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AP 연합뉴스

금년 11월 5일 실시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90여 일 앞두고 국제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이번 선거의 결과 여하에 따라 이해관계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게 될 나라가 과거에 비해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린 나라는 현재 전쟁이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가 되겠지만, 신냉전체제의 진영 간 경계선에 위치해 잠재적 안보 위협에 노출된 유럽의 폴란드, 핀란드, 독일 등과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 대만에도 이 선거는 국가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선거다.

트럼프 후보는 6월 27일 제1차 TV 토론 압승과 7월 13일 암살 미수 사건 이후 지지도 격차를 3% 이상으로 벌리면서 대세를 확정 짓는 듯하더니, 바이든 대통령의 7월 21일 후보 사퇴와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후보 출마 선언으로 트럼프 대세론이 주춤하는 모양새다. 해리스가 대선 후보로 등장한 이래 트럼프 후보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다소 후퇴한 평균 1.7%의 우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 수치는 6월 27일 제1차 TV토론 직전의 지지도 격차와 유사하다. 현 상태에서 선거가 실시될 경우 트럼프 후보가 30주 선거인단 312명, 해리스 후보가 20주 선거인단 226명을 확보해 트럼프 후보의 승리가 유력하다. 그러나 지지도 격차가 워낙 근소해 사소한 실수로 전세가 역전될 위험성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 후 일부 여론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근소한 차이로 트럼프 후보보다 우세를 보이자, 반트럼프 성향의 미국 언론들은 이를 ‘해리스 돌풍’으로 크게 보도했고 대다수 국내 언론도 이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하는 ‘돌풍’은 아직 없고 반트럼프 성향 미국 언론의 간절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후 실시된 트럼프 대 해리스 여론조사 8건 중 단 2건에서 해리스가 1~2% 우세였을 뿐, 나머지 6개 여론조사에서는 모두 트럼프 후보가 1~3% 우세였다. 7개 핵심 경합주에서 7월 22일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평균치도 트럼프 후보가 모두 우세다. 그가 2020년 대선에서 7개 경합주 중 단 한 곳만 승리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선거일이 90여 일 남아 있는 현재 미국 내에서는 여러 이유로 트럼프 후보의 승리를 점치는 전망이 우세다. 진보 성향의 민주당 내에서도 급진좌파에 속하는 해리스 부통령은 복지, 환경, 젠더, 낙태, 노동, 이민 문제 등에 관한 과도한 급진 성향 때문에 부통령 재직 중에도 별 역할이 없던 인물이다. 바이든 후보가 사퇴하기 전부터 대안 중 하나로 거론되기는 했으나, 급진적 정치 성향 때문에 승리 가능성이 낮은 후보로 지적되기도 했다. 민주당 중도파에 속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당내 좌파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해리스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던 것이나, 해리스가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경우엔 중도층 유권자에 대한 확장성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많았다.

해리스가 민주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이번 미국 대선은 공화당의 극우파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의 극좌파 해리스 후보 간 대결로 치러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미국 국내 정치의 양측 극단을 대표하는 두 후보 사이에 첨예한 이념적, 정책적 공방이 예고되어 있다. 그러한 극단과 극단 사이의 대립구도에서 중도적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건, 이는 향후 미국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향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는 또한 앞으로 장기간 지속될 신냉전의 세계에서 자유민주 진영 내부의 역학관계와 협력구도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 대만 문제 등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크게 달라질 것이나, 누가 집권하건 미·중 패권경쟁 차원의 대중국 공세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향후 한국이 대미 관계에서 직면하게 될 난관도 주로 우리 대중국 정책과 관련된 사안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진정으로 미국과 자유민주 진영의 편에 서 있는지 의심하는 기색이다. 최근 미국의 수미 테리 연구원 기소가 경고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제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시 밀려올 방위비 분담금 인상, 주한미군 감축, 미·북 정상회담 속개, IRA 보조금 삭감 등 난제들의 해결을 위해선 한미 간의 동맹적 상호신뢰가 필수 요건이다. 그런 신뢰가 없다면 어떤 문제도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