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의 사표 소동은 하루 만에 어리광 한번 피워본 것으로 판명 났다.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씩씩대던 게 평소 그답지 않은 부자연스런 연기(演技)였다. 차려 자세로 ‘인사권자 뜻에 맞춰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복창(復唱)하는 모습이 훨씬 원래 그답다. ‘어리광’이란 ‘어리고 예쁜 짓으로 버릇없이 투정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어리광 부리다’의 반대말이 ‘어른스럽다’다.
경제부총리는 직업 공무원의 우두머리다. 직업 공무원은 국가 조직의 톱니와 같다. 이 톱니들이 모여 톱니바퀴를 구성하고, 이 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나라를 움직인다. 어른스럽지 못한 경제부총리의 어리광은 나라를 움직이는 톱니바퀴의 가장 큰 톱니가 망가졌다는 뜻이다.
‘허수아비’와 ‘바지저고리’는 ‘뚜렷한 주견(主見)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두 말이 같은듯하지만 논밭에 세워진 허수아비는 참새 쫓는 구실은 한다. 바지저고리는 그런 구실도 못한다. 임금님 입장에선 자기 생각 없는 바지저고리가 부리기 수월하겠지만 어느 후배가 바지저고리에게 마음으로 승복(承服)하겠는가.
이 정권은 부동산 정책에서 실패에 실패를 얹는 층층(層層) 탑을 쌓았다. 이런 미련퉁이 고집불통 국토부장관·청와대 정책실장이 있나 했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늘렸다 줄였다 다시 늘린 재산세 파동에서 그들은 들러리를 섰을 뿐 실제론 대통령 혼자서 차 치고 포 치고 했다 한다. 그들 역시 바지저고리였다는 말이다. 당 대표가 발의(發議)했는데도 결과가 그 모양이라면 그 또한 외롭고 고단한 외손바닥 처지다. 서해 공무원 실종·피살 사건을 논의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땐 외교장관에게 아예 기별조차 하지 않았다. 바지저고리 취급한 것이다.
법무장관은 진 땅 굳은 땅 구분 못하고 틈만 나면 어디서나 좌판(坐板)을 벌이며 미운 짓을 도맡는 것 같다. 혼자서 통반장 다 하는 그도 누군가 위에서 줄을 당기면 팔다리를 휘젓는 꼭두각시 혐의(嫌疑)가 짙다. 줄을 당길 사람이 대통령 말고 누가 달리 있겠는가.
이 정권 특유의 용인술(用人術)이 ‘어릿광대’의 기용(起用)이다. 마당극에서 어릿광대는 진짜 광대가 나오기 전 우스운 이야기를 풀거나 웃기는 짓으로 놀이판을 어울리게 하는 역할이다. 무슨 일에 앞잡이로 나서 그 일을 시작하기 쉽게 해주는 바람잡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딱 그렇다. 청와대 담장에 걸터앉아 한 발은 청와대 마당을, 다른 발로는 바깥세상을 딛고 남북 관계·한미동맹·한중 관계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 갖가지 요언(妖言)과 예언(豫言)을 쏟아낸다. 책임을 따지면 ‘나는 보수를 받지 않는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국내외에서 현 정권의 입장과 의도(意圖)를 가장 정확하게 대변하는 인물로 여러 대접을 받고 있다. ‘영향력은 공직자 이상(以上)이고 책임은 없는 특별한 보직(補職)’이란 뜻에서 말 그대로 특보(特補)다.
이 정권 청와대와 내각에는 ‘살아 있는 화석(化石)’들이 즐비하다. 수억년 전 동식물과 그 흔적이 파묻혀 돌이 된 게 화석이다. 화석은 진화(進化)의 시계가 멈춘 상태다. 통일부장관은 학생운동의 민족해방(NL) 계열 출신이라고 한다. 그는 인사청문회 때 전향(轉向) 여부를 묻는 질문에 벌컥했고, 정권 핵심들 반응은 더 요란했다.
‘전향’이란 ‘사상의 방향 전환’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 조어(造語)다. 누구나 인생의 여러 계절을 통과하고 시대 변화와 만나 생각의 어떤 부분은 버리고 어떤 부분은 숙성(熟成)시켜가며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선다. 화석이 돼버린 인간은 더 깊어지지도 더 넓어지지도 더 높아지지도 못한다.
전향이란 한마디에 벌컥하는 것은 발전 단계를 밟지 못한 미성숙한 옛 생각과 사상을 ‘순수(純粹)한 상태’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 있는 화석’이다. 현 정권의 경제·안보·사회보장·교육·환경·에너지·인구·성(性)평등 등의 모든 정책에서 1950년대 혹은 1930년대의 구(舊) 진보 냄새가 진동하는 이유다. ‘전진이라는 이름의 후퇴’이자 ‘진보라는 이름의 퇴영(退嬰)’이다.
눈에 뭐가 씌지 않고는 그럴 수 없는 사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권 안에는 변화의 희망이 없다. 나라의 기운을 바꿔야 한다. 국민에게 대안(代案)이 필요하다. 야당은 무슨 시간표를 쳐다보고 있는가. 지금 시간표대로라면 이번에도 지각생이다. 역사는 결석은 용납해도 지각생을 용납하는 법이 없다.