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월성원전 1, 2호기 사업장 전경. /대우건설

탈원전이라는 이념에 사로잡혀 가장 싼 전력 생산 수단인 원자력을 버리고 우리나라의 조건으로는 경쟁력이 의심스러운 태양광·풍력 발전으로 전력 수요를 충당함으로써 탄소 제로 시대를 앞당기겠다는 전 정부의 꿈은 꿈으로 끝날 것 같다. 2022년 원자력이 EU의 택소노미(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을 위한 새 분류 체계)에 포함된 것을 계기로 전 세계에 원전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다. 태양광·풍력 발전의 여건이 절대적으로 좋은 나라들까지도 축전과 송전의 어려움 등으로 소형 원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정부에서 고사 일보 직전까지 몰렸던 우리 원전 산업이 체코에서 원전 2기 건설 사업 수주에 성공한 것은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남의 나라 발전소를 지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나라에 필요한 전기를 차질 없이 공급하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과제이다.

이미 세계는 인공지능에 의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갔는데, 인공지능 시대에는 한 나라의 경쟁력이 전기의 양과 질, 가격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생산에 전력과 물이 엄청나게 소모될 뿐만 아니라 AI 시대의 핵심인 데이터센터는 그야말로 전기 먹는 하마라고 한다. 전기차 보급이 약간 주춤하고는 있지만 결국은 그 방향으로 갈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에너지 다소비산업인 중화학공업에 치중했기 때문에 전력 공급이 절대적으로 중요했지만 앞으로 더욱더 중요해질 것은 불을 보듯이 환하다.

EPRI(Electric Power Research Institute)는 미국의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30년까지 2배로 늘어나 미국 전력 소비량의 9%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나라도 최근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반도체·데이터센터·전기차 등의 수요를 중심으로 2038년 전력 수요가 지난해 여름 기록한 최대 전력 사용량 98.3GW보다 31GW 증가한 129.3GW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기의 질도 중요하다. 첨단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앞서 높은 수준의 전력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간 낮은 정전 시간, 정전압 유지율 등 전통적 품질 기준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 품질을 유지해 왔지만, 앞으로의 첨단산업에서는 품질 기준이 더 엄격해질 것이다. 데이터센터·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은 미세한 전류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순간전압 꺼짐, 역률 저하 등 새로운 개념의 품질 관리가 요구될 것이라고 한다. 미래 첨단산업 경쟁력은 전기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에 달려 있다.

발전·송배전·연구개발 등 전력 산업에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이 시점에 전기 요금의 현실화 지연은 한전의 투자 역량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다. 한전은 최근 3년간 43조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대부분을 한전채 발행으로 메꾸어 왔다. 2023년 부채는 202조원에 달한다. 이자 비용은 하루 120억원이며, 연간으로는 4조4000억원에 가깝다. 한전 주식은 정부와 산업은행이 51%, 국민연금이 7.3% 가지고 있는 만큼 이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이다. 전기 사용자들이 전기 요금으로 부담해야 할 것을 다른 국민이 다른 형태로 부담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의 피해는 이것만 아니다. 한전이 정상적으로 수익을 내게 가격을 조정해 주면 한전 주가는 6.3만원까지 올라간 적도 있는데 최근 1.6만원까지 하락했다. 시가총액이 2015년 32.1조원에서 최근 12.5조원으로 떨어졌다. 이 시총 증발의 손실도 반은 정부와 국민연금의 몫이지만 25.5%를 가지고 있는 국민이 더 직접적 피해자다. 한때 30%를 가지고 있던 외국인들은 이제 14.6%만 남겨 놓고 있으니 좀 덜 미안하다. 한국 주식 저평가의 진면목이자 대표적 사례다. 증시 밸류업에 열심인 그 정부가 맞는가?

이런 재무 상황에서 설비투자를 위한 자금 차입의 비용이 더 비싸질 수밖에 없어 그만큼 투자는 지연되고 전력 생산 비용은 더 높아질 것이다. 최근 공급 비용이 낮은 산업용·일반용(서비스산업) 전기료를 주택용보다 더 비싸게 한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가정용 요금을 확 높여서 전기를 많이 쓰는 계층이 더 많이 부담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전기를 얼마 쓰지도 않는 저소득층에게는 전기료 보조를 늘려주면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격을 통제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는 없었다. 가격을 억눌러서, 물가 통계를 분식해서 표가 얻어질 것 같은가? 여당은 경제 전체의 평가로 심판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