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만으로 가슴 벅차게 행복했던 게 언제였나? 1987년 민주화,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감격의 시대였다. 그 사이 IMF 외환 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2002년 한·일월드컵은 더 달콤하고 아름다웠다. 한국이 4강에 오르자 붉은 악마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환호성이 지축을 흔들고, 한국민 모두가 행복의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신화란 꾸며낸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존감의 가장 깊은 뿌리다. 20세기 한국민은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의 신화를 썼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은 21세기 한국민의 첫 신화였다. 그 서사의 주인공 히딩크 감독은 외계에서 온 일종의 메시아 같았다. 2002년 당시 한국의 FIFA 세계 순위는 40위였다. 월드컵 본선에 6번 진출했지만, 48년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런 국가가 단숨에 4강에 올라선 것은 월드컵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이변이었다. 히딩크가 한 일은 한국 축구의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한국 축구는 스스로에 무지했다. 히딩크의 첫 진단은 기술은 괜찮은데 체력이 약하다는 거였다. 기존 인식과 정반대였다. 그때까지는 체력은 좋은데 기술이 약하다고 봤다. 국제 무대에 나가 강팀과 붙어 본 경험이 빈약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몰랐다. 월드컵 1년 전 프랑스 팀과의 평가전 때, 이영표 선수는 프랑스 선수의 움직임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절망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숱한 평가전을 거친 1년 뒤 모든 게 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자신감이 생겼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축구 강국과 비교해 한국팀의 체력이 50%라면, 경기 내 의사소통은 20% 수준에 불과했다. 어린 선수는 선배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잘못이 있어도 말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히딩크는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게 했다. 공이나 장비도 모두 스스로 들게 했다.

또 하나의 병폐는 축구 외의 것이 축구를 지배한다는 것이었다. 히딩크의 신조는 축구에 의해, 축구를 위해, 축구를 통한 결정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축구가 정치가 되면 안 된다. 학연 등 연고주의는 한국 축구의 오랜 고질이었다. 대한축구협회가 그랬다. 언론과 팬은 스타플레이어를 편애했다. 하지만 히딩크의 유일한 기준은 경쟁력이었다. 처음에는 홍명보, 안정환 같은 스타도 뺐다. 완전히 무명인 박지성, 이영표, 이을용 등을 발탁했다.

히딩크의 진정한 능력은 축구의 본질을 추구했다는 점이었다. 월드컵은 경쟁을 넘어 전쟁이다. 그 목적은 승리고, 그게 본질이었다. 히딩크는 예의 바른 한국 선수들에게 거칠게 싸우라고 다그쳤다. 때로는 한계를 넘었다. 오보를 낸 기자를 의도적으로 공개 석상에서 비난하고 모욕했다. 그 덕분에 팀의 단합이 더욱 단단해졌다. “히딩크 감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독사다. 뱀처럼 지혜로웠고 냉정했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차가울 수 있는지 소름이 끼치곤 했다. 인간성 밑바닥까지 선수들을 파악하고 처방을 내렸다.”(이천수 선수) “그는 냉정한 심리학자고, 독사 같은 승부사다.”(최진철 선수) 그 혹독함이 한국 축구를 무적으로 만들었다.

히딩크의 축구는 그냥 축구가 아니었다. 한국민에게는 꿈 자체였다. IMF 외환 위기는 성장 신화를 무너뜨렸다. 한국민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패배감이 만연했다. 하지만 히딩크의 축구를 보며 한국민은 미친 듯 소리치고, 울고, 웃고, 끝 모를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온 나라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반등의 에너지가 용암처럼 솟구쳤다. 축구를 바꾸라고 했더니, 한국 사회와 역사를 바꾸었다. 세계국가 대한민국이라는 21세기의 역사적 진로가 그때 결정되었다.

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싸고 한국 축구계가 진흙탕에 빠졌다. 한국 축구는 퇴보하고 있다. 한국 정치는 더 심각하다. 진보 진영은 범죄를 유능으로, 거짓은 대안적 사고로 부른다. 보수 진영은 무능하고, 분열되고, 유치해졌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국가로 올라설 잠재력이 충분하다. 히딩크가 그 사실을 입증했다. 16강에 올랐을 때 한국인들은 이미 포만감에 사로잡혔지만, 히딩크는 “나는 아직 배고프다. 계속 밀고 나가자”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그는 처음부터 우승을 꿈꾸었다. 꿈은 우리들 속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 오늘날 한국 축구, 한국 정치에는 꿈이 메말랐다. 국민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 위대한 역사를 열어갔던 그때가 그립다. 우리 국민은 지금 그런 꿈에 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