.7, 의원 92.1로 되었고, 가산율을 적용해도 병원(95.6)보다 의원(105.9)이 훨씬 높다. 환산지수가 높을수록 수가가 높아진다. 취업의(봉직의)들은 월급을 받으니까 수가 인상 투쟁에 열의가 없어서 그런지(의사협회가 잘한 것인지 병원협회가 게을렀는지 모르겠다) 지난 15년간 수가 인상이 너무 개업의 위주로 이루어진 결과다. 실손보험 확산과 비급여 진료 증가도 개업의와 취업의의 소득 격차를 더 늘렸다. 전문의 자격을 버리면서까지 비필수 분야 의원을 개업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 배경이다.

개업의의 소득이 21년 2억6900만원을 기록했고 첫 통계가 있는 2014년 1억7300만원에 비해 7년간 55.5%나 늘었는데 취업의의 소득은 그렇게 늘지 못했다. 개업은 인기 과목과 서울에 쏠리게 되니 반사적으로 필수의료와 중소, 지방병원은 의사가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중소병원들은 의사를 구하지 못해서 폐과, 폐업 위기에 내몰려 있다. 의료 인력의 쏠림 현상은 수가, 보상 체계의 왜곡이 그 원인이다. 복지부는 변명할 생각 말고 책임을 져야 한다.

지방의료의 위기를 지방 국립대학병원을 서울의 빅5 수준으로 키워서 해결하겠다는 것은 악수다. 그러면 국립대 병원을 제외한 시군 단위의 병·의원들이 초토화될 수도 있다. 지방의료의 재건은 지방의 병·의원들과 지방정부의 일이다. 중앙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정 병원 하나를 키워서 될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연간 70만명 이상의 환자가 비수도권에서 서울의 빅5로 유출되고 있는 것은 시설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는 환자가 없어서 의사가 가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은퇴할 때가 가까워 자녀교육이나 배우자 직장 등을 걱정할 필요가 줄어든 자기 지역 출신의 “명의”를 일단 파트 타임으로라도 유치해서 환자 유출을 막고 더 나아가 환자 유치까지 가능하게 해야 지방의료를 되살릴 수 있는데 이것을 중앙정부가 어떻게 해 줄 것인가? 의료에 관해서도 권한과 재원을 지방에 더 많이 넘겨 주고 지방 간에 경쟁을 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