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세 개가 지난달 말 이후 연달아 한반도를 훑거나 스치고 지나갔다. 그중 마이삭, 하이선은 대형 태풍이었다. 허리케인, 사이클론도 활동 지역이 다를 뿐 태풍과 마찬가지 열대 폭풍이다. 이것들의 기능은 열대 지역에 쌓이는 열(熱) 에너지를 극지방으로 운반해 분산시키는 것이다. 원래 바람과 해류가 이 역할을 맡는다. 태풍과 허리케인은 열 운반량을 극대화시킨 지구의 열 확산용 비상 안전밸브라고도 할 수 있다.
허리케인이 운반하는 열 에너지의 크기를 실증적으로 측정하려 한 연구가 있었다. 2018년 5월 과학저널(Earth’s Future)에 실린 논문으로, 2017년 8월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하비(Harvey)를 연구 대상으로 했다. 멜라니아가 하이힐과 선글라스 복장으로 피해 지역을 방문했다고 해서 구설에 올랐던 바로 그 허리케인이다. 멕시코만과 텍사스주 일대 해안을 1주일여 누비며 막대한 비를 뿌린 수퍼 허리케인이었다.
연구 책임자는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NCAR)의 케빈 트렌버스(Kevin Trenberth)였다. 기후붕괴(기후변화)가 허리케인의 파괴력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해온 기후학자다. 허리케인은 맹렬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더운 열대 바다 표면의 수증기 증발을 수십 배 강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기화돼 상공으로 올라가는 수증기에는 바닷물 속 열 에너지가 잠열(潛熱) 형태로 담기게 된다. 뜨거운 수증기를 빼앗긴 바닷물은 냉각된다. 트렌버스 연구팀은 하비가 지나간 바다의 전후(前後) 해수 온도 변화를 측정하면, 그것이 멕시코만 바다에서 하비가 퍼올려 북쪽으로 끌고 올라간 열 에너지의 양을 말해준다고 봤다. 하비가 지나기 전 바다 수온은 50m 깊이까지 30.5도였는데, 하비가 지나간 다음엔 28.5도로 떨어졌다. 트렌버스는 하비가 멕시코만 바다에서 빼앗아간 에너지가 ‘5.93 × 1020 주울’이라고 계산했다.
허리케인은 열대 바다에서 계속 수증기를 공급받아 규모를 키우거나 유지시키면서 북상한다. 수증기에 담긴 막대한 잠열은 폭풍을 일으키는 연료가 된다. 그 수증기는 또 빗물로 응결돼 비를 뿌리게 된다. 트렌버스 팀은 하비가 뿌린 강수량을 2400억톤으로 계산했다. 남한 전역에 100㎜ 비가 내릴 때 빗물 총량(100억t)의 24배나 된다. 수증기가 빗방울로 응결될 때는 수증기가 품었던 잠열 에너지가 발산돼 주변 공기를 덥히게 된다. 트렌버스는 이 과정을 통해 ‘6.0 × 1020 주울’ 에너지가 하비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했다고 계산했다. 바다가 허리케인에 빼앗긴 열량과 거의 일치했다. 히로시마 원폭 1000만발 크기의 에너지였다. 100만㎾급 2만개 원전을 90% 가동률로 1년간 작동시킬 때의 전력 에너지에 해당한다. 하비가 야기한 홍수로 100명 넘는 인명이 희생됐고, 1250억달러의 재산 피해가 났다.
기후붕괴로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대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 양은 7%씩 늘어난다. 기후붕괴는 바다 표층수 수온도 끌어올려 수증기 증발 자체를 활발하게 만든다. 증가한 수증기는 열대 폭풍을 더 난폭하게 만드는 추가 연료 역할을 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지난달 해양조사선 이사부호를 활용해 북서 태평양 해역 55개 지점의 수온을 조사했는데 평년 수온보다 1도쯤 높아 섭씨 30~31도 수준이었다고 한다. 허리케인 하비가 생성될 때의 멕시코만 바다와 비슷한 수온이었다. 연구팀은 “고수온층 형성이 최근의 마이삭, 하이선 등 대형 태풍 발달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도 그제 ‘기후변화로 인한 장래 강수량·홍수량 증가’라는 자료를 발표해 지금처럼 계속 온실가스가 배출될 경우 금세기 후반엔 강수량이 41.3%까지 증가할 수 있고, 일부 댐과 하천 제방에선 4년 주기로 범람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4대강 사업은 바닥 준설과 제방 보강으로 홍수를 막고, 보(洑)로는 가뭄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종전 100년 빈도 홍수에 대비하던 걸 200년 빈도로 강화시켰다. 그러느라 백사장 등 자연 하천의 모습이 훼손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 생명과 재산의 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상식이기에 역대 정부가 댐을 짓고 제방을 보강시켜왔다. 작년 타계한 미국 해양학자 월러스 브뢰커는 ‘지구 온난화’란 용어를 만들고 해양 컨베이어벨트 개념을 제시한 세계적 학자다. 그는 기후변화를 ‘성난 야수(Angry Beast)’에 비유한 적이 있다. 난폭해질 미래의 태풍은 무자비한 야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기후붕괴 대비가 시급하다고 외쳐대는 사람일수록 기후붕괴 피해를 줄이는 방편의 하나인 4대강 사업을 공격하는 데 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